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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 깃든 음악의 정령

반오디오 Sylphid 네트워크 플레이어

bann sylphid thumb

음악에의 몰입

과거 오디오는 중산층 가정마다 한 대씩 있어 가족들끼리 음악을 즐기며 나름 교양을 쌓는 용도로 쓰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음반을 구입해서 더 열심히 음악을 듣고 했던 것 같다. 특히 몰입도가 높아 하나의 앨범을 구입하면 듣고 또 듣고 마치 엘피를 가보처럼 보관하곤 했다. 중앙일보, 동아일보 같은 신문사에서 클래시컬 음악이나 월드 뮤직 등을 전집으로 엮어 음악의 대중화를 선도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 당시 전집 엘피를 보면 그 정성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음악 감상이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현재 시각에서 보면 그 다양성 측면에선 한참 모자랄지언정 몰입도 면에선 더 낫지 않았을까?

최근 출시 붐을 이루고 있는 스트리밍 앰프나 스트리밍 네트워크 플레이어 등을 사용해서 음악을 듣다보면 되레 엘피가 듣고 싶어지는 이유다. 단단한 엘피 팁-온 슬리브 자켓을 손가락 사이에 꼭 쥐고 엘피를 꺼낸 후 A면 첫 번째 곡부터 듣는다. 선곡을 할 필요도 없이 끝까지 들어야만 앨범의 뮤지션과 작곡가가 표현하려 했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싱글 위주가 아닌 앨범 위주의 컨셉 앨범이 대중 음악에서도 즐비했다. 더군다나 클래시컬 음악은 더욱 더 싱글 위주로 즐기기엔 아쉬운 면이 많은 음악이다.

하지만 변하는 시대를 완전히 역행할 순 없는 노릇이다. 앨범이 아닌 싱글 위주의 제작 그리고 많은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런 음악 산업의 트렌드를 따라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구현해놓았다. 이런 상황을 거스르면 본인만 피곤해진다. 피지컬 포맷은 그답게 온라인 스트리밍은 또 그에 맞게 사용 방법도 달리 가져가는 게 효율적이다.

나는 아직도 CD와 LP를 듣고 리핑을 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그리고 ROON을 사용해 음원을 정리한다. 최근엔 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을 다섯 가지 버전으로 분류했다. 일반 버전과 MFSL 버전 그리고 SACD 버전 등등. 각각의 음원 차이를 즐겨보는 것도 오디오파일에겐 소확행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온라인에서 파편화된 음악의 파도 속에서 진지한 몰입을 위한 나만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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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피드와의 조우

몸부림 와중에 반오디오 실피드가 내게 왔다. 한창 과거에 리핑해놓았던 음원들을 정리하던 와중에 있었다. 서버로 사용하는 NAS에 저장한 수 테라의 음원을 ROON으로 스캔한 후 겹치는 앨범을 검색해보았다. 상당히 많은 수의 중복 음반이 검색되었는데 다들 그 버전이 다르다. MFSL이나 XX주년 기념 에디션. 일반 레드북 시디 외에 SACD를 리핑 해놓은 것 등. 각 버전에 해당하는 커버 이미지를 찾는 것도 일이라서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리뷰 차 대여 받은 실피드가 눈에 들어왔다.

