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서막
한 때 지금은 고인이 된 짐 틸의 스피커를 좋아했다. 틸 CS1.6부터 CS2.3, CS2.4 정도까지 직접 집에서 운용하면서 무척 재밌게 즐겼던 기억이 있다. 이후 CS3.6이나 CS7.2까지 탐내보았지만 이미 조금 취향이 바뀌어있었던 터였다. 워낙 넓고 입체적인 공간감을 펼쳐주었기 때문에 당시 아발론과 함께 가장 좋아했던 스피커였지만 이미 ATC나 다인 같은 스피커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틸이나 ATC 같은 스피커와 매칭했던 앰프가 클라세였다. 틸에선 너무 날 서고 차가운 느낌이 강조되어 얼마 못가 내쳤지만 ATC와 꽤 좋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당시 브라이스턴과 클라세 등 캐나다 쪽 브랜드를 참 좋아했던 듯하다.
이후 오랜만에 클라세를 다시 만난 것은 케프 레퍼런스 203 스피커 때문이었다. 오디오 라이프를 되새겨보면 유독 파워앰프는 동일한 브랜드를 여러 번 다시 들이곤 했는데 브라이스턴, 플리니우스, 패스 알레프 같은 앰프와 함께 클라세도 그랬다. 언제나 훌륭한 밸런스를 잃지 않았고 탁 트인 개방감과 함께 무엇보다 앞으로 치고 나오는 역동적인 리듬감이 좋았다. 한참 전이었기에 “그 땐 그랬지” 정도로 이해해도 좋다. 그리고 이후 B&W 노틸러스나 심지어 매트릭스 같은 스피커와도 좋은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딱 클라세 401 정도까지였다. 이후의 클라세는 어느 때부턴 잊혀졌다. 지금 와서 말하지만 시그마 라인업들에 대한 실망이 컸기 때문인 듯하다. 이후 델타 시리즈가 나왔지만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 계기가 되었다. 때로 이런 순간의 실망감은 편견을 낳고 그 자장은 상당히 길게 이어지곤 한다. 그러나 클라세가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은 안타깝게 다가왔고 역사 속으로 영원히 잊힐 듯한 그들은 귀신처럼 다시 환생했다.
셋업 & 시청
여전히 편견은 남아 있었다. 델타 시리즈는 그렇게 좀 더 잊힐 듯 말 듯하다가 다시 만나게 된 옛 친구 같은 인상이었다. 셋업은 B&W 802D3 그리고 DAC는 dCS 바르톡을 선택했다. 물론 클라세 델타 프리앰프 내부에 DAC가 내장되어 있긴 하지만 별도의 소스기기를 붙이는 게 더 공정한 평가가 될 듯해서다. 물론 소스기기에 따른 음질적인 변수는 감안해야겠지만. 참고로 dCS는 두텁고 진한 소리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높은 해상도에 예리한 표현력을 가진 섬세한 녀석이다. 더불어 컨트롤은 dCS 모자익을 활용했음을 밝힌다. 시청 공간은 서초동 AV플라자의 시청실에서 진행했다.
필자가 지겹도록 많이 경험해본 당시의 클라세 이후 시그마와 이전 세대 델타를 건너뛰고 만난 델타 시리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내가 생각하던 클라세를 단숨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다. 일단 전체적인 밸런스가 과거에 비해 한두 단계를 내려와 차분한 인상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안정된 토널 밸런스 속에서 힘 있게 802D3를 다잡아주었다. 예를 들어 사라 맥라클란의 ‘Angel’같은 곡을 들어보면 명료한 포커싱이 맺히며 앞뒤로 둥그런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보컬의 음상이 과장이 되지 않고 마치 촛불처럼 동그란 모양으로 정확히 맺힌다.
흥미로운 점은 볼륨이다. 아무리 높게 올려도 시끄럽지 않으며 다이내믹스 표현이 왜곡되거나 무대가 흩어지지 않고 거의 그대로다. 반대로 낮은 볼륨에서도 좌/우 밸런스가 틀어지거나 토널 밸런스가 심하게 왜곡되는 현상은 찾을 수 없다. 최근 사용해본 앰프들이 대개 0.5dB 간격으로 움직이는 것과 달리 확실히 0.25dB단계로 조정되는 볼륨의 차이는 체감상 상당히 커다란 차이를 불러왔다. 지근거리에서도 매우 섬세하고 세밀하게 집중해 듣기 좋은 앰프다.
