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페이커트 Blackbird 도입
총 8부에 걸쳐 아날로그 시스템 구축기를 연재하면서 기존 트랜스로터 턴테이블의 카트리지 교체, 그리고 포노앰프 매칭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챕터다. 사실 이번 챕터가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바로 닥터 페이커트 Blackbird를 도입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 턴테이블을 들이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카트리지의 변화를 주어야했고 새로운 카트리지를 도입했다. 그리고 포노앰프의 매칭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우선 Blackbird 턴테이블은 크리스 페이커트 박사가 설립했다. 원래 프로트랙터 제작으로 유명했는데 턴테이블까지 만들어내면서 지금은 독일은 물론 유럽, 미국에서도 대표적인 하이엔드 턴테이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물리학 박사인 크리스 페이커트는 기존 턴테이블에서 약점으로 지적되던 여러 문제점을 해소한 구조의 턴테이블을 제작했다. 기본적으로 Woodpecker, Blackbird, 그리고 Firebird 등 세 개 턴테이블이 대표적이다.

하위 모델에서 상위 모델로 올라갈수록 일단 모터의 개수가 증가한다. 중간 모델인 Blackbird는 모터가 두 대. 일단 크리스 박사는 아무리 좋은 모터라고 해도 하나의 모터가 플래터를 당겨 회전시킬 경우 베어링이 한 쪽으로만 힘을 받을 경우 여러 면에서 턴테이블 성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그래서 Blackbird 부터는 복수의 모터를 사용하는데 럼블이 없고 와우 & 플러터 수치가 매우 낮다. 더불어 속도 안정성은 굉장히 뛰어난 편이다.

역시 물리적인 부분은 흠 잡을 곳이 없는데 대표적으로 인버티드 베어링 방식으로 설계해놓았다. 마찰, 럼블을 최소화하고 접촉 면적도 적은 편이다. 두 개의 3상 DC 모터로 회전하는 POM 소재 플래터를 보면 거의 정지한 듯 정교하게 회전한다. 플린스는 MDF 기반 중간 코어를 중심으로 상판과 하판에 알루미늄 판을 덧댄 3중 샌드위치 방식으로 진동을 최소화하고 있다. 트랜스로터, 타옥 오디오랙 등 내가 사용하고 있는 것들처럼 진동에 대한 일관적인 대응이 돋보인다.

가장 흥미로운 건 톤암 장착 방식이다. Blackbird 같은 경우 총 두 개의 톤암을 기본 장착할 수 있다. 메인 톤암보드는 12인치 톤암을 지원하는데 톤암 호환성이 무척 좋은 편이다. 슬라이딩 방식 톤암 보드 덕분에 플린스 개조 등이 필요 없이 다양한 톤암을 장착할 수 있다. 나의 Blackbird는 12인 Reed 3P 톤암이 장착되어 있다. 두 번째 톤암은 SME V 톤암이다. SME가 언제부터인가 톤암만을 별도로 판매하지 않게 되면서 SME 톤암 단품이 무척 귀해졌다. 간만에 만져보는 SME V 톤암은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톤암답게 만듦새, 소재, 구조 등 기막히게 잘 만든 명기다.

카트리지는 지난번에도 한번 언급했던 하나 Umami Red 카트리지를 일단 장착했다. 그리고 두 번째 톤암엔 일단 데논 DL-103R을 달아놓았다. 아마도 데논은 조만간 소박당하지 않을까 짐작된다. 직스(Zyx) 카트리지를 구해놨기 때문이다. 여기에 포노앰프는 패러사운드 JC3+를 매칭했다. 서덜랜드 PhD도 훌륭하지만, XLR 출력을 했을 때 JC3+가 투명도, SN비, 사운드스테이징 등 몇몇 부분에서 좀 더 앞서는 모습니다.

어쨌든 긴 아날로그 세팅이 끝났다. 유튜브 촬영하느라 글 쓰느라 남의 오디오 리뷰하면서 중간 중간 짬을 내어 세팅했다. 물론 아직 미진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대로도 어느 정도 만족한다. 최근 레가 Planar 3 에코 스페셜을 리뷰하면서 이 정도만 해도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다. 나 또한 약 20여 년 전에 Planar 3로 아날로그 사운드에 빠져들었던 시간이 생각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다가 여기까지 왔다. 이 정도 시스템이면 몇 배는 더 좋을 거라 생각하지만 비용 대비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조그만 차이와 미묘한 변화에 열정을 쏟는 게 오디오의 즐거움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