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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아날로그의 심장 속으로

베르테르 어쿠스틱스 CALON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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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의 아날로그

한동안 아날로그 시스템엔 큰 변화를 꾀하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제품을 구입해 테스트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엔 내 기기보다 되레 리뷰를 의뢰받는 제품 테스트에 시간을 더 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내 시스템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사실 1년 동안 꽤 많은 시스템 변화가 있었다. 시청실을 열고 호기롭게 윌슨 오디오 Sasha를 들여다 놓았고 적당한 앰프를 물색하다가 라인마그네틱 219IA Plus라는 845 싱글 인티앰프를 마련했다. 기존에 이미 MSB Analog를 DAC 겸 프리로 사용해 패스랩스 XA60.5 모노블럭을 드라이빙하고 있었지만 추가한 것이다. 게다가 SACD 플레이어도 구형에서 신형 마란츠 SA-10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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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트랜스로터 등 두 번째 시스템을 시청실 청취 위치의 오른편 사이드로 옮겼다. 원랜 트랜스로터 턴테이블과 거리를 좁히기 위한 꼼수였다. 그런데 갈수록 디지털 시스템도 구축하고 싶어졌다. 이미 메인으로 웨이버사 Wcore 및 Wstreamer, 그리고 반오디오 Firebird MK3 파이널 에디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다른 소리를 만들고 싶었다. 마침 출시한 오렌더 A1000을 구입하고 집에서 사용하던 코드 일렉트로닉스 Hugo TT2를 가져와 붙였다. 메인 시스템의 R2R 래더 DAC과 또다른 세계가 열렸다. 물론 여전히 메인은 불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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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오면서 집에선 아날로그 시스템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트랜스로터 같은 현대적인 사운드의 턴테이블 말고 조금 포근한 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집에서 제품 리뷰, 테스트할 일은 없으니까. 결국 간택된 건 린 LP12다. 봄에 영입한 그라함 LS 5/9 그리고 마란츠 모델 40n과 어울리면 따뜻한 질감과 진한 브리티시 사운드를 도출해낼 수 있을 듯했다. 린 LP12엔 원래 구입해놓고 어떤 턴테이블에 달아줄까 벼르고 있었던 하나 ML 카트리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건 결국 린 LP12에 달지 않았다. 본래 Majik LP12 세트에 기본으로 포함되는 린 Adikt라는 카트리지가 집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에서 기대 이상의 매력적인 소리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심각하게 고음질 엘피만 듣는 게 아니라면 Adikt만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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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하나 ML 카트리지를 트랜스로터에 장착할까? 아니면 나중에 세 번째 턴테이블을 들여서 거기에 활용할까? 여러 상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던 와중, 포노앰프 하나가 시청실에 무심코 들어와 똬리를 틀었다. 반오디오 대표가 갑자기 연락이 와 물경 3천만 원짜리 포노앰프가 베르테르 어쿠스틱스에서 출시되어 수입했으니 한번 들어보고 좋으면 리뷰를 해달라는 것이다. ML 카트리지는 시청실로 갈 운명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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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로터엔 두 개의 톤암을 장착해놓고 각각 서로 다른 카트리지를 세팅해 즐겼다. 하나는 다이나벡터 DV20X2H 그리고 골드링 1042다. MC와 MM의 매력을 음악에 따라 골라서 즐겼다. 결국 이번엔 다이나벡터가 골드링 자리로 옮기고 골드링은 탈거했다. 그리고 다이나벡터가 달려 있던 메인 톤암에 하나 ML 카트리지가 자리를 자지했다. 누구나 열 안 나는 기기에 최대한 간편한 네트워크 스트리밍을 즐기는 한 여름이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가장 세팅이 귀찮고 손 많이 가는 엘피를 소스로 열 많이 나는 클래스 A 증폭 파워앰프를 켜서 음악을 듣고 있다. 와중에 너무 재미있는 포노앰프 CALON이 나의 시청실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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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의 귀재

