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파이 오디오의 여명
때는 1990년대 중반을 갓 넘긴 시절. IMF 구제 금융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가장들은 불황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세상은 높은 물가와 기업의 줄도산으로 신음하고 있었고 별다른 방도를 찾을 시간도 없이 우울에 빠졌다. 필자는 그 당시 학생이었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 쓰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힘든 시기였지만 그 무거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음악으로 하루하루 견뎌냈던 것 같다.
당시 시대적 상황은 엄청나게 폭등한 환율을 선사했다. 이것은 오디오 마니아들에겐 벼락같은 일이었다. 해외 제품들의 현지 가격이 공유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정보력이 빠른 사람들 외엔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수입 오디오의 가격은 현지 가격 대비 어마어마한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 지금 찾아보면 정말 무시무시했다. 하긴, 달러당 2천원이 넘은 적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 오디오는 되레 호황기였다. 수입된 지 20년이 훌쩍 넘은 기기들이 지금도 중고시장에 그렇게나 많이 누적되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이 판매되었는지 가늠도 안 될 정도다. 매킨토시를 시작으로 크렐, 오디오 리서치 등의 하이엔드 앰프뿐만 아니라 프로악, B&W, 윌슨 등 다양한 스피커들이 인기를 끌었다. USB DAC나 네트워크 스트리밍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많은 직장인들은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개성 있는 음질을 들려주는 작은 하이파이를 구사했다. 집에 가지고 들어와도 크게 티가 나지 않고 가족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만한 그런 기기들 말이다. 어쿠스틱 에너지, 셀레스천 같은 스피커나 프로악, 스펜더, 하베스 같은 곳에서 나온 북셀프들이 타깃이 되었다. 거기에다 네임, 린, 사이러스 등 일명 ‘도시락 앰프’들도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녔다. 작고 실용적인 앰프들이 인기였던 시절이다. 경제적 상황과 반대로 새로운 하이파이 오디오 시장의 여명이 밝던 때였다.
벨칸토 디자인
서두 치곤 길었다. 하지만 지금 필자의 앞에 놓인 벨칸토 디자인의 C6i를 보고 있자니 1990년대 당시의 용산과 세운상가 풍경이 떠오른다. 학생 시절이라 한창 구경만 다니다가 오디오는커녕 음반만 한, 두 장 사서 돌아오곤 했지만 오디오 숍의 쇼윈도에서 반짝이는 오디오들을 한참이나 구경하다가 아쉬운 발길을 돌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벨칸토 디자인에서 나온 이 앰프도 언뜻 보면 그 시절을 떠올리듯 하프 사이즈에 검은 색 컬러와 단순한 디스플레이 등 나만의 공간에서 음악의 세계로 잠입하게 해줄 것만 같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겉으로 보기에 아주 단순한 순수 인티앰프처럼 생겼지만 이런 저런 면모를 살펴보면 이 제품은 확실히 21세기 제품이다. 그리고 블랙 시리즈로 하이엔드 앰프의 첨단을 보여준 벨칸토가 가격 대비 성능을 최우선 목표로 개발한 e.ONE C6i를 공개했다. 사실 이 앰프는 전적이 있다. 다름 아닌 C5i라는 전작이다. 하지만 당시 앰프의 경우 게인이 너무 작아 거치형으로 쓰기엔 부족한 면이 있었다.
벨칸토 DAC를 품은 인티앰프 C6i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후속기로 개발된 C6i는 동일한 컨셉의 동일한 기능을 가진, 동일한 디자인의 제품이지만 그 성능을 일신한 모습으로 베일을 벗었다. 일단 C6i라는 제품을 요약해서 설명하면 DAC가 내장된 인티앰프다. 네트워크 플레이어까지 내장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아무래도 책상에서 쓰기 좋은 제품이기에 크게 무리는 없어 보인다. 물론 랙에 올려놓고 거치형으로 사용하기에도 문제없다. 전작에 비해 게인이 확실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우선 출력부터 살펴보면 4옴 기준 120와트였던 전작에서 125와트로 출력은 약간만 상승했을 뿐이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 차이가 발견된다. 예를 들어 채널당 최소 로딩 임피던스가 2옴으로 전작에 비해 1옴 더 낮아졌다. 스피커가 최소 2옴까지 내려가도 너끈히 대응해줄 수 있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댐핑 팩터는 기존의 1000에서 오히려 400으로 낮아졌다. 벨칸토 REF600M 모노블럭 파워앰프의 댐핑 팩터가 1000, 예전에 사용했던 강력한 구동력의 클래스 D앰프 AI700U이 500 정도였던 걸 감안하면 여전히 준수한 수치다.
