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
유튜브에선 단 돈 몇 만원에 천상의 소리가 나는 오디오가 있다며 대중들을 자극하는 영상이 나온다. 또 한 쪽에선 과거 미국과 유럽에서 명기로 소문났던 제품들의 일명 복각(?) 제품들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한참 멍하니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모니터 옆 책장에 고이 잠들어 있던 책 한 권을 펼쳐들었다. JBL부터 크렐, 마크 레빈슨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하이파이 오디오 브랜드들의 명기들이 멋진 사진과 함께 소개되고 있었다.
그래, 이런 게 오디오였지. 넘보기도 힘들었을 정도로 값비쌌던 오디오 기기들이었지만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꼭 구매하고 말리라 결심하면서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던 당시가 생각난다. 그리 오래 전도 아니라서 우리가 지나온 시절은 불과 반세기도 되지 않아 보인다. 그리곤 다시 최근 오디오 도락의 풍경을 보니 조금은 서글퍼진다. 브랜드에 대한 존경이나 존중은 고사하고 오직 기능에만 매달려 있는 모습은 자못 적응이 안 된다.
그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한정된 예산에서 더 좋은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야 동병상련이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불같은 열기를 내뿜으며 절대 도달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꿈의 증폭 성능을 향해 용감하게 달려갔던 크렐. 마치 불구덩이 같은 열기와 엄청난 방열판에 저항 하나하나까지 선별해가면 만들었던 마크 레빈슨. 음악 외엔 모든 것을 지워버린 듯 적막의 배경을 선보였던 귀족 제프 롤랜드. 푸르른 배플만큼이나 엄혹했던 시절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렸던 제임스 랜싱의 유산. 좀처럼 잊을 수 없는 브랜드와 모델은 단지 기능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담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건 무엇일까?
다시 찾고 싶은 것
값비싼 하이엔드 오디오만 그런 결기와 모험, 극단의 이상을 위해 달려간 것은 아니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브랜드들을 살펴보면 마치 사람이나 그림 또는 한 권의 책처럼 각각 다른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어릴 적 지구본을 보면서 각 나라의 특징을 배우듯 브랜드마다 특징이 명료했고 명확한 철학 아래에서 그만큼 개성이 돋보이는 제품들을 잘도 만들어냈다. 미국에선 수천만 원대 하이엔드 오디오가 출시되면서 하이엔드 오디오가 무슨 무슨 운동이라고 되는 것 마냥 당시로선 파격적인 제품들이 줄을 이었다.
한편 영국에선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옹골찬 음질의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네임, 쿼드, 사이러스, 린, 레가 같은 브랜드가 그 주인공들이다. 지금이야 모두 각자 다른 길을 가면서 개성이 조금은 옅어진 브랜드도 있고 일부 메이커는 사실 본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자본과 맞바꾸어 희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디자인만 봐도 가슴이 뛸 만큼 매력적인 브랜드도 많이 남아 있다. 다시 찾고 싶은 것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다시 찾고 싶은 것들이 있다.
레가의 복심
아마도 이 중에서 오리지널리티를 가장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브랜드 하나를 꼽으라면 레가가 있다. 오리지널리티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그 오리지널리티가 밥 먹여주냐고…세상은 네트워크 스트리밍에 더해 카본, 알루미늄으로 온몸을 휘감고 클래스 D 증폭에 더 컴팩트한 사이즈의 올인원 스트리밍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데. 오리지널리티 타령은 지금 시점에 시대착오적일 수 있지 않냐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음악을 듣는 데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앰프란 이 케케묵은 증폭기란 스트리밍 시대에도 온전히 필요하다. 레가의 복심은 무엇일까?
OSIRIS로 화답하다
레가의 복심이 드러난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과거 저출력에 그저 능률이 높지 않은 고만고만한 스피커와 어울리던 레가는 그 목표를 상향 조정하기 시작했다. 오시리스로 제어하기 힘든 스피커는 다른 앰프로도 힘들 거라는 듯 자신감의 발로가 느껴진다. 외관만 봐도 알루미늄 섀시에 실제로 묵직한 무게는 권위적인 포름으로 다가온다. 어떤 자잘한 치장도 없이 볼륨과 셀렉터 그리고 좌우 방열판만이 검은 섀시 속에 단단하게 박혀 있다. 실제 무게는 25.6KG. 요즘 같아선 혼자 들기 힘들 정도다.
