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모니터로부터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1986년 여름, 두 명의 건장한 젊은이들이 스피커를 운반하고 있다. 두 명이 함께 들어도 힘들만큼 커다란 대형 스피커였다. 희한하게도 상단에 커다란 포트가 두 개 뚫려 있는 모습으로 마치 공연장에서나 쓸만한 스피커처럼 보인다. 이들은 이후 이 스피커를 영국 굴지의 공영 방송국 BBC에 납품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엔 어엿한 스피커 브랜드 PMC를 설립하게 되는 주인공들이다. 당시 스피커의 이름은 BB1이었다. ‘Big Box’라는 이름의 이니셜로서 정말 심플하기 그지 없는 이름이다. BBC는 BB1에 대한 검토 후 수정 및 권고 사항을 문서로 보냈고 무려 다섯 번에 걸쳐 이 스피커를 수정 후 BBC에 PMC의 첫 번째 스피커를 입성시킨다. 바로 BB5의 탄생 스토리다.
이후 PMC를 설립한 피터 토마스는 라인업을 꾸준히 확장시켜나간다. BBC 방송국에서 관리 책임자 역할을 했던 그는 스튜디오 라인업을 구축해나가는 한편 가정용 스피커를 론칭했다. 바로 BB5처럼 박스라는 이름이 붙는 스피커들이다. TB1, TB2, DB1, FB1, GB1, OB1 등 필자가 경험해본 PMC의 민낯은 이러한 박스형 스피커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들었던 PMC의 사운드는 굉장히 놀라웠다. 뭔가 화려한 고역이나 입체감보단 매우 정직하고 믿음직한 사운드로서 가격을 생각하면 놀라운 안정감을 주었다.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 출신답게 탄탄한 밸런스에 더해 특히 저역의 펀치력, 하강 능력이 일품이었다. 이후 한동안 PMC 스피커는 내게 저역의 기준이 되어 주었다.
이런 독보적인 성능의 기반엔 NPL이 있었다. 이론적 바탕과 그 결과, 튜닝에 있어서 NPL(National Physical Laboratory; 영국 국립 물리 연구소)이 서포트해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스피커를 개발해낸 것. 여러 하이파이 메이커들이 스피커 설계시 측정치, 실험 결과를 얻기 위해 애용하는 NPL에서 PMC 는 Acousto-optic 이라는 레이저 기반 매핑 프로세스를 십분 활용했다. 레이저를 활용한 광학 매핑 방식은 캐비닛 반사율과 패턴, 스피커 유닛으로부터 방사되는 주파수 특성 등 세부적인 부분까지 매우 정교한 3D 이미지로 보여주었다. 돌비 애트모스 측에서 PMC를 애트모스 공식 인증을 내준 것도 우연이 아니다. 2채널은 물론 3D 서라운드 음향 분야까지 인정을 받은 것은 스튜디오에서 시작한 기술과 노하우 덕분이다.
하지만 하이파이 오디오 부문은 또 다른 이야기다. 단순히 측정 수치가 뛰어나다고 해서 오디오파일로부터 호응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는 박스 시대를 접고 트웬티, fact 같은 시리즈로 새로운 승부수를 던졌다. 이후 트웬티는 이제 트웬티5 라인업까지 진화했다. 그리고 그 끝엔 페네스트리아라는 PMC 사운드의 이정표가 존재한다. 그런데 PMC에서 최근 새로운 라인업 프로디지를 내놓았다. 겉으로 보기엔 마치 스튜디오에서 사용할 법한 스피커처럼 보이지만 마감 등에 있어서 가정용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과연 PMC가 내놓은 프로디지는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PMC의 새로운 화두 ‘Prodigy’
PMC는 종종 자신들이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 제작사라는 뿌리를 상기시킨다. 최상위 BB5, MB2, IB2 같은 SE 라인업이 대표적이지만 종종 보다 대중적인 라인업에서도 스튜디오 모니터 기반의 가정용 스피커를 선보이곤 한다. 예를 들어 DB1의 상위 버전인 DB1Gold 같은 모델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반대로 가정용 스피커 라인업을 확장시키면서 트웬티 라인업은 트웬티5까지 대단히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해오고 있다. 이제 과거 가격 대비 성능으로 어필랬던 당시의 PMC는 사라졌고 고급 영국 브랜드라는 인식이 더해진 상황이다.