이 외에 다이내믹레인지도 120dB로 높아졌다. 전고조파 왜곡율은 0.003%, IMD는 0.0003%로서 왜곡이 굉장히 적은 앰프라고 할 수 있다. 아주 깨끗하고 선명한 소리를 내는 벨칸토 앰프답다. 입력 임피던스의 경우 라인 입력에서 기존에 11K옴으로 작았던 반면 이번엔 47K옴으로 더욱 커진 점도 마음에 든다. 더불어 포노단을 탑재하고 있는데 이는 여전히 47K옴/150pF 로 고정이어서 MM 카트리지만 사용 가능하다. 그래도 입문형 포노앰프 구입할 예산은 조금이라도 절약 가능한 게 어딘가.
헤드폰 출력단도 이 앰프를 매우 쓸모 있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벨칸토에선 저 임피던스, 고출력 헤드폰 앰프 회로를 내장하고 있어 매우 뛰어난 성능을 내준다고 하는데 이번엔 그 성능이 스펙에서부터 개선되어 보인다. 더불어 라인 출력 임피던스의 경우 기존에 입력 임피던스가 100옴이었던 것에서 이번엔 500옴으로 높아진 모습이다. 스피커 출력은 좌/우 각 한 조씩 지원하므로 한 조의 스피커만 연결해 운용 가능하다. 바인딩포스트는 뛰어난 결속력을 자랑하는 WBT NextGen 제품을 사용하고 있어 든든하다.
이번 C6i의 이런 변화의 중심엔 무엇보다 클래스 D 증폭 모듈의 교체가 있다. 벨칸토는 블랙 시리즈에서 모두 하이펙스 모듈을 사용했는데 기존 C5i의 경우 B&O 제품을 써서 의아했던 게 사실. 이번엔 벨칸토의 특주 하이펙스 Ncore를 사용하고 나섰다. 아무래도 벨칸토가 오랫동안 많은 모델에 적용하면서 잘 다루었던 Ncore이기에 가능한 라인업 교체였다.
이 앰프의 장점이라면 아무래도 DAC가 내장되었다는 점이다. 아날로그 입력은 라인 입력 한 조와 포노단 한 조 등 두 조만 지원하지만 디지털 입력은 무려 다섯 조나 지원하고 있다. 동축 입력 하나, 광 입력 둘 그리고 USB 입력 하나가 그것이다. USB 입력단은 USB 2.0 규격으로 24/192 PCM 뿐만 아니라 DSD의 경우 DSD128까지 지원해 재생 못할 음원은 거의 없을 듯하다. 더불어 저 노이즈 마스터 클러과 비동기 인터페이스 그리고 저노이즈 고효율 전원부 등을 특징으로 하는 HDR(High Dynamic Resolution) 회로를 투입해 디지털 섹션에 특히 공을 들인 인상이다.
청음평
이전에 벨칸토 C5i 앰프를 처음 테스트할 때 나는 벨칸토 피델리오 앙코르에 매칭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일단 게인이 너무 낮아서 청취 위치에서 적당한 사운드를 얻기 위해 볼륨을 너무 많이 올려야했기 때문이다. 볼륨을 너무 높이 올려야만 하는 경우 불편하기도 할 뿐더러 순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그라함의 챠트웰 LS3/5A를 매칭해서 들을만한 사운드를 얻을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단순히 후속기라고 하기엔 증폭 모듈 자체가 바뀌었고 청감상 게인도 올라갔고 순도 등 모든 면에서 일신한 모습이다. 호기롭게 베리티 Rienzi에 매칭 했는데 충분히 뛰어난 앰프 성능을 발휘해주었다. 한편 웨이버사 Wcore 및 마이트너 MA1 DAC 등을 테스트에 활용했다.
역시 벨칸토 앰프를 처음 들었을 때 블랙 시리즈부터 줄곧 놀라게 되는 소리의 순도는 아주 마음에 든다. 예를 들어 다이애나 크롤의 ‘A case of you’를 파리 라이브 실황으로 들어보면 깊은 심도를 중심으로 맑은 피아노가 싱싱하게 넘실댄다. 전체적으로 사운드의 무게 중심은 아주 높지도 낮지도 않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조금 높은 편으로 밝고 청명한 사운드로 일관한다. 피아노 타건이 아주 또렷하며 보컬도 적당한 사이즈로 매우 명징한 포커싱을 보이는 하이엔드 지향 사운드다.