전체적인 음조는 굳이 따지자면 약간 밝은 편이지만 최근 발매되는 하이엔드 앰프들에 비하면 편안한 느낌이다. 과거 클라세를 상상하면 상상도 안 되는 소리지만 델타는 낮은 고역부터 그 상위 대역이 편안하게 롤오프되는 느낌이다. 따라서 트랜지스터지만 장시간 시청에도 피로감을 느낄 사이가 없었다.
예를 들어 부시 트리오가 연주한 드보르작의 ‘Dumky’를 들어보면 부드러운 가운데 힘 있게 곡을 전개해나간다. 사실 이번에 테스트에 사용한 802D3 스피커는 여러 앰프와 사용해보았는데 클라세와 매칭에선 스피커의 투명도와 아주 안정적인 토널 밸런스를 무척 충실하게 보좌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클라세 델타와 조합에서 다이아몬드 트위터가 자극적으로 치닫지 않으며 해상도의 손실 없이 깊고 넓게 기지개를 켜는 듯한 모습이다. 미드레인지는 비대함과 거리가 있으며 슬림한 쪽에 가깝다. 따라서 온도감은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서늘하지도 않은 중용적인 음조를 선보였다.
전체 주파수는 아주 세밀하게 조탁한 듯 빈 공간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예전의 바이폴라 트랜지스터가 아니라 Mosfet을 활용한 점 그리고 더 정확히는 무려 35와트까지 클래스 A로 작동하게 설계한 점이 작용한 듯하다. ‘Dumky’에서도 체감했지만 보즈 스캑스의 ‘Thnks to you’에서도 중역대 투명도와 디테일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약간 얇지만 유기적으로 매우 조화롭게 짜여진 낮은 중역이 클라세에 우수한 질감 표현을 터득하게 만들었다.
시청하는 내내 레벨미터의 움직임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 앰프는 8옴 기준 채널당 3백 와트라는 대출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실재 시청 시간 동안 일반적인 볼륨에선 거의 클래스 A로 작동한 것으로 판단된다. 아무리 순간 최대 출력이 높다고 해도 일반 가정환경에선 보편적으로는 35와트를 넘기는 일이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대부분 A클래스로 즐기는 셈이 된다. 클라세가 열 감지 센서와 함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탑재해 액티브 방열 시스템을 마련해놓은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다.
주파수 특성은 아주 고른 균형감을 가지고 있지만 동적이 특성에선 여전히 치고 빠지는 모습이 민첩하다. 하지만 대충 겉핥기식으로 코드 시퀀스를 뛰어넘지 않고 또박또박 짚어나간다. LA4의 ‘Spain’처럼 여러 타악기가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중, 저역이 뭉치지 않으며 깊은 부분까지 낙차 폭을 분명히 표현해준다. 역시 리듬, 페이스 & 타이밍 측면에선 왕년의 클라세다운데 지나치게 호들갑 떨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기민하게 움직이는 타입이다. 마커스 밀러의 ‘Trip trap’을 들어보면 우퍼를 빠르게 강타하고 흔들어 재빠르게 제어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무척 해맑은 중, 저역으로 그 양이 많진 않지만 응집력은 무척 뛰어나다. 예를 들어 볼더보단 더 빠르고 해맑지만 패러사운드보단 단단하고 차분한 인상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낮은 중역과 높은 저역이 강조된 음원에 익숙해져있다는 걸 요즘 주변에서 많이 관찰할 수 있다. 이런 상업적 마스터링은 빵빵하게 과장된 미드/베이스 사운드를 스탠더드로 생각하게 만드는 과오를 저질렀다. 더 심하면 그런 소리를 이른바 구동력이 좋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클라세 델타 시리즈를 들어보면 과연 어떤 앰프가 중용적인 밸런스와 탁월한 스피커 제어력을 가진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송광사의 새벽예불] 중 ‘법고’를 들어보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중, 저역 양감과 자연스러운 밸런스 그리고 저역 펀치력을 실감할 수 있다.
다이내믹레인지 표현도 마찬가지다. 좁은 다이내믹스 표현력과 대역폭 안에서 쥐어 짜내는 듯한 느낌이 전혀 없다. 매우 넉넉한 다이내믹 마진 안에서 폭넓은 강, 약 컨트라스트가 표현된다. 음악의 생동감이란 주파수 특성과 동적 특성 모두 조화롭게 충족되었을 때 제대로 살아난다.