전 세계엔 턴테이블, 톤암, 카트리지, 포노앰프 등 엘피를 듣는 데 필요한 아날로그 시스템 각 분야에 걸쳐 여러 구루들이 있다. 영국에 한정하면 린을 비롯해 레가 그리고 베트테르 어쿠스틱스가 맨 앞단에 선다. 그 중 오랜 오디오파일이라면 록산을 기억할 것이다. 적시스 시리즈를 비롯해 코러스 카트리지는 역대 아날로그 명기 100선을 꼽는다면 항상 거론되는 제품들이다. 바로 그로 록산의 아날로그 기기 설계자가 다름 아닌 투라지 모가담이며 그는 록산을 그만둔 이후 자신의 필생의 브랜드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를 설립했다. 천상 엔지니어 출신인 그가 만든 제품을 뜯어보면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의 아이디어와 완벽주의를 엿볼 수 있다. 그것은 턴테이블, 톤암을 넘어 카트리지 그리고 포노앰프 드 아날로그 시스템 전반을 종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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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라지 모가담의 레퍼런스 포노앰프를 테스트하는 건 무척 가슴 벅차는 일이었다. 어서 카트리지와 매칭해볼 생각에 입맛을 다시면 CALON을 셋업 했다. 일단 이 제품을 박스에서 꺼내 랙 위에 올려놓고 전체적인 디자인을 살펴보았다. 케이스는 가격대가 약간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리 호화롭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모습인데 특히 전면 패널 디자인은 아주 약간 에어 어쿠스틱스의 K-1X 프리앰프를 오랜만에 떠오르게 만들었다. 날렵하고 단단하며 마치 측정 장비를 보는 듯 전문가용 제품의 아우라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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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앰프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우선 후면에 메인 전원 스위치가 있고 전면 좌측에 별도의 작동 셀렉터가 있다. 셀렉터를 3단계로 슬립, 뮤트, 그리고 최종적으로 ‘ON’ 모드로 작동한다. 우측으로는 두 개의 셀렉터가 위치해있다. 이 셀렉터는 게인을 담당한다. 그런데 왜 두 개일까? 각각 입력과 출력으로 나누어서 게인을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RIAA 섹션 게인이 30dB 확보된다. 여기에 더해 추가적인 입력 게인이 좌측부터 1단계는 +10dB 그리고 여기에 더해 2단계에서 +10dB, 3단계에서 +20dB가 추가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40dB, 50dB, 60dB를 얻을 수 있다. 대체로 MM은 1단계 40dB에서 원하는 음량을 확보할 수 있지만 카트리지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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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여기에 더해 추가적인 출력 이득을 얻기 위해 출력 게인을 조정할 수 있게 설계해놓았다. 우측에 있는 출력값 조정 셀렉터로 조절 가능한데 1단계는 0dB고 이후 +2dB, +4dB, +6dB, +8dB 등 4단계로 출력 게인 조정이 가능하다. 따라서 입력과 출력 게인 조정을 통해 최소 40dB(RIAA 30dB+입력 10dB)에서 최대 68dB(RIAA 30dB+입력 30dB+출력 8dB)까지 설정이 가능하다. 굳이 입력과 출력 값이 이렇게 나누어 설정하게끔 설계해놓은 것은 입력 게인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모든 소스 기기가 마찬가지지만 일단 입력 게인을 통해 카트리지에 최적화된 최대 게인을 설정하고 출력값은 미세 조정하는 데 활용하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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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앰프 입장에서 카트리지에 대한 세팅 값은 게인 외에 커패시턴스, 입력 로딩 임피던스 등이 있다. 그리고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는 가능한 거의 모든 세팅 값을 전면 셀렉터로 조정 가능하게끔 설계해놓고 있다. 우선 로딩 임피던스(레지스턴스)에 대해서 MM 은 당연하고 MC에 대해 다양한 임피던스 값을 세팅할 수 있다. 우선 레지스턴스 값 조정 셀렉터 양 쪽으로 임피던스 값을 적어놓고 좌측으로 L(로우), H(하이) 토글을 설치해놓았다. L 쪽으로 토글을 위치시킨 후 레지스턴스 셀렉터를 맨 좌측으로 돌리면 일반적인 MM 카트리지에 해당하는 47K옴,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100, 150, 330, 470옴이 선택된다. 이후 토글을 H 방향으로 넘기고 셀텍터를 우측으로 돌리면 차례대로 630, 850, 1K, 1.5K옴이 선택된다. 이전에 사용해본 수많은 포노앰프가 있지만 상당히 독특한 인터페이스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딥 스위치 등 접점 저항이 많이 발생하는 방식에 비해 음질적으로 더 유리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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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는 커패시턴스 조정 셀렉터의 존재다. 사실 커패시턴스 조정은 많은 포노앰프에서 생략되어 있고 100pF 정도 값으로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CALON은 이마저도 무척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게 설계했다. 여러 면에서 참 집요하다는 느낌이다. 로딩 임피던스처럼 커패시터도 일단 여러 커패시턴스 값을 MM을 위한 L(로우) 및 MC를 위한 H(하이)로 셀렉터 양쪽에 양분해놓았다. 토글을 L로 세팅한 후 셀텍터를 돌리면 좌측부터 100, 220, 330, 470pF, 그리고 마지막으로 1.0nF로 바뀐다. 한편 토글을 H에 세팅한 후 셀렉터를 돌리면 0.22, 0.33, 0.47, 1uF까지 커패시턴스를 설정할 수 있다.