와중에 PMC는 자신들이 정확한 고해상도 사운드를 갖는 스튜디오 모니터 출신이라는 걸 다시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프로디지 라인업은 그 설계에서 스스로 ‘스튜디오 사운드를 가정으로’라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우선 트위터는 스튜디오 모니터 라인업인 리절트6(Result6) 스피커의 소프트 돔 트위터로부터 파생된 것을 사용하고 있다. 이 외에 천연 섬유를 진동판으로 채용한 미드/베이스 우퍼는 CI 라인업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광범위한 확산, 지향성으로 넓은 공간에서도 공간감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돌비 애트모스 믹싱시 모니터링으로 사용되는 스피커로부터 차용한 것이다.
프로디지 1과 프로디지 5는 모두 1인치 트위터와 5.25인치 미드/베이스 우퍼 드라이브 유닛을 탑재하고 있는데 프로디지 5가 우퍼 한 발을 더 채용하고 있다는 것만 다르다. 크로스오버 주파수 대역도 동일하게 1.7kHz에서 끊고 있는 모습이다. 한편 주파수 응답 구간은 프로디지 1인 50Hz에서 25kHz로서 중간 저역까지만 재생하는 저역 제한 북셀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프로디지 5는 고역 한계는 동일하지만 저역에서 35Hz라는 초저역 상부까지 하강 능력을 보인다. 바인딩 포스트는 두 모델 모두 싱글 와이어링만 지원하고 있는 점은 약간 아쉽다.
두 개의 드라이브 유닛은 PMC의 전매특허와 같은 인클로저에 결합된다. 프로디지 1은 320mm, 프로디지 5은 905mm 정도 키로 실제 보면 작고 앙증맞게 생겼지만 매우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는 모습이다. 가장 핵심이 되는 로딩 방식은 역시 PMC의 ATL, 즉 트랜스미션라인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유닛 후방에 긴 통로를 만들어 후방 에너지를 길게 빼면서 잡음을 줄이되 작은 사이즈에서도 저역을 최대한 깊고 묵직하게 떨어트릴 수 있는 기법이다. 다만 인클로저 사이즈가 다르므로 프로디지 1은 수차례 굽혀놓았고 프로디지 5는 두어 번만 구부려놓은 모습. 트랜스미션라인 길이는 각각 1.91m, 1.96m로서 고작 5cm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청음
프로디지 1과 프로디지 5는 공칭 임피던스가 모두 6옴이지만 감도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프로디지 1은 87.5dB이며 프로디지 5는 87.3dB다. 어쩐 일인지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의 감도가 되레 더 낮다. 한편 최대 SPL 수치는 프로디지 1인 123dB SPL, 프로디지 5는 124dB SPL로 후자가 1dB 높다. 두 모델 모두 필자의 시스템에 매칭해보면 제어 자체가 어렵진 않아 보였다. 하지만 스피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앰프는 레퍼런스급 인티앰프라고 할만한 코드 일렉트로닉스 ULTIMA를 매칭해 테스트했다. 한편 소스 기기 같은 경우 평소 사용하는 웨이버사 Wcore/Wstreamer를 각각 룬 코어 및 네트워크 플레어 그리고 반오디오 Firebird MKIII Final Evolution DAC를 동원했다.
가장 먼저 와닿는 첫 느낌은 탁월한 대역간 균형감이다. 비록 PMC 전체 라인업에선 엔트리 레벨에 속하는 모델들이지만 밸런스 자체는 빈틈이 없다. 예를 들어 캔디스 스프링스의 ‘Breakdown’을 들어보면 탄탄한 저역부터 시작해 중, 고역까지 특정 대역이 튀거나 너무 홀쭉해지는 모습 없이 평탄한 모습이다. 물론 프로디지 1인 약간 더 중, 고역에 몰리고 프로디지 5에선 더 무게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포커싱이 매우 또렷해 마치 핀 포인트 포커싱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명료한 음상을 보여준다.
이전에 다른 PMC 스피커를 다양하게 들어보았다면 프로디지가 굉장히 중립적인 타입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fact와도 다르로 트웬티 시리즈와도 다르다. 체급차이가 크지만 궂이 비교하자면 되레 SE 시리즈와 닮았고 낮은 가격대에서 비교하자면 DB1Gold와 유사하다. 예를 들어 드레이크의 ‘One dance’를 들어보면 풋웍이 가볍고 매우 순발력 좋은 중, 저역이 돋보인다. 어떤 대역도 마스킹되거나 또는 길게 딜레이되는 부분도 없다. 리듬감이 뛰어날 수 밖에 없는 사운드다.
