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의 음모
종종 새벽 시간에 보는 넷플릭스에서 ‘지금 구매하세요 : 쇼핑의 음모’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충격적인 사실과 함께 예리한 통찰을 주었다. 대중들의 소비와 그 이면에 감춰진 기업들의 계략이랄까? 아무튼 새로운 상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 버리도록 유도하는 기업들의 만행을 추적했다. 그것도 해당 회사에 근무했던 임원부터 직원의 인터뷰를 통해서. 아디다스, 아마존, 애플 등 우리가 알만한 메이저 브랜드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내놓고 오래된 걸 빠르게 버리도록 유도한다. 그것이 그들의 성장과 존립에 있어 필수요건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소비재들은 구입해서 사용하다보나 자연스레 헤지고 고장이 난다. 시대에 뒤처지고 어느 때부턴가 오래된 걸 사용하고 있으면 사람들의 눈초리가 따갑다. 특히 신제품이 나오면 빚이라도 내서 교체해하지 않고선 못배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관적 충동과 강박은 그들에게 호재다. 만일 기존의 물건을 고집하거나 교체할 때가 되었는데도 수리해서 사용하려 한다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들을 좌절시키라는 것이 기업들의 운영 논리다. 초창기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쉽게 교체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으리라. 이 다큐멘터리의 한국어 제목인 ‘쇼핑의 음모’는 ‘기업의 음모’라고 수정해야 옳을 듯하다.
아날로그의 음모
내가 구입해서 사용한 지 약 8년이 된 턴테이블이 있다. 바로 독일의 트랜스로터 턴테이블 ZET-3MKII라는 모델이다. 구입한 이후 톤암을 하나 더 달고 카트리지도 추가했으며 3점지지 발을 국내 아츠 오브 오디오 제품으로 바꾸었다. 모터 베이스도 같은 제조사 제품을 바꾸어 높이 조절도 가능하게 세팅했다. 톤암 헤드셀은 통 알루미늄으로 교체했고 스테빌라이저마저 도 이런 저런 타사 제품을 사용한다. 하지만 핵심이 되는 구동부 모터와 전원부, 컨트롤러, 그리고 본체 및 플래터, 스핀들, 베어링은 출시 당시 그대로다.
하지만 2016년 구입 이후 고장이 나질 않는다. 최근엔 여러 턴테이블을 리뷰하면서 다른 걸로 교체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당췌 고장이 나지 않고 음질에 불만이 큰 것도 아니니 이제나 저제나 미루게 된다. 대신 턴테이블 하나를 더 들이거나 내보내는 일로 충동을 가라앉히곤 한다. 몇 달 전엔 집에서 사용할 요량으로 린 LP12를 구입해 사용하면서 다시 한 번 린 턴테이블의 매력에 빠져 있다. 이 턴테이블도 꽤 시간이 흐른 모델이다. 하지만 고장이랄 게 없다. 잘 만든 아날로그 오디오는 고장이 나질 않아 신제품 구입을 망설이게 만든다. 이것도 음모라면 음모랄까?
어쿠스틱 시스니처
최근 테스트해본 턴테이블 중 나에게 멀쩡한 트랜스로터 턴테이블을 내보내고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하나 있다. 어쿠스틱 시그니처라는 독일 브랜드의 턴테이블이다. NEO 시리즈 중 막내 모델 Maximus NEO만 테스트해본 이후에 이 정도 성능이면 상위 모델은 얼마나 더 좋을지 기대가 컸다. 시간이 지나고 절대 변색이 없을 듯한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마감과 헤어라인에 더해 빼어난 디자인이 일단 가슴에 불을 지폈다. 뿐만 아니다. 이런 우아한 만듦새 안엔 어쿠스틱 시그니처의 독보적 하이테크 기술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Tornado NEO
이번엔 Maximus NEO의 한 단계 상위 모델 Tornado NEO를 만났다. 사진으로 볼 때는 디자인만 다르고 거의 비슷한 메커니즘일 듯 했는데 직접 설치하고 만져보니 또 다른 세계다. 우선 이 턴테이블은 겉으로는 모터나 벨트 등 전혀 보이지 않지만 플래터 안쪽 하단에 모터와 내부 플래터가 숨겨져 있다. 모터는 AC 모터 한 개만 사용한다. 한편 모터의 작동을 조정하는 컨트롤러가 따로 설치되어 있다. 뿐만 아니다. 전원부도 분리형이어서 정확하고 깨끗한 전원을 확보해 가장 안정적이고 정교한 플래터 회전 속도를 돕고 있다.
