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 롤링
사람이 하나의 음식만 먹고 살 수 없듯 오디오 시스템도 다양성이 전제가 될 때 즐겁게 다양한 음악을 즐기기에 좋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좋아하지만 종종 생선, 해물이 당기기도 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재료는 최종 음식의 맛을 결정한다. 아무리 독특한 조리법과 간, 소스를 추가해도 식자재 고유의 맛은 절대 변치 않는 법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그렇듯 앰프에서 증폭 소자는 그러한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진공관이냐 트랜지스냐’ 정도 큰 틀에서 이야기하면 각 소자마다 어느 것이 최고라기 보단 서로 성질이 다르고 최종적으로 그 맛이 다르다고.
트랜지스터야 현재 메인스트림 앰프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니 논외로 하더라도 진공관이 현재에도 여전히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건 의외일 수 있다. 수 와트에 이르는 저출력 진공관 앰프를 이어 대출력의 트랜지스터 앰프들이 출시되었을 때 사람들은 진공관 앰프가 사라질 거라고 속단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 위력과 위세는 강력하다. 그럼 왜 진공관이 현대 하이파이 오디오에서도 살아남았을까?
진공관 앰프를 보면 누구나 그 아름다운 불빛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리고 음악이 흘러나오면 감성이 부풀어 오르는 걸 부인할 수 없다. 때론 고풍스럽고 독특한 디자인에 끌리기도 한다. 하지만 오디오 애호가들은 다른 무엇보다 음질에 집중한다. 트랜지스터에 비해 더 부드럽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고유의 불빛처럼 따뜻한 소리를 낸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출력 증가에 따른 왜율 변동 또는 배음의 짝수차 배음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더 깊게 들어가면 3극관이냐 5극관이냐 또는 빔관이냐에 따라서도 그 소리 특성과 스피커 매칭도 달라진다.
한편 이렇게 다양한 진공관의 저마다의 특징은 오디오 마니아들에게 취미성과 중독성을 증폭시킨다. 트랜지스터 앰프와 달리 진공관이라는 소자를 직접 교체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소리로 변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출력관의 변화는 미시적인 변화가 아니라 거시적인 변화를 낳는다. 6L6, EL34, KT88, KT150 등등 매우 다양한 출력관이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력 트랜스도 한 몫 하지만 이번엔 출력관의 변화에 따른 음질적 변화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간만에 재밌는 튜브 롤링이다.
적응형 자동 바이어스
EL34 진공관과 KT150을 직접 비교하게 된 것은 프리마루나 진공관 파워앰프 EVO400 덕분이다. 이 파워앰프는 프리마루나의 다른 앰프들이 모두 그렇듯 기본적으로 EL34를 장착해 출시된다. 프리마루나의 EL34 사랑은 대단한데 한편으로는 다양한 진공관으로 편리하게 교체,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놓았다. 예를 들어 6L6G, 6L6GC, 7581A, EL34, EL37, 6550, KT66, KT77, KT88, KT90, KT120 등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수는 바로 KT150이다. 그리고 프리마루나는 KT150에 대해 특별히 텅솔 출력관을 판매한다. 특별히 선별한 진공관에만 프리마루나 브랜드를 마킹해 프리마루나 사용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
진공관 앰프 애호가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EL34는 5극관이며 KT150은 빔관으로 전기적 특성이 매우 다르다. 내부 저항부터 그리드 전압, 플레이트 전압 등 모든 면에서 차이를 보이며 소리 또한 매우 다른 특징을 보인다. 일부 열혈 진공관 마니아들은 3극관만 쫒으며 때론 유럽에서 과거 생산된 초고가의 고전 송신관을 선호하고 5극, 빔관을 무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5극, 빔관들이 가장 합리적인 가격대에 구할 수 있는 진공관이며 설계만 잘하면 무척 좋은 소리를 만들 수 있는 출력관이다.
프리마루나의 경우엔 이런 다양한 5극관 및 빔관들을 비교적 자유자재로 자사의 앰프에 출력관으로 적용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수동으로 바이어스를 바꾸지 않고 진공관만 바꾸면 곧바로 앰프가 출력관에 적응해 작동한다. 물론 다양한 출력관 적용 기능이 프리마루나만의 특권은 아니다. 다양한 진공관 앰프 메이커들이 이런 기능을 제공한다.
