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러 DAC가 문지방을 넘나들어 모이고 있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이리 저리 사 모으고 빌리다보니 총 네 개 DAC가 모였다. 두 대는 내 소유고 두 대는 빌려온 것. 사실 이 테스트는 반오디오 덕분에 촉발되었다. 수 년 전 반오디오 Firebird MKII를 처음 접한 이후 기존 델타 시그마 칩을 사용한 DAC와 확연히 다른 사운드에 놀랐고 그 소리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최근 MKIII가 출시되었는데 도무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일단 반오디오 Firebird MKIII가 준비되었고 여기에 해외에선 R2R 래더 DAC 중 탑 클래스로 인정받는 MSB의 Analog DAC를 준비했다. 또 하나는 몇 년째 사용 중인 마이트너 MA1 DAC. 그리고 또 하나는 최근 영입해 아주 재밌게 듣고 있는 AMR의 DP-777 DAC 겸 프리앰프다. 눈썰미가 있으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총 세 개가 R2R 멀티비트 래더 DAC고 마이트너만 예외다. 아니, AMR DAC의 경우는 델타시그마와 16비트 멀티비트 둘 다 지원하는 독특한 설계의 DAC다.
우선 마이트너는 무척 견고하고 예리한 사운드다. 내 시스템에 제법 오래 가지고 있어 음원이나 여타 제품 테스트할 때도 활용하는데 이번에도 무척 중립적이며 깔끔하고 해상도 높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한편 MSB는 래더 DAC지만 일반적으로 R2R 래더 DAC이라고 하면 포근하고 중역이 도드라지는, 약간 회고적인 사운드로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물론 마이트너에 비하면 음촉이 부드럽고 온기가 있지만 디테일도 수준급이다.
AMR은 네 개 DAC 중에 가장 아날로그에 가까운 소리를 들려준다. 물론 핍립스 계열 멀티비트 DAC를 사용한 클래식 DAC 모드로 재생할 때 더 그런 성향이 부각된다. DAC 칩셋의 성격도 한 몫 하지만 출력단에 6H1N 진공관을 사용해 출력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특성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추측된다. 평소 음향이 아닌 음악에 집중해서 들을 때 가장 선호하는 특성들이 많이 들린다. 달콤하고 진한 중역, 부드럽게 올라가다 여운을 짙게 남기는 사운드.
마지막으로 반오디오 Firebird MKIII는 확실히 마이트너보단 MSB와 AMR 쪽에 기울어 있다. 그러나 디테일, 다이내믹스도 델타 시그마 방식에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마이트너보단 소리의 두께와 질감이 더 잘 드러나고 MSB보단 음상이 크고 중후한 느낌이 있다. AMR보다 해상도, 전체적인 윤곽 표현이 한 수 위다. 들어온 지 며칠 안 되었기 때문에 아직 단정하긴 힘들지만 들을수록 음악을 곱씹게 만드는 면이 있다.
맹목적 추종보단 냉정한 비교가 여러 사람에게 더 이로울 때가 많다. 명기는 사실 편향적 인기와 권위 위에 박제된 경우도 있고 불운하게도 무관으로 남는 경우도 있으니까. 과연 어떤 것이 명기로 남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