매우 빠르고 명쾌한 어택과 디케이를 보여주는 앰프다. 질척이거나 딜레이가 느껴지지 않아 깨끗하고 시원시원하다. 예를 들어 존 메이어의 초창기 녹음인 ‘Clarity’를 들어보면 경쾌한 리듬을 타고 존 메이어의 목소리가 툭 앞으로 튀어나와 호소력 짙게 노래한다. 이어 1분 20여초가 경과하는 시점부터 바닥을 강타하는 리듬 파트가 깊고 웅장하게 요동친다. 확실히 저역 제어력이 블랙 시리즈의 트리클다운이라고 인정할 만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민첩할 뿐만 아니라 힘의 완급조절을 매우 기민하게 펼쳐낼 줄 아는 앰프다. 속도감이나 빠른 악곡의 변환 그리고 리듬의 변화가 급격하게 펼쳐질 경우에도 아티큘레이션의 흔들림이 없다. 아주 쉽게 완급 조절을 해나가며 가볍게 풋웍을 밟아나간다. 예를 들어 포플레이의 ‘Tally ho!’에서 숨쉴 틈도 없이 전개되는 악곡의 변화에서도 전혀 뭉개거나 대충 얼버무리지 않고 송어처럼 빠르게 리듬감을 낚아채 리얼하게 전달해준다.
전체적으로 무대를 깊고 넓게 그리는 스타일이라 클래식 레코딩 재생에도 유리한 편이다. 특히 대편성 교향곡이나 피아노 협주곡 등 악기들의 전/후 레이어링이 특히 중요한 악곡들에서 매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중 ‘Emperor’를 들어보자. 아르투르 피자로의 피아노 그리고 찰스 매커라스가 지휘하는 스코틀랜드 챔버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섬세하고 깊게 파고든다. 이슬처럼 맑고 투명하며 세심한 피아노 연주에 더해 화려한 색채의 챔버 오케스트라 연주도 탈색이나 착색을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맑고 강건하게 표현해준다.
총평
서두에 하프 사이즈의 과거 실용적 인티 앰프들을 열거하며 시작했지만 테스트를 마친 지금 현재 앰프의 증폭 기술이 얼마나 음악 재생에 기여했는지 가늠해볼 기회가 되었다. 그만큼 하이펙스 클래스 D 증폭 모듈에 대한 벨칸토의 이해도와 특주 모듈의 성능이 어떻게 벨칸토의 심장이 될 수 있었는지 깨닫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내장 DAC의 기능과 성능도 꽤 뛰어난 편이니 책상 위 시스템이나 방에서 작지만 고성능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적극 검토해보길 권한다. C6i는 벨칸토가 추구하는 하이엔드 사운드의 요약본 같은 제품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Amplifier Section
Power Output 1% THD: 126W per channel into 4 ohms
Minimum Load: 2 ohms per channel
Peak Output Current: 12.5 amperes
Frequency Response: +/-3 dB 1.5Hz-50KHz
THD+N: 0.003% 1W, 1KHz, 4 ohms
IMD (CCIF): 0.0003%, 1W, 14:15KHz, 4 ohms
Output Noise: <30uVRMS A-weighted 10Hz-20KHz Damping factor: >400
Output Impedance at 100Hz: <20 milliohms
Dynamic Range: 120dB
Digital Inputs
Maximum Data Input Rate
24/192: SPDIF RCA x1, TOSLINK x2
24/192 and DSD128: USB
Analog Inputs
Line in impedance: 47 Kohms
Phono in impedance: 47 Kohms//150pF
Phono accuracy: +/-0.25dB, 50Hz-15kHz
General
Output connections: 2-sets of Binding Posts, RCA Line Out, Headphone Output
Headphone Output Current and Voltage Level: 100mA peak
Line Out Impedance: 500 ohms
Power On usage: 14W
Power Off usage: 0.0W
Internally Set Operating Voltages: 100-120VAC or 230-240VAC 50/60 Hz
Size : 8.5 x 3.5 x 12 inch, 216 x 88 x 305mm (W x H x D)
Weight: : 13lbs, 6.5Kg
Features and specifications are subject to improvements and changes without prior not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