구동부에서 일단 어쿠스틱 시그니처의 첫 번째 독보적인 기술을 발견할 수 있다. 다름 아닌 AVC, 즉 ‘Automatic Vibration Control’이라는 기술이다. 플래터 회전에 사용하는 AC 모터는 2개의 코일과 24개의 극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일을 회전시키기 위해서 사인파 및 90도 위상 반전된 신호가 공급되는데 모든 AC 모터의 극과 코일에서 허용 오차가 필연적으로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것이 모터의 진동 노이즈를 만들어낸다. 이를 어쿠스틱 시그니처는 AVC 기술로 보상하고 있다고 한다. 위상 변이를 측정해 실시간으로 이를 보정해준다. 이로써 AC 모터의 진동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있다. 어쿠스틱 시그니처는 턴테이블 모델에 따른 모터의 개수 등을 감안해 레벨을 세 개로 나누고 있다. Tornado NEO는 Maximus와 함께 레벨 1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모터를 회전시킨 후 본체를 만져보아도 진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정숙하다. 하지만 이런 정숙함이 과연 모터 혼자만의 역할만으로 가능할까? 진동의 또 다른 진원지인 플래터 베어링 부분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벨트 드라이브 턴테이블의 가장 큰 진동의 진원지는 플래터의 베어링 부분이다. 게다가 최근 하이엔드 턴테이블이랍시고 묵직한 무게의 플래터를 사용하곤 하지만 이런 무게는 중심 스핀들로 커다란 압력을 모으게 되고 스러스트와 베어링 볼의 접촉 영역에서 엄청난 기계적 소음을 유발하게 된다. Tornado NEO 같은 경우 다이아몬드 코팅 베어링에 정밀하게 가공한 DTD, 즉 ‘Duraturn Diamond’ 베어링을 장착해 소음을 극단적으로 낮추었다. 또한 이 부문 설계는 오일을 보충할 필요가 없게끔 설계해 유지, 관리가 매우 편리하다. 이것이 어쿠스틱 시그니처 기술의 두 번째 시그니처다.
다음으로 Maximus NEO엔 적용이 안되어있으나 Torando NEO부터 적요되는 기술, 다름 아닌 CLD 기술이다. CLD는 ‘Constraint Layer Damping’. 이는 기술 설계에서 진동의 흡수 및 최소화가 필요할 때 활용하는 기술로서 하이파이 오디오에서도 종종 사용된다. 기술적 개요는 자체적으로 진동 감쇠 능력이 없은 소재 사이에 충분한 감쇠 능력을 갖는 소재를 샌드위치 방식으로 배치하면 무척 뛰어난 진동 감쇠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스피커 중에선 예를 들어 매지코나 케프 같은 메이커가 유명하고 이 외에도 다양한 메이커들이 자사 기기에 활용한다.
어쿠스틱 시그니처는 턴테이블에 이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이미 20여 년 전부터 연구해왔다. 모두 플래터의 진동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이미 정확한 속도 회전과 진동을 최소를 이룬 모터 및 베어링 구조를 완성했지만 플래터 자체 진동마저 극단적으로 낮추겠다는 의지다. 이를 위해 소재 조합을 찾아야 했고 어쿠스틱 시그니처가 찾은 조합은 알루미늄 합금 두 겹 사이에 황동을 끼워넣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를 배합하는 방식을 달리해 더욱 극단적으로 진동을 낮추었다. 황동을 사용해 일종의 스페이서를 만든 후 플태터 상판에 끼워넣는 방식이다. 최적의 배열과 위치, 황동의 무게 등을 계산하는 데에도 상당한 테스트가 동반되었을 듯하다. 여기서 FEA, 즉 유한 요소 분석 기법 등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았다. 사일런서는 모델에 따라 그 개수가 달라지는데 Tornado NEO엔 총 네 개가 탑재되어 있다. 참고로 최상위 Ascona NEO로 가면 무려 56개가 적용된다.
청음
이번 테스트엔 어쿠스틱 시그니처의 9인치 TA-2000 NEO 톤암을 사용했으며 카트리지의 경우 역시 동사의 MCX2 카트리지를 사용했다. 이중 카본 구조의 톤암 튜브를 갖는 저공진 고강도 톤암으로 디자인, 소재, 마감 등 굉장히 정교한 만듦새를 보인다. 한편 카트리지의 경우 0.55mV 출력을 갖는 MC 카트리지로 타원형의 누드 다이아몬드 스타일러스 팁이 장착되어 있다. 한편 로딩 임피던스는 100옴을 추천하고 있다. 참고로 테스트에 사용한 시스템은 아래와 같다.
