제조사와 디스트리뷰터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지만 종종 하이엔드 오디오 분야는 제조사가 디스트리뷰터를 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데논, 마란츠는 오래 전부터 바워스앤윌킨스의 일본 디스트리뷰터였다. 이후 사운드 유나이티드 그리고 현재 헬스케어 분야의 거대 기업 마시모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이런 경우가 부지기수며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이런 경우는 종종 목도된다. 예를 들어 과거 PMC는 브라이스턴의 영국 디스트리뷰터였던 것도 예외는 아니다. 괜히 이들의 조합, 매칭이 정석이 된 것이 아니며 우연도 아니다.
케이블 메이커들이 스피커 메이커와 모종의 협력 관계를 맺는 것도 메이커와 제조사 사이의 협력 면에서 흥미로운 일이 많다. 윌슨은 초창기 MIT를 사용하다가 트랜스페어런트와 오랜 밀월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내부 선재를 모두 트랜스페어런트를 사용한다. 뉴질랜드의 플리니우스는 내부 선재로 실텍을 사용해왔으며 SME 턴테이블 메이커는 최근 들어 실텍의 자매 브랜드 크리스탈 케이블을 사용하고 있다. VPI는 예전부터 노도스트를 사용하기도 했다는 걸 알만한 사람들을 알 것이다. 스웨덴의 마르텐이나 QLN 같은 브랜드는 여지없이 자국의 요르마를 사용한다.
국내에서도 이런 제조사와 디스트리뷰터를 겸하는 메이커가 있었다. 예를 들어 현재 SAL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에이프릴뮤직은 초창기 첼로 및 WEGG3의 디스트리뷰터면서 스텔로 시리즈를 만들어내던 제조사였다. 마크 레빈슨을 위시로 당시 스피커 설계의 천재로 불리던 윌리엄 이글스턴 3세가 제작한 스피커를 국내에 수입했다. 이글스톤웍스까지 넘어가기 전 두 천재의 작품들을 국내에 알리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제조사가 해외 브랜드를 수입, 유통하는 일은 거대 메이커의 경우 단지 비즈니스 측면의 목적성을 가질 수도 겠지만 군소 메이커들은 조금 달라 보인다. 그들이 원하는 사운드의 목표 지점, 사운드 스펙트럼의 좌표가 서로 일치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단지 수치로 표현되는 단편적인 지표로 일반화하기엔 음악과 음향, 예술적 디자인 등 하이엔드 메이커들의 이상을 공유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꽤 많은 브랜드가 제작과 수입을 겸하고 있다.
반오디오, 베르테르의 레퍼런스
아마도 국내에서 또 하나 대표적인 사례를 찾으라면 반오디오와 베르테르가 그 예가 될 것이다. 반오디오는 국내 굴지의 디지털 뮤직 서버 및 DAC 등 디지털 관련 하드웨어 설계, 제조사다. 그런데 영국의 대표적인 아날로그 전문 메이커 베르테르 어쿠스틱스 제품들을 수입해 소개 중이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반오디오에서 출시한 모델에 적용할 USB 케이블을 수배하다가 가장 매칭이 좋은 케이블을 발견했는데 그게 다름 아닌 베르테르 어쿠스틱스 제품이었던 것.
어느 한 제작사의 레퍼런스로 선정되는 것은 각각의 브랜드가 추구하는 음향적 이상에 있어 공집합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베르테르 어쿠스틱스 대표 투라즈 모가담의 레퍼런스는 어떤 것일까? 그는 FM 어쿠스틱스 제품들을 레퍼런스로 사용하고 있다. FM X-1 Inspiration, FM 223, FM 268 그리고 1811 등을 활용해 바이앰핑 시스템을 셋업, 사용 중이다. 당연히 턴테이블은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RG-1 플래그십 턴테이블이다. FM 어쿠스틱스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베르테르 어쿠스틱스의 제품을 하나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들이 꿈꾸는 사운드의 이상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머릿 속에 그려질지도 모르겠다.
MG-1 MKII 턴테이블 속으로
최근에 테스트하고 있는 베르테르 어쿠스틱스의 턴테이블은 이러한 그들의 소리에 대한 철학을 알아가기에 충분했다. 이미 기존에 DG-1S에서도 이를 알아챘는데 이번에 그 상위급 MG-1 MKII를 만나게 되었다. 이 턴테이블은 DG-1S를 시작으로 이후 SG-1, RG-1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베르테르 턴테이블 4대 천황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로소 레퍼런스급 턴테이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바로 MG-1 MKII다. 우선 알루미늄 플래터를 중심으로 상단엔 아크릴 디스크를 부착해놓은 모습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소재를 혼용할 경우 진동이 상쇄된다는 이론 아래에 결정된 소재 조합으로 보인다.