오스모 밴스케 지휘,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는 말러 교향곡 6번 1악장의 쾌감은 상위 대역이 아닌 하위 대역에서 치고 올라온다. 서서히 고조되는 음표들의 세기는 마치 성큼성큼 다가오는 운명의 그림자처럼 발끝부터 어둠으로 물들이는 듯하다. 약음에서 강음까지 세밀한 그라데이션을 표현하기 때문에 높은 볼륨에서도 시야가 선명하다. 전/후 거리가 깊고 특히 전면으로 쏟아지기보단 후방으로 깊게 형성되는 사운드스테이징 덕분에 교향곡 재생에도 일품이다. 델타 프리앰프의 볼륨은 디폴트 세팅에서 –93dB에서 +14dB인 점을 감안할 때 최대 –20 dB까지 끌어올려도 무대가 산만해지지 않고 질서 정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델타 프리앰프의 내장 스트리머를 활용해 시청에 들어갔다. 이미 dCS 바르톡으로 들었던 곡들을 다시 들으면서 그 차이를 살폈다. 시청 결과 내장 네트워크 스트리머를 활용했을 때 델타는 좀 더 경쾌하고 밝게 표현되었고 소리의 덩어리가 묵직하고 크게 다가온다. 무대도 좀 더 앞으로 나와 역동적인 편이어서 이런 소리를 좋아한다면 내부 스트리밍 DAC를 활용해도 좋을 듯하다. 외부에 뮤직서버나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추가하는 것도 고려해볼만하다. 아무튼 소스기기에 따른 소리의 변화를 그대로 받아내는 앰프이므로 소스기기 선택이 캐스팅 보트가 될 듯하다.
총평
어림잡아도 약 10년 이상의 시간을 뛰어넘어 오랜만에 조우한 클라세다. 그리고 클라세 델타는 어느새 나의 심연 속에 자리 잡았던 그 이전의 클라세를 일거에 몰아냈다. 시종일관 경쾌하고 약간 거칠었지만 호기롭게 날뛰던 클라세를 좋아하던 시절의 클라세는 어느새 더 성숙하고 더 노련해져 있었다. 옛날 같으면 조금 밋밋하다고 싫어했을 수도 있다. 빵빵하게 부풀린 중저역과 날선 고역을 좋아했고 록과 재즈를 좋아했던 시절이었으니까. 지금은 재즈와 클래식 감상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클라세 델타의 소리에 더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객관적 견지에서 이것이 훨씬 더 좋은 소리라는 데 이견이 없다. 클라세의 고군분투의 세월은 한 스푼도 빠짐없이 단단하고 밀도 높게 델타에 깃들어 있었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전체 크기
가로 : 17.50 in (444 mm)
세로 : 19.37 in (492 mm)
높이 : 8.74 in (222 mm)
무게
전체 무게 : 111.6 lbs (50.6 kg)
순 무게 : 97.7 lbs (44.3 kg)
일반
주파수 응답 (-3dB, 50Ω 소스 임피던스) : 1Hz ~ 650kHz
정격 출력 : (1kHz, 0.1% THD+N 기준)
300W / 8Ω
600W / 4Ω
1000W / 2Ω (AC 라인이 일정하게 유지)
고조파 왜곡 (측정 대역폭: 500kHz, 25Vrms, 4Ω 또는 8Ω)
1kHz에서 0.0016% 미만
10kHz에서 0.0018% 미만
20kHz에서 0.0028% 미만
고조파 왜곡 (측정 대역폭: 90kHz, 25Vrms, 4Ω 또는 8Ω)
1kHz에서 0.0005% 미만
10kHz에서 0.0006% 미만
20kHz에서 0.0015% 미만
최대 출력 전압 (공칭 AC 라인)
148Vp-p ( 8Ω )
156Vp-p ( 부하 없을 시 )
입력 임피던스 (1kHz, 밸런스/싱글 엔드 기준) : 82kΩ
전압 게인 (1kHz, 밸런스/싱글 엔드 기준) : 29dB
상호 변조 왜곡 (SMPTE 4:1) (8Ω 또는 4Ω, 밸런스/싱글 엔드) : 0.001% 미만
상호 변조 왜곡 (CCIF) (8Ω 또는 4Ω, 밸런스/싱글 엔드) : 0.002% 미만
신호 대 잡음비 (괄호 안의 A 가중) (22kHz BW) : 117dB (119.5dBA)
슬루 레이트 : 72V / μs
출력 임피던스 : 0.01Ω (100Hz), 0.011Ω (1kHz), 0.015Ω (10kHz)
댐핑 팩터 (1kHz 기준, 8Ω 참조) : 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