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레퍼런스 레코딩스에서 출시되는 레코딩 중 ‘FRESH!’ 레이블 작품들을 유심히 들어보게 된다. 이 레이블은 레퍼런스 레코딩스에서 별도 시리즈로 기획한 것으로 레퍼런스 레코딩스에서 직접 녹음하지 않고 외부 엔지니어들이 녹음한 것을 레퍼런스 레코딩스에서 발매하고 있다. 대신 기술 책임자이자 엔지니어 키스 존슨이 일종의 멘토로서 참여해 약간의 의견을 첨가하며 이 외에 편집 등 후반 작업에 참여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레퍼런스 레코딩스 입장에선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가져가면서 품질은 철저히 관리해 카다로그를 넓혀나갈 수 있어 좋은 기획으로 보여진다.
최근 ‘FRESH!’ 카다로그엔 또 하나의 레퍼토리가 추가되었다. 바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이다. 지휘는 맨프레드 호넥, 오케스트라는 언제나처럼 피츠버그 심포니가 맡았다. 녹음 공간은 하인즈 홀이며 2022년 3월 25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 녹음을 SACD에 담아내고 있다. 녹음 프로듀서가 눈에 띈다. 다름 아닌 존 뉴튼이다. 국내에서는 황병준 감독이 이끌고 있는 사운드미러의 미국 본사 설립자이자 대표 엔지니어. 사운드미러 스탭이 녹음하고 레퍼런스 레코딩스에서 발매하는 특별 요리는 과연 이번에도 실망이 없다.
교향곡 7번은 사실 그리 인기가 높은 레퍼토리는 아니다. 하지만 브루크너 애호가에겐 무척 사랑받는 곡이고 무척 애착이 가는 교향곡이기도 하다. 이 곡을 작동할 당시 브루크너는 바그너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이에 영감을 얻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2악장의 주제 선율이 ‘니벨룽겐의 반지’에 사용했던 일명 ‘바그너 튜바’인 점도 이를 방증한다. 특히 바그너가 사망한 해에 완성한 2악장은 특히 가장 감명적이었다.
마침 맨프레드 호넥이 직접 내한해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지난한 여름 뒤에 맞은 예술의 전당 앞길은 붉게 물든 나뭇잎들이 나뒹굴며 콘서트홀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었다. 지휘봉은 맨프레드 호넥이 잡았지만 피츠버그 심포니가 직접 오진 않았다. 대신 SIMF, 즉 서울 국제 음악제를 위해 편성된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맨프레드 지휘, 브루크너 7번 교향곡 공연은 2024 서울 국제 음악제 폐막 음악회로 기획된 피날레 공연이었던 것.
실연에서도 역시 2악장이었다. ‘매우 장엄하고, 매우 느리게’라는 문장에 공연장 후방에 깔리면서 시작된 연주는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했고 그가 이 곡 작곡 당시 매다리고 있었던 ‘데 데움’ 때문인지 무척 종교적인 느낌까지 곳곳에 서려 있었다. 휘몰아치는 현악과 후방의 목관 악기들이 꽤 서정적이며 짙은 음색을 만들어냈다.
공연이 끝나고 내려오면서 나의 오디오 시스템들을 생각해보았다. 공연장에서 듣는 음악과 스튜디오 마스터를 듣는 하이파이 오디오는 다르다. 하지만 종종 공연장에서 그 파도처럼 밀려오는 음압과 함께 정밀하진 않지만 공간 전체를 유유히 휘감는 앰비언스를 시청실에서도 조금이나마 맛보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 들어보면 12인치 우퍼의 아탈란테 5가 그런 사운드에 가까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