- 포노앰프 : 서덜랜드 PhD
- 프리앰프 : 클라세 CP-800MKII
- 파워앰프 : 패스랩스 XA60.5
- 스피커 : 락포트 테크놀로지스 Atria
에바 캐시디 – Fields of gold
처음 들어보았던 어쿠스틱 시그니처 턴테이블은 Maximus NEO였다. 맑고 깨끗한 배경과 잡티 하나 없이 말끔한 표면 텍스처, 그리고 마이크로 다이내믹스는 아무리 하위모델이라고 해도 대단히 뛰어났다. 하지만 Tornado NEO로 올라오면 또 한 단계 상승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시각적으로는 디자인이 훨씬 더 멋진데 음향적으로 더 높아진 SN비가 눈에 띈다. 또한 보컬 음상은 마치 디지털 음원처럼 또렷하다. 에바 캐시디의 라이브 녹음에서 마치 현장에서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듯한 실체감의 원인은 아마도 매우 뛰어난 해상도는 물론이며 마이크로 다이내믹스 덕분이다.
덱스터 고든 – Cheese cake
고능률의 스피커 진공관 앰프로 이 곡을 들으면 상당히 경쾌하고 시원한 색소폰 사운드가 몸을 휘감는 맛이 좋다. 하지만 감도가 약간 낮은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에 트랜지스터 앰프로 들으면 SN비가 좋아 소리가 더 세부적으로 표현된다. Tornado NEO는 후자와 같은 소리다. 한 음, 한 음 모두 세밀하게 포착해 무대 위에 쏟아낸다. 하지만 앞으로 소리를 쏟아내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절대 산만하거나 공격적인 소리는 아니다. 트랜스로터에 비해서도 되레 더 얌전하다고 할 만큼 적막한 배경과 주도면밀한 디테일, 다이내믹스를 보여준다.
스틸리 댄 – Black cow
시간축 특성은 디지털에서 클럭 정밀도로 판단하지만 아날로그 시스템에선 속도로 귀결된다. 하지만 단지 스트로보스코프를 통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정확한 건 귀로 들었을 때 쉽게 드러난다. 음정 자체가 틀어지기 때문이다. 이 턴테이블은 마치 실시간으로 속도를 측정 후 컴퓨터로 계산해낸 듯한 속도 정밀도를 보인다. 또한 이런 속도 정밀도는 매우 정확히 타겟을 향하는 듯 정밀한 타격감과 리듬감을 살려낸다. 어떤 음악에서도 수선을 떠는 법 없이 주도면밀한 시간축 반응 특성을 보여준다.
게리 카 – Adagio in G minor
저역 표현은 사실 턴테이블은 물론 애초에 LP에서 가장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다. 매우 낮은 저역에서 부스트가 생기기도 하며 계조 표현이 흐트러져 불분명하고 흐릿하게 퍼지는 경우도 많다. Tornado NEO 같은 경우 눈을 감고 소파에 몸을 기대고 듣게 만든다. 더블 베이스가 깊으면서도 은은하게 시청실을 채우며 하몬 루이스의 오르간은 낮은 대역을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바닥을 짙게 물들인다. 진동이 거의 제거되고 나니 음악 자체가 더욱 편안해졌다. 뭔가 우렁차고 역동적인 다이내믹 컨트라스트보단 섬세하고 포근한 저역이다.
총평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시청실에 홀로 앉아 상당히 많은 LP를 들었다. Tornado NEO로 듣는 음악들이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등장했고 또 사라졌다. 같은 녹음, 같은 LP지만 이전의 소리와 너무 달라 한동안 당황스럽기도 했다. 고요하고 섬세하며 절대 윤색하지 않은 순수한 사운드가 거기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 정상 속도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약간 길지만 한번 정상 속도에 이르면 아무런 미동도 없이 멈춰선 듯 조용하고 정밀하게 작동하는 턴테이블이다. 만일 예산이 충분하다면 구입해 사용하고 싶은 모델을 발견했다. Tornado NEO는 아날로그, 태풍의 눈에 들어왔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Technical data
AC-motors: 1
Drive system: RPM-regulated double belt drive with speed fine adjustment for the subplatter
AVC: Level 1
Speed range: 33 1/3 RPM and 45 RPM
Power adapter: External digital motor controller DMC-20 with super stable power supply
(100 – 260 V AC, 50 / 60Hz.)
(WxDxH: 24 x 22 x 6cm; 2.6 kg)
Control panel: External with flexible placement
Bearing: High-precision Dura Turn Diamond® bearing
Tone arm base: Up to 3 adjustable armboards
1 x designed to fit to customers tonearm
2 more armbases mountable (sold separately)
Tone arm compatibility: 9 to 12 inch
Maximum number of tone arms: 3
Platter: Aluminum anodized(Ø 310 x 50 mm / 11 kg), with Silencer modules
Silencer: 4
Chassis: 45 mm aluminum alloy
Feet: 3 height-adjustable gel-damped aluminum feet
Dimensions (WxDxH): 450 x 460 x 160 mm
Weight: 26,5 kg
제조사 : 어쿠스틱 시그니처 (독일)
공식 수입원 : ㈜ODE
공식 소비자 가격
Tornado NEO : 9.900.000원
TA2000 NEO : 4,900,000원
MCX-2 : 1,390,000원
제품 문의 : 02-512-4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