capacitance mc

그런데 여기서 MC 카트리지에서도 과연 이런 입력 커패시턴스 세팅이 다양하게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실 매우 선형적인 주파수 특성을 보이는 고급 MC 카트리지라면 그리 신경 쓸 일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는 선형적인 주파수 반응을 보이지 않은 MC 카트리지에선 커패시턴스 조정을 통해 고주파 피크 현상을 일부 보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위 그래프를 보면 초고역 구간에 2.0~2.5dB 피크를 치는 카트리지의 경우 0.22/0.33uF를, 3.0~3.5dB는 0.33/0.47uF, 그리고 4dB는 0.47/1uF 커패시턴스 세팅을 통해 고주파 피크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LF Filter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는 CALON이라는 포노앰프에 아날로그 엘피 마니아들이 필요할 법한 거의 모든 기능을 꼼꼼하게 집약시켜놓았다. 위에 열거한 게인, 입력 로딩 임피던스, 커패시턴스의 미세 조정은 물론 위상 반전, 서브소닉 필터 그리고 접지에 관한 기능들이 그 주인공이다. 우선 LF 필터로 표기된 건 일반적으로 ‘서브 소닉(Sub-sonic)’ 필터로 불리는 필터다. 레코드 표현이 고리지 않은 상황 등에 의해 발생하는 일종의 기계적 소음에 대한 대책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엘피를 들을 때 쓸 데 없이 우퍼가 큰 진폭으로 울렁이는 형상으로 이 때 LF 필터를 활용하면 20Hz 미만, 가청 영역 밖의 저역을 자연스럽게 감쇄시켜준다. LP를 주력으로 듣는 마니아들에겐 상당히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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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ON의 후면으로 가면 한 조의 RCA 입력이 마련되어 있고 출력은 RCA 및 XLR 등 두 조의 출력을 지원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출력은 가능하면 RCA와 XLR 중 하나만 사용하길 추천하고 있다. 그라운드 루프의 위험성 때문이다. 한편 접지는 총 세 개를 지원하고 있는데 입력단 옆 하단에는 톤암 케이블의 접지 케이블을 연결하면 그만이다. 혹시 프리앰프와 포노앰프 사이에도 필요하다면 상단에 마련된 섀시 접지에 추가로 연결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우측으로 보면 또 하나의 섀시 그라운드 접지단이 있는데 일종의 스페어 단자다. 심지어 기기 사이 상이한 접지방식 때문에 유도될 수 있는 험을 없앨 수 있도록 세 개의 접지방식을 마련해놓았을 정도다. 1은 저저항, 2는 접지 리프트, 그리고 3번은 고저항 연결로서 일반적으로는 3번 세팅에서 가장 낮은 노이즈를 보인다. 하지만 접지 노이즈는 시스템 환경마다 무척 다른 특성을 보이므로 1~3번을 교차 비교해보면서 노이즈를 체크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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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시스템의 심장

턴테이블 시스템을 처음 운용할 땐 마치 전체 시스템에서 스피커에 모든 예산을 쏟아붓던 초심자처럼 카트리지에 예산을 집중한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아 턴테이블 본체와 톤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포노앰프에 따른 음질 변화가 상당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MM에서 MC로 카트리지를 교체한다면 그 때부턴 게인, 로딩 임피던스 등 신경써야할 것이 더 많아진다. 게다가 수백 배 증폭을 수행하면서도 낮은 잡음과 평탄한 주파수 특성을 유지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베르테르 어쿠스틱스의 투라지 모가담은 평생 아날로그 턴테이블 관련 장비를 설계, 제작해오면서 드디어 포노애프에서 마침표를 찍고 싶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 복안이 CALON에 짙게 깃들어 있다. 항상 자사의 플래그십 제품을 시연하면서도 FM 어쿠스틱스 포노앰프를 레퍼런스로 사용할 때 마음 한 구석에 허전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듯. 결국 베르테르를 통해 출시한 CALON은 정적에 가까운 배경과 SN비 그리고 최대폭의 다이내믹스를 살려내기 위한 첨예한 설계로 중무장하고 있다. CALON은 켈트어로서 영어로 심장을 의미한다. 슈퍼 아날로그의 심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과연 실제 성능은 어느 정도일까?

사진/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제품 사양

Type : MC/MM Phono Preamplifier Main phono circuit on two separate gold-plated PCBs
Power Supply : Two Linear, Internally Mains voltage switchable, transformers
Gain Settings : 40dB to 68dB In 15 Steps
Input Impedance Settings Resistance : 100R to 47k in 9 Steps
Capacitance : 100pF to 1.0uF – In 9 Steps
Frequency Response : 20Hz – 20kHz +/- 0.2dB
Noise < -83dB – AWD
THD-N : 0.01%
Finish : Front Panel Options Silver or Black
Dimensions : 412 x 290 x 8

제조사 : 베르테르 어쿠스틱스(UK)
공식 수입원 : 반오디오 (http://bannaudio.com)
공식 소비자 가격 : 30,000,000원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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