플리스, 즉 몸체는 두 개의 아크릴 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두께는 20mm다. 단 2단의 아크릴 구조를 대충 보면 과거 오라클, 미셸, 클리어오디오 등 여러 메이커에서 시도한 아크릴 소재 플린스를 상상할 수 있는데 상당히 진화한 모습. 자세히 보면 9개의 분리 지점이 있고 여러 지점에서 베르테르가 만든 아이솔레이터를 장착하게 되어 있다. 또한, 세 개 지점엔 별도의 인슐레이터로 받치고 있어 진동에 대한 베르테르의 집념이 느껴진다.
이러한 진동 격리에 대한 베르테르의 집념은 상당히 독특한 스핀들 구조를 만들어냈다. 플래터에 엘피를 올릴 경우 엘피를 올린 다음 스핀들을 분리해낼 수 있다. 우선 베어링 샤프트의 원마도/동심도가 2미크론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스핀들 가공의 공차가 극도로 작으며 동시에 플래터의 중심에 스핀들이 매우 정확히 위치한다는 의미다. 기하학적으로 플래터의 중심인 회전축과 스핀들의 중심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지점에 엘피의 중앙 홀이 위치하도록 설계한 것. 게다가 센터 베어링 하우징의 경우 고작 6.0미크론의 공차를 가지는 인천동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오일도 자체적으로 공급하는 특수 오일을 사용하는 등 베르테르는 플래터가 최소한의 마찰로 어떤 소음도 없이 배우 부드럽게 작동하게 하도록 치밀하게 설계한 모습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정밀한 스핀들과 플래터를 기반으로 엘피를 얹은 후 상단 스핀들을 분리할 수 있게 해놓았다. 왜 이렇게 설계했을까 살펴보면 스핀들이 엘피 홀과 마찰하면서 생길 수 있는 진동까지 애초에 없애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우선 플래터와 베어링, 스핀들을 극단적으로 정밀하게 만든 후 엘피를 얹었을 경우 마찰과 소음의 추가 또한 최소화하겠다는 것. 이 정도면 거의 편집증적인 설계다. 한편 모터는 24극 동기식 AC 모터를 사용하며 속도는 33, 45RPM 모두 지원한다. 이번 테스트에선 템포 드라이브를 사용했으며 별도로 챌린저 전원부를 적용했다. 여기에 0.5cm 너비를 가진 벨트를 사용해 플래터를 회전시키는 방식. 보편적인 벨트 드라이브 방식이지만 이 방식의 장점은 활용하되 약점은 최대한 줄이려는 피나는 노력이 엿보인다.
마지막으로 톤암은 SG-PTA 톤암을 사용하고 있다. 이 톤암은 겉으로 보기에도 전통적인 톤암과 다르게 보이는데 실제 설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베르테르 테크놀로지의 관록이 묻어 나온다. 예를 들어 톤암은 압연 탄소 섬유를 사용한 튜브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굉장한 고강도에 공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톤암으로 끝단에 헤드셸을 두 개의 나사로 고정해놓은 모습. 분리가 가능하지만, 일반적인 SME 타입의 조임식 헤드셸이 경년변화로 인해 조정각이 틀어지는 걸 방지하려는 방편으로 보인다.
한편 메인 무게추의 경우 미세한 아지무스 조정까지 가능하다. 그런데 무게추가 하나 더 있다. 추라기보단 링 타입으로 톤암 튜브에 장착되어 있으며 이는 미세한 트래킹 침압에 더불어 카트리지와 톤암의 매칭에 따라 유효질량을 바꿀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아이디어가 빛난다. 바로 카트리지 컴플라이언스와 톤암의 유효 질량에 따른 매칭을 신경 쓴 것이다. 한편 안티 스케이팅은 전통적인 무게추 방식이며 내부 배선은 베르테르에서 직접 제작한 케이블로 마무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또 있다. 바로 총 세 개의 베어링 위에 톤암을 올려놓는 톤암 베어링 설계다. 보편적인 유니 피봇처럼 보이지만 세 개의 정밀 질화규소 베어링 위에서 종횡으로 부드럽게 움직이면서도 진동, 마찰로 인한 왜곡을 최소한 모습. 베르테르 정밀 공학의 화룡점정을 찍는 부분이다.