마치 잘 말린 와이셔츠를 처음 입는 순간의 말끔하고 개운한 느낌이 지배적이다. 이전의 트웬티 같은 시리즈나 fact에 비해 하위 모델임은 분명하지만 어깨에 힘을 빼고 아주 쉽고 편안하게 소리를 내준다. 예를 들어 밥 제임스의 ‘Rocket man’을 들어보면 피아노 타건이 맑고 깨끗하다. 아주 깊고 진한 느낌보단 정말 스튜디오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듯 평탄하고 뒷맛이 개운하다. 상당히 담백한 사운드인데 저역이 타이트하고 단정한 편이다. 역시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트랜스미션라인 특유의 탄탄한 저역은 매력이 넘친다.
음색 부분에선 이 스피커들은 절대 자신의 주장을 덧칠하지 않는다. 배음 왜곡을 통하 특유의 색상을 내보이지 않는 스피커라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유럽 실내 관현악단의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20번, 1악장’을 들어보면 현과 관악 모두 본래의 소릿결을 고스란히 들려준다. 누군가는 너무 심심한 것 아니냐는 핀잔을 줄 수도 있지만 지나친 착색으로 인해 불편한 느낌보단 이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본래의 감동을 왜곡하지 않고 오리지널 마스터의 정직한 진심이 명료하게 표현되고 있었다.
총평
PMC를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난다. 일련의 박스 시리즈들을 섭렵해나가면서 PMC의 매력한 한껏 빠졌던 나날들이었다. 당시 사용해봤던 스피커들 중엔 PMC 같은 저역 퀄리티에 시원시원한 사운드, 그리고 절정의 리듬감과 타격감을 보여준 스피커는 많지 않았다. 마치 JBL의 호방함에 더해 토템 어쿠스틱스의 스피드, 정위감을 즐길 수 있었던 스피커가 PMC였다. 세월이 흘러 다양한 라인업이 나왔지만 당시 FB1 같은 스피커가 다시 생각나는 이유는 너무 높아져버린 요즘 하이파이 스피커 가격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PMC가 프로디지를 통해 당대 PMC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 때문이다. 이러한 데자뷰는 마치 초창기 PMC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표출된 것 같다. 이 가격대에서 기본기가 훌륭하고 질리지 않는 하이파이 스피커를 원한다면 꼭 위시 리스트에 올려놓아야 할 스피커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사양
프로디지 1
Available Finishes:Silk Black
Crossover Frequency:1.7kHz
Horizontal Directivity:80 degrees
Vertical Directivity:80 degrees
Dimensions:H 320mm W 165mm D 237mm (+10mm optional grille)
Drive Units
LF PMC 5.25”/133mm natural fibre long-throw LT™
HF PMC 27mm /1” soft domeEffective
ATL™ Length:1.91m
Frequency Response:50Hz – 25kHz (-3dB)
Impedance:6 Ohm
Input Connectors:One pair 4mm binding posts
Sensitivity:87.5dB SPL 1W 1m
Peak SPL:123dB SPL
Recommended Amp Power:20 – 250W
Weight:4.5kg ea.
Options:prodigy1 grille
프로디지 5
Available Finishes:Silk Black
Crossover Frequency:1.7kHz
Horizontal Directivity:80 degrees
Vertical Directivity:70 degrees
Dimensions:H 705mm W 165mm D 237mm (+10mm optional grille)
Drive Units
LF PMC 5.25”/133mm natural fibre long-throw LT™
HF PMC 27mm /1” soft domeEffective
ATL™ Length:1.96m
Frequency Response:35Hz – 25kHz (-3dB)
Impedance:6 Ohm
Input Connectors:One pair 4mm binding posts
Sensitivity:87.3dB SPL 1W 1m
Peak SPL:124dB SPL
Recommended Amp Power:20 – 250W
Weight:10kg ea.
Options:prodigy1 grille
제조사 : Professional Monitor Company (UK)
공식 수입원 : 웅진음향 (www.wjsound.com)
공식 소비자 가격
프로디지1 : 3,290,000원
프로디지5 : 5,35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