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음질 디지털 포맷의 도전
- HDCD
1980년대 드디어 엘피의 시대가 저물고 시디의 시대가 왔다. 깔끔한 케이스와 작은 사이즈 등 현대인들이 원하던 포맷이었다. 하지만 실제 스튜디오는 물론 하이엔드 오디오 마니아들 사이에선 태생적으로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태어난 시디 음질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이어졌다. 그 중 포맷 부문에선 HDCD 같은 존재가 유명하다. 실제로 소니 뮤직 등 일부 메이저 음반사에서 채용하는 등 한 때 커다란 인기를 모았다.
시디피를 켜면 특정 색상의 LED 불빛이 켜지면서 HDCD 디코딩을 지원하는 시디피임을 알려주기도 했다. 아마도 오래 시디피를 사용해본 분들이라면 여러 시디피에서 이런 풍경을 구경했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마치 MQA 디코딩을 지원하는 DAC에서 MQA 로 재생하면 로고에 불빛이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이 당시 HDCD가 시디의 비트레이트, 즉 다이내믹레인지를 보강하기 위해 만든 인코딩 기술을 적용한 포맷 중 하나였다.
레드북 시디의 다이내믹레인지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HDCD를 개발한 것 다름 아닌 레퍼런스 레코딩스와 퍼시픽 마이크로소닉스가 함께 연구해 만든 포맷이다. 176.4kHZ까지 녹음이 가능한 AD 컨버터와 DA 컨버터를 개발해 녹음 및 후반 작업에 투입했고 HDCD 프로세서를 개발해냈다. 그 중심에 마이클 플러머와 마이클 리터 그리고 키스 존슨 박사가 있었고 스펙트럴 오디오와 협업을 통해 뛰어난 기기들의 개발에 기여하기도 했다. 여기서 키슨 존슨은 다음 아닌 레퍼런스 레코딩스의 녹음 엔지니어이자 테크니컬 디렉터다. 이후 HDCD가 세월 뒤편으로 사라진 후 퍼시픽 마이크로소닉의 엔지니어들 일부나 독립해 만든 메이커가 우리가 아는 버클리오디오다.
- HRx 시리즈
그럼 키스 존슨은 그대로 대중적 공룡인 당시 시디의 한계를 그대로 인정하고 불복했을까? 그렇지 않다. 그래미 어워드 수상에 빛나는 그는 계속해서 어떻게 하면 녹음 현장의 다이내믹레인지와 해상도를 훼손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대중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Tutti – Orchestral Sampler]가 대표적이며 이 외에도 HDCD 및 SACD로 현장 녹음의 해상도를 최고 수준의 퀄리티로 담아내는 한편 또 다른 시도를 했다.
바로 HRx라는 포맷이다. 이는 사실 DVD-R이라는 매체에 고해상도 음원을 담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레퍼런스 레코딩스에선 시디가 담을 수 없는 해상도를 인정하고 결국 DVD-R이라는 그릇을 활용한 것뿐이다. DVD-R을 지원하는 이유는 다시 높은 용량의 24비트 음원 마스터 레코딩을 RAW 파일로 담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미디어였기 때문이다. DVD-R에 담긴 음원을 NAS 또는 USB 메모리 등에 담아 재생하거나 PC의 하드디스크에 저장해 들으면 그만이다.
HRx 에디션은 레퍼런스 레코딩스에서 진행한 24/176.4 해상도 녹음을 청취자에게 손실 없이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방ㅍ녀 중 하나였다. 이 당시 레퍼런스 레코딩스에선 델(Dell) 컴퓨터에 마이크로 XP를 운용했고 미디어 Monkey를 셋업해 사용했다고 한다. 이 외에 Lynk AES16 카트를 설치하고 이 신호를 바로 버클리 오디오 알파 DAC로 보내 재생했다. 아무튼 현재는 PC의 CD롬을 통해 파일 복사해서 재생하면 그만이다. 물론 오렌더 등 저장 장치가 내장된 음악 전용 서버 또는 NAS 등 저장 공간이 필요하며 별도의 DAC도 필요하다.
청음
이번에 제공받은 HRx 에디션은 총 두 가지다. 하나는 이미 필자의 리뷰에서도 줄기차게 활용했던 2011년 HRx 샘플러다. PC에 넣으면 해당 음원이 검색되며 이를 NAS에 저장했다. 모두 WAV 파일이며 24/176.4 해상도이므로 용량도 상당히 큰 편이다. 음원 재생엔 웨이버사 W코어 및 W스트리머를 사용했고 DAC로는 마이텍 맨해튼 II 및 마이트너 MA1 등을 활용했다. 더불어 앰프는 나드 M33 그리고 스피커는 에스칼란테 디자인 Pinyon 및 토템 Mani2 시그니처 등을 두루 사용했다.
레퍼런스 레코딩스는 같음 앨범도 여러 다양한 포맷으로 출시하면서 음질적 가능성을 실험했다. 시디, HDCD, SACD 등 디지털 포맷부터 베스트셀러의 경우 엘피로도 출시하곤 했다. 가장 유명한 앨범이라면 역시 국내 오디오파일에게도 거의 최고의 레퍼런스라고 할 수 있는 [Tutti]를 거론할 수 있다. 하지만 레퍼런스 레코딩스의 카달로그를 살펴보면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타이틀로 가득하다. 에이지 오우에 지휘,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연주, 달라스 윈드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녹음은 진수라고 할만하다. 게다가 딕 하이먼의 스윙 시리즈도 재즈 녹음의 표본 같은 것들이다.