내부 설계를 따라가 보면 레가의 우직한 설계 철학이 절절히 느껴진다. 스펙을 살펴보면 일단 8옴 기준 채널당 162와트로 꽤 큰 출력을 보여준다. 게인은 44dB로 인티앰프 치곤 큰 편. 전 고조파 왜곡율은 0.05% 미만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정보로 이 앰프가 어떤 앰프인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좀 더 레가의 설명을 따라가 보도록 하자. ‘높은 게인을 가진 파워앰프와 패시브 프리앰프 회로를 가진 앰프로서 입력된 신호와 스피커 사이에서 패시브 볼륨 조절과 단일 단계 전력 증폭을 수행하는 앰프’. 이 정도가 레가에서 주장하는 오시리스에 대한 요약 설명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이 앰프는 전통적인 설계를 가진 앰프지만 일반적인 트랜지스터 인티앰프로서 아날로그 AB 클래스 앰프의 최전선을 목표로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내부를 바라보면 아주 멋진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듀얼 모노 설계지만 서로 크로스 디자인을 취하고 있다. 400VA 용량의 토로이달 트랜스를 채널당 하나씩 사용해 충분한 전력 공급에 만전을 기한 모습이다. 비대칭 형태로 배치한 것은 트랜스포머에서 섀시로 전해지는 노이즈를 제거하기 위한 레가의 혁신적인 마운팅 기술의 일환이라고 한다.
커패시터 뱅크를 살펴보면 무려 40,000µF 용량으로 스피커가 아주 낮은 임피던스로 내려갈 때도 마치 커다란 저수지처럼 언제든 전류를 트랜지스터에 흘려줄 수 있도록 대비한 모습이다. 증폭단으로 넘어가면 프리앰프 쪽은 일단 별도의 게인을 부여하지 않은 패시브 방식이다. 1단 증폭으로서 모든 전압 증폭은 파워앰프 섹션에서 담당한다. 증폭에 사용하는 트랜지스터는 산켄 바이폴라 소자. 기본적으로 푸쉬풀 설계지만 플래그십 답게 총 8개의 트랜지스터를 사용하며 흥미로운 것은 캐스코드 차동 입력 증폭단 설계다.
참고로 전체적인 회로 구성에 사용된 부품들도 고급 부품만 선별해서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바이패스 및 디커플링 쪽엔 니치콘 커패시터를 사용했고 전해 커패시터는 폴리에스터 커패시터를 사용하고 있다. 더불어 출력단엔 낮은 인덕턴스 값을 갖는 필름 SM 저항을 사용한 모습이다. 내부에 빠끔히 보이는 문도르프 Mcap 커패시터도 반갑다. 한편 인티앰프로서 반드시 필요한 볼륨의 경우엔 알프스의 블루 벨벳 포텐셔미터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2부로 이어집니다.
제품 사양
Power output
162 Watts per channel into 8Ω (Rated power output)
250 Watts per channel into 4Ω (max-power output)
Input sensitivity for 160 Watts into 8Ω
Line input 1 : 250mV load 10K (transformer balanced)
Line inputs 2-5 and record : 220mV load 22K
Direct input : 220mV Load 50K
Amplifier gain: Direct input : 44dB
Record output (with rated input level) : 215mV into 100K
Frequency Response referenced to : : 10Hz (-1.7dB point) to 75KHz (-3dB point)
160 Watts into 8 (all inputs) : 20Hz to 26KHz (-0.5dB points)
THD + Noise : Less than 0.05% (Bandwidth 22Hz to 30KHz
Power consumption at 160 Watts per channel into 8 : 560W at 115/230V
Remote control : Phillips RC5 system number 16 audio pre amplifier
Dimensions H x W x D cm : 12.2 x 43.4 x 35
Mains Fuse 230v version : 3.15A
Mains Fuse 115v version : 6.3A
Osiris system remote batteries : AAA (1.5) x 2 (Supplied)
Weight : 25.6 kg
제조사 : 레가 리서치
공식 수입원 : 웅진음향 (www.wjsound.com)
공식 소비자 가격 : 13,50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