완벽한 밸런스와 고해상도 아나로그
이번 테스트엔 우선 카트리지로 같은 베르테르 어쿠스틱스의 미스틱(Mystic) MC 카트리지를 사용했다. 0.5mV 출력으로 MC 카트리지치곤 꽤 출력이 높은 편이며 로딩 임피던스는 제조사에서 680옴에서 1K옴을 추천하고 있다. 포노앰프는 올닉 H-5500, 프리앰프는 패스랩스 XP-12, 파워앰프는 일렉트로콤파니에 AW-250R 그리고 스피커는 PMC fact.12 sig를 사용해 테스트했다.
우선 밸런스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해당 시스템에서 상당히 다양한 턴테이블 및 카트리지를 테스트해보았지만 아마도 가장 뛰어난 대역 밸런스를 보여준 턴테이블이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스톡피시 레이블에서 발매한 컴필레이션 엘피 중 크리스 존스의 ‘No sanctuary here’를 들어보면 어떤 특정 대역의 피크나 딥이 없이 말끔하고 안정적인 대역 밸런스를 보여준다. 더불어 기타 사운드와 보컬의 분리가 명확하면서도 정확한 음정, 토널 밸런스를 통해 실제 오리지널 마스터의 그것을 그대로 시연해주는 듯하다.
평탄한 대역 밸런스는 토널 밸런스, 음정의 정확도 등은 사실 턴테이블 뿐만 아니라 함께 사용한 카트리지의 영향도 없지 않다. 기존에 테스트해본 바에 의하면 가냘픈 두께에 엷은 소리로 일부 현악에만 강점을 보이는 MC 카트리지와 결이 다르다. MC의 고역 해상도, 리니어리티 아래엔 레퍼런스급 MM 카트리지 저리 가라 할 탄탄한 중, 저역이 자리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예를 들어 데이브 브루벡의 ‘Take five’를 들어보면 조 모렐로의 리듬감이 잘 살아나면서도 탄탄하다. 더불어 피아노는 물론 특히 폴 데스몬드의 알토 색소폰에서 오묘한 하모닉스 특성이 잘 펼쳐서 선명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고 풍부한 음색을 표현해낸다.
베르테르 DG-1S에서 MG-1 MKII로 오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차이는 바로 해상력, 밀도감, 다이내믹은 물론이다. 하지만 가장 포괄적으로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점은 어쩌면 품격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파우스토 메소렐라의 ‘Sonatina Improvvisata D’inizio Estate’를 들어보면 라이브 레코딩이지만 소란스럽거나 들뜨는 분위기 없이 파우스토의 기타 연주에만 집중하게 된다. 견고하게 쌓아 올린 건축물의 구조처럼 직조된 사운드 스펙트럼은 아날로그의 본질, 즉 오리지널 아날로그 마스터의 그 소리를 연상케 한다.
총평
이로써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라는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DG-1S 그리고 MK-1MKII 등 중급기에 이르는 대표 모델의 분석과 청취까지 마쳤다. 필자 또한 아날로그 엘피 및 턴테이블, 카트리지 등에 대한 방대한 관심과 탐구를 계속하고 있는 와중에 만난 베르테르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구동 방식부터 벨트 드라이브의 장단점, 진동 제어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 등 호기심 천국이 따로 없을 정도로 베르테르 어쿠스틱스에 빠져들었다. 록산 시절부터 시작해 베르테르까지 이어온 엔지니어 투라지 모가담의 천재적 재능과 집념에 가끔 감탄하기도 했다. 물론 그만큼 높은 가격대에 위치해 있지만 현존하는 턴테이블 관련 기술의 결정체라고 본다면 더 큼지막하고 화려한 하이엔드 턴테이블과 비교해도 우위에 설 수 있는 제품들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MG-1 MKII는 아날로그 턴테이블 분야에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조사 : 베르테르 어쿠스틱스
공식 수입원 : 반오디오 (http://bannaudio.com)
공식 소비자 가격
* 기본 색상 세트: 2,650만원
* 특수 색상 세트: 2,850만원
* Mystic MC 카트리지 : 480만원
* 2단 전용 받침대 : 530만원 (215만 + 315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