하지만 프리마루나는 어댑티브 오토 바이어스, 즉 ‘적응형 바이어스’ 방식을 독자적으로 개발 적용하고 있다. 이는 고정형 바이어스 방식의 일종으로 출력관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서 그때 그때 필요한 바이어스를 맞추어준다. 프리마루나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다수의 메이커가 사용하는 ‘오토 바이어스’ 방식이라고 부르는 ‘Cathode Bias’, 즉 진공관에 따라 자동으로 바이어스를 맞추어주는 방식이나 또는 진공관을 바꾸면 바이어스를 바꾸어 주어야하는 ‘Fixed Bias’ 방식 모두 진공관의 수명의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오토 바이어스’라고 광고하는 메이커는 일종의 자기 최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수만불 대 하이엔드 앰프도 이런 일종의 ‘Cathode Bias’ 방식을 택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는 rpm 제한이 6,500rpm인 자동차를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5,500rpm 공회전시키는 것과 같다. 커다란 전력이 저항을 통해 엄청나게 낭비되는 상황과 같다. 여기서 발생하는 연료비와 내구성 저하는 진공관 앰프에선 전력 낭비와 진공관 수명의 저하와 비교할 수 있다. 프리마루나는 적응형 바이어스 설계를 통해 KT120 한 쌍을 가지고 100와트 출력을 내주는 앰프보다 42와트를 내주는 자사의 앰프가 여러 면에서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또 하나는 기술적으로 ‘고정 바이어스’ 방식을 고집하는 수동 바이어스 설계의 진공관 앰프들이다. 이 방식은 일단 상당한 불편함을 감수해야한다. 수동 바이어스 방식이기 때문에 네 개의 출력관을 사용한다면 쿼드 매치, 그러니까 네 개의 진공관 수치가 정확히 일치하는 진공관을 세트로 구입해야한다. 하지만 이런 제품들은 비싸다. 특히 NOS 매치드 쿼드 구관의 가격은 고공 행진 중이다. 구했다고 하더라도 이 세트가 계속해서 동기화되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 때문에 몇 개월에 한 번씩 바이어스를 다시 조정해 주어야한다. 구입할 때와 달리 사용하면 할수록 노후화되는 과정에서 각 진공관의 쿼드 매치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적응형 자동 바이어스’ 방식을 채용한 진공관 앰프 메이커는 일단 2003년 처음 선보인 프리마루나가 있고 두 번째는 미스테르라는 메이커가 있다. 그리고 하이엔드 진공관 앰프에 관심이 있다면 알고 있을 역전 노장 VAC가 있다. VAC가 이 기술을 적용한 Statement 450IQ는 페어에 112,000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프리마루나는 이런 적응형 오토 바이어스의 장점 중 하나로 진공관의 수명 연장에서도 찾고 있다. 일반적으로 출력관의 수명이 2,500에서 3,000시간인데 반해 프리마루나 앰프에서 사용한 출력관의 경우 두 배에 달하는 수명 연장을 이뤄냈다고 한다.
KT150이 만들어낸 변화
한편 이번엔 출력관의 변화에 따른 프리마루나 파워앰프의 음질적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프리마루나에서 제공한 KT150 여덟 개를 공수해왔다. 적용할 모델은 프리마루나의 최상위 파워앰프 EVO400. 일단 전원을 내린 후 EL34을 모두 빼고 그 자리에 KT150을 장착했다. 주의할 점은 KT150을 모두 장착한 후 반드시 우측 옆에 마련되어 있는 바이어스 조정 스위치를 ‘High Bias’로 조정해야한다는 점이다. 테스트엔 드보어 피델리티 Orangutan O/96 및 맨해튼 DAC를 활용했다.
출력관을 바꾸고 난 후 이전 EL34 버전과 차이는 대단히 크다. 음질 평가에 특별히 훈련되지 않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파트리샤 바버의 ‘A taste of honey’를 들어보면 어쿠스틱 기타의 첫 음부터 텐션이 높아져 있고 더 명료하다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손가락에 더 힘을 주어 핑거링하는 듯 짜릿하다. 보컬도 더 응집력이 높아졌고 더 선명하다. 음상이 뚜렷해졌고 해상도도 높아진 사운드. 섬세하고 텐션이 넘치는 사운드로서 왜 옥타브 같은 하이엔드 앰프들이 KT150을 사용하는지 알 것 같다.
약음들의 속삭임이 더 명료한 대비를 이루며 명랑하게 뛰어 노는 듯한 싱싱함이 돋보인다. 마이크로 다이내믹스의 상승으로 인한 실체감의 증대다. 예를 들어 다니엘 호프 연주로 듣는 막스 리히터의 비발디 ‘Spring 1’ 같은 곡에서 기존 EL34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며 역동적인 악기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온도감은 EL34에 비해 하강한 모습인데 역시 온도감과 해상도는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놓여있다. 단, 배경이 매우 깨끗해 소리가 땅 위로 올라오는 새싹처럼 생동감 넘치게 들리는 점은 다른 면에서 매력적이다.
