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에서 여러 로망이 있다. 하이엔드 부문에서는 광대역을 구현 가능한 스피커에 바이앰핑 또는 멀티 앰핑을 해서 즐기는 것이다. 그 유명한 바워스&윌킨스의 노틸러스를 구입해 세 조의 모노블럭 파워앰로 구동하는 걸 상상해보자. 또는 비교적 최근 출시된 매지코의 M9을 구입해 운영하는 걸 상상할 수 있다. 자체 액티브 크로스오버가 있으므로 저역과 중, 고역을 별도의 파워앰프로 운용도 가능하며 게인 등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어 편리하다. 자사의 대부분의 스피커는 싱글 와이어링을 처리하지만 결국 M9이라는 플래그십에서 바이앰핑을 구현한 모습이다.
소스 기기로 가면 아무래도 아날로그 시스템에 대한 욕심이 많다. 최근엔 그라함 팬텀이나 REED 같은 톤암에 직스, 라이라 같은 카트리지를 매칭해 아주 예리하고 선명한 고해상도의 엘피를 듣고 싶다. 그리고 또 다른 시스템엔 고에츠나 하나 우마미 또는 오토폰 SPU 같은 카트리지를 구형 SME 톤암에 달아서 사용하고 싶기도 하다. 모노 엘피가 많지 않지만, 가끔 모노 시절 커브를 가진 엘피를 들을 땐 모노 카트리지로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헤드 앰프 말고 승압 트랜스를 사용했으면 좋겠고 커브도 데카, 컬럼비아, RCA 대응하느 멀티 커브 기능에 진공관 포노앰프를 걸고 싶다.
앰프로 가면 가장 운용하고 싶었던 로망 중에 하나가 다름 아닌 845 싱글 엔디드, 클래스 A 앰프다. 예전에도 종종 들어보곤 했지만 사실 꿈 같은 게 가격이 매우 비싼 것도 한 몫 하지만 공간과 매칭에 대한 문제가 주저하게 만들었다. 돈을 어떻게 마련하더라고 뜨거운 열과 함께 아무래도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보단 조금은 큰 대구경에 페이퍼 우퍼 콘을 가진 스피커와 매칭하고 싶었다. 하지만 앰프에 스피커에 또 하나의 시스템을 추가로 꾸려야한다. 게다가 대부분 845 앰프들이 크기가 워낙 커서 공간도 필요했다.
최근에 845 진공관 앰프를 보고 눈을 떠보니 내 시청실에 들어와 있었다. 이렇게 꿈은 종종 교통사고처럼 갑자기 일어난다. 브랜드는 라인 마그네틱. 개인적으로 중국 브랜드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편인데 845 진공관 앰프 중 천만원 미만에 구할 수 있는 앰프는 라인 마그네틱 외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가장 쓰고 싶었던 건 캐리 845인데 프리앰프까지 세 덩이에 무게며 가격이며 지금으로선 무리였다. 이 와중에 라인 마그네틱의 플래그십 인티앰프 LM-219IA Plus를 들이게 되었다.
중국 광동성 출신의 웨스턴 일렉트릭 키드 두 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브랜드 라인 마그네틱. 845를 채널당 한 발 사용하며 300B와 310A를 각각 두 발씩 드라이버 관으로 사용한다. 초단관은 12AX7 두 발. 채널당 24와트 출력으로 대출력 스펙으로 출시되는 요즘 클래스 AB, 클래스 D에 비하면 작은 수치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재생해보니 출력은 그냥 출력일 뿐이었다. 심지어 매칭한 스피커가 윌슨 사샤인데 거의 부족한 점을 찾기 힘들다. 가장 놀라운 건 무엇보다 음색 부분이다. 작지 않은 면적의 내 시청실을 그 어떤 트랜지스터 앰프보다 풍부하게 채워준다.
소릿결을 처음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소리의 장막이 한 번 더 사라졌다고나 할까? 어떤 장애물도 없이 시원하게 껍질을 벗겨낸 듯한 생생한 소리가 나온다. 트랜지스터 증폭 방식의 하이엔드 앰프 중에선 수 천만원대 앰프에서도 맛보기 힘든 음결이다. 물론 전 고조파 왜곡이나 SN비 등 측정치 자체는 그 편이 더 좋겠지만 청감상 음악의 순도, 싱싱함은 845를 따라오기 힘들 것 같다. 개인적으로 845 출력관을 사용한 앰프를 귀동냥으로 꽤 들어보았다. 하지만 역시 제품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려면 직접 구입해 자신의 시스템에 매칭해봐야 그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 아무튼 나의 오디오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제 또 튜브 롤링이 시작될 듯하다. 캐리 SLI80시그니처도 가지고 놀아야 하는데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