현재까지 HRx로 출시된 타이틀은 약 30여 타이틀인데 만일 전체적으로 어떤 음악과 녹음 수준을 갖추었는지 알아보고 싶다면 가 제격이다. 등 몇 가지 컴필레이션도 발매했었지만 HRx 에디션으로 듣는 24/174.2 해상도의 마스터 음원과 비교할 순 없다. 이 샘플러는 HRx 에디션이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싶은 는 듯 레이블을 대표하는 레코딩을 총 열 여섯 곡에 걸쳐 증명하고 있다.
총 열 여섯 곡 중 열 한곡은 클래시컬 레코딩 그리고 여섯 곡은 재즈 레코딩에 할애하고 있는 등 최대한 다양성도 존중한 모습이다. 포문을 여는 말콤 아놀드와 런던 심포닉 오케스트라의 ‘A Sussex Overture’부터 대편성 녹음이 어때야 하는지 표준을 들려준다. 기본적으로 아주 작은 음량부터 아주 큰 음량까지 매우 세밀한 곡선을 그리며 증감한다. 따라서 처음엔 너무 작은 음량이더라도 조금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 외에도 에이지 오우에 지휘, 시애틀 심포니 오케스르라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등 다양한 음원이 담겨있다. 베스트를 꼽자면 역시 4번 곡 윌리엄 월튼의 ‘Crown Imperial’ 피날레 녹음이다. 댈러스 윈드 심포니 연주인데 애초에 디지털 마스터를 사용해 다이내믹레인지가 굉장히 넓게 펼쳐진다. 이 외에도 앰프의 과도 응답 특성에 따른 어택, 펀치력, 저역의 타격감을 실험하기에도 최고의 음원이다. 더불어 여덟 번 째 트랙으로 담긴 라흐마니노프의 ‘Symphonic dance’, 딕 하이먼과 스윙 올스타즈의 곡들도 필청 트랙이다.
오디오 시스템에서 저역을 테스트할 때 자주 사용하는 악기나 녹음들이 누구나 하나 즈음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저역이라는 것이 높은 저역 쪽인 경우가 많다. 사실 중간 저역 이하로 내려가면 귀보다는 어떤 공간의 앰비언스로 다가온다. 귀보다는 공간의 분위기, 몸으로 느껴지는 물리적인 촉감 같은 것이다. 이런 저역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악기가 다름 아닌 파이프 오르간이다.
필자가 파이프 오르간의 통해 저역을 테스트할 때 사용하는 녹음 중 예를 들어 장 기유(Jean Guillou)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있다. 이 연주자의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에서 보여주는 저역 스케일은 밤에 듣다가 깜짝 놀라 볼륨을 줄이게 만들 정도다. 레퍼런스 레코딩스에 발매했던 도 추천할 만하다. 얀 크레이빌이 연주하는 파이프 오르간 사운드를 들어보면 손에 잡힐 듯한 저역의 쾌감이 바닥으로 쏟아진다.
여기 또 하나의 파이프 오르간 명녹음이 하나 있다. 독일 태생의 펠릭스 헬로서 바흐의 평균율을 듣고 연주하면서 파이프 오르간의 신동으로 불리기 시작한 뮤지션이다. 일곱 살부터 음악 연주를 시작해 여러 콩쿨을 휩쓸었고 이 앨범을 녹음했을 때 약관 18세에 불과했다. 이 앨범에서 그는 리스트와 루이 비에른, 비도르, 마르셀 뒤프레 등의 곡을 멋지게 재탄생시킨다.
단연 압권은 프란츠 리스트가 작곡한 ‘Prelude and Fugue on B-A-C-H’. 무척 장엄하고 웅장한 분위기의 곡으로 매우 다양한 옥타브 사이를 오가기 때문에 치밀한 테크닉을 요하지만 펠릭스 헬은 미국의 Shoenstein 파이프 오르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푸가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해 표현하고 있다. 저역에서 꿈틀거리면서도 에너지의 완급 조절 및 곡의 뉘앙스, 토널 밸런스, 해상력 등을 얼마나 제대로 표현해내는지가 관건이다.
총평
레퍼런스 레코딩스의 24비트 고해상도 음원을 듣다보면 기존 16비트 음원에서 듣던 음질과 상당히 다르다. 일단 마스터 게인 자체가 상당히 작다. 그래서 일반적인 레코딩에 익숙한 사람은 대부분 첫 곡이 시작되자마자 앰프의 볼륨을 한껏 높이게 된다.
그러나 총주 부분으로 진행되면서 음량이 서서히 치솟고 급기야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음량과 마주친다. 그리고 청취자는 한걸음에 달려가 볼륨 노브를 내리던가 리모컨을 찾아 허둥대기 일쑤다. 이렇게 녹음하는 이유는 다이내믹레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제작했기 때문이다.
만일 시스템의 다이내믹스 표현 능력 그리고 사운드 스테이징 구현 능력을 알고 싶다면 레퍼런스 레코딩스의 HRx는 고음질 녹음의 굳건한 척도가 되어줄 것이다. 필자조차도 이들의 녹음만큼 정확한 표준이 될 만한 녹음은 그리 많지 않아 자주 하드웨어 테스트에 활용하는 편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