포플레이의 ‘Tally ho!’ 같은 퓨전 재즈 레코딩에선 일단 심벌 소리가 더 섬세하고 들린다. 더 높은 대역까지 더 선형적으로 증폭해주며 그 뻗침이 EL34에 비하면 직선적이다. 이런 특성은 음악을 더 상쾌하게 만들며 쾌감을 증대시킨다. 한결 빠른 스피드는 물론이며 완급 조절이 마치 트랜지스터처럼 빠르다. 하지만 여전히 중역의 힘과 텐션이 충분히 살아 있어 속이 빈다던가 얇다는 느낌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진공관 앰프에서 이런 단단한 무게감과 팽팽한 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서 진공관의 발전이 놀랍다.
티에리 피셔 지휘, 유타 심포니가 연주한 말러 1번 4악장을 오랜만에 플레이스트에 올렸다. 초반부터 진격하는 저역의 울림은 기민하면서도 중량감이 으뜸이다. 오히려 매우 빠르고 강하게 낮은 대역까지 휩쓸 듯 재생해준다. 확실히 기존 EL34에 비해 전면으로 전진한 사운드 스테이징 형태를 갖추어 일부 스피커에선 근거리에서 들을 경우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무대의 전/후, 좌/우 폭은 확실히 넓고 쾌청하게 펼쳐지면서 현대 하이엔드 하이브리드 진공관 앰프의 그것과 같은 특징을 보여준다.
총평
필자의 경우 프리마루나 뿐만 아니라 다른 앰프에서도 초단, 드라이브관, 출려관 변경을 통한 이른바 ‘튜브 롤링’ 경험이 많이 있었다. 프리마루나의 경우에도 지금 사용하는 EVO400에 KT150을 투입해 리뷰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그라함 챠트웰 LS3/5A보단 베리티 피델리오 앙코르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었던 기억도 있다. 스피커 매칭이나 취향에 따른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성능 자체의 상승은 뚜렷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결론이다. 울트라리니어 모드 기준 EL34에서 70와트, KT150에선 89와트로 19와트 상승지만 단순히 출력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다이내믹스, 사운드 스테이징, 청감상 SN비 등 음질의 모두 세부 지표들이 들썩일 정도로 다채로운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동일한 앰프에서 이 정도의 변화폭은 상당히 이례적으로 KT150을 통해 EVO400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사진 : 오디오 평론가 코난
EVO 400 Preamplifier Specifications
Inputs : 3x Stereo RCA, 2x Stereo XLR, 1x Stereo HT Bypass
Outputs Stereo RCA : Stereo XLR, Stereo RCA Tape Out
Gain : 10 dB
Freq. Response : 10Hz-95kHz +/- 1dB
THD < 0.5% @ 2 Volts
S/N Ratio : 93 dB, 98dBA
Input Sensitivity : 650mV
Input Impedance : 220kΩ
Output Impedance : 256Ω
Power Consumption : 61 watts
Standard Tube Complement : 6 – 12AU7, 2 – 5AR4
Dimensions (WxHxD) : 15.2″ x 8.1″ x 15.9″
Weight : 52.8 lbs
EVO 400 Poweramp Specifications
Power: Stereo (Ultra-linear) 70 watts x 2 (EL34) (8Ω, 1% THD)
Power: Stereo (Triode) 38 watts x 2 (EL34) (8Ω, 1% THD)
Power: Mono (Ultra-linear) 140 watts (EL34) (8Ω, 1% THD)
Power: Mono (Triode) 82 watts (EL34) (8Ω, 1% THD)
Inputs : 1x Stereo RCA, 1x Stereo XLR
Outputs 4, 8, & 16 Ω (stereo), 2, 4, & 8 Ω (mono)
Freq. Response : 9Hz-60kHz +/- 1dB (8Hz-70kHz +/- 3dB)
THD < 0.1% @ 1W (< 2% @ Rated Power)
S/N Ratio : 95 dB, 105 dBA
Input Sensitivity : 1100 mV
Input Impedance : 100kΩ
Power Consumption :
470 watts (EL34), 480 watts (KT88), 540 watts (KT120), 550 watts (KT150)
Standard Tube Complement : 6 – 12AU7, 8 – EL34
Dimensions (WxHxD) : 15.2″ x 8″ x 15.9″
Weight : 68.2 lbs
제조사 : 프리마루나 (www.primaluna-usa.com)
공식 수입원 : 웅진음향 (www.wjsound.com)
공식 소비자가격 : 14,00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