실피드는 예상보다 작고 앙증맞은 사이즈였다. 불과 네 달 전에 만났던 불새 MKIII와 그 크기가 상당히 비교되었다. 지난 2월 웅장한 자태 속에서 곱고 미려한 사운드를 뽐냈던 불새 MKIII가 불현 듯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섀시 만듦새나 좌측 전면 상단에 깊게 패인 ‘Bann’이라는 브랜드 로고도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 듬직한 아우라를 뽐냈다. 하지만 좀 작고 왜소했다. 양산 제품이라고 보기엔 어딘가 2% 부족해 투박하다는 표현이 떠오르는 생김새였다. 요즘 해외에서 나오는 화려한 디스플레이도 보이지 않았고 버튼도 없었으며 유저 인터페이스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단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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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사용 중인 MSB Analog DAC에 USB 케이블로 연결하자 아이폰 Fing 앱에서 바로 실피드가 검색되었다. 그곳에 표기된 IP 주소를 PC의 인터넷 브라우저에 기입하고 내부 설정을 들여다보았다. 아주 간결한 디자인이었다. 호기심에 ‘KBS 클래식 FM’ 아이콘을 눌렀더니 바로 음악이 흘러나왔다. 마침 책상 시스템에서 듣고 있던 채널이 메인 시스템에서 겹쳐서 나오니 놀라웠고 음질이 좋아 또 한 번 놀랐다. 실피드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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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품은 같은 네트워크 상에 있는 NAS 등의 서버에서 음악을 불러와 재생 가능한 네트워크 렌더러의 일종이다. 더불어 수많은 온라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응한다. 타이달, 코부즈 등은 물론이며 UPnP/DLANA 프로토콜을 지원하므로 이를 지원하는 벅스 같은 서비스도 재생 가능하다. 아쉽게도 제조사 반오디오는 자체 리모트 앱을 개발해놓지 않은 상태이므로 범용 UPnP/DLNA 앱을 사용해야한다. 예를 들어 국내 컨버스 디지털의 Mconnect 같은 앱이 제격이다.

이 외에 ROON에도 대응하므로 ROON 이용자라면 이상적이다. 나의 경우 주로 ROON을 통해 재생해보면서 그 성능을 살펴보았다. 이 외에 KBS, MBC, SBS 등 국내 인터넷 라디오 방송은 덤이다. 에어플레이도 바로 연결되었다. 현재 최신 펌웨어가 적용된 제품으로 에어플레이 재생도 문제없어 종종 듣던 음악들을 재생해보았다. 플레이리스트를 한참 듣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테스트 모드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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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피드의 설계의 비밀

마치 공방에서 수공으로 소수를 위해 제작한 제품처럼 보이는 실피드는 자꾸만 내부를 궁금하게 만든다. 이런 제품들의 경우 투박한 섀시 안에 뭔가 비밀스러운 것을 넣어놓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역시 상판을 제거하자 반오디오 스타일의 꼼꼼한 내부 회로가 드러난다. 일단 모든 액티브 컴포넌트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전원부가 눈에 들어온다. 기껏해야 수 와트 정도 전력 소모만 이루어질 텐데 왜 이런 무리를 한 걸까? 대충 봐도 내부 부품의 7~80%는 전원부에 투자하고 있는 모습이다.

내부 전원부는 앰프 전원부라도 만들 기세의 설계다. 익숙한 모양의 푸른색 탈레마 토로이달 트랜스포머 두 개를 투입했고 노란색 삼영 커패시터 등이 열 개 넘게 설치되어 있다. 분명 리니어 전원부로서 잡음을 최소화하고 정확하고 깨끗한 전원을 공급하기 위해 신경 쓴 모습이 역력하다. 또한 단순해 보이는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100% 알루미늄 기반으로 CNC 가공한 섀시로 사용했으며 외부 전자파 차단 등 다양한 부분을 고려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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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스트리밍을 위한 모듈은 삼성전자의 아틱 710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대로 사용한 것은 아니고 전원 등 다양한 부분에서 개선을 통해 음원 재생에 최적화시킨 모습이다. 클럭도 눈에 띄는데 TCXO, 즉 온도 보상 크리스털 오실레이터를 두 개 사용해 이더넷 및 USB 쪽에 적용하고 있는 모습. 디지털 기기의 핵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클럭 정밀도 유지 및 지터 최소화를 위한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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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그리운 날에, 실피드

테스트는 약 일주일 동안 자택에서 진행했다. 수억 짜리 초 하이엔드가 되었든 수백 만원대 시스템이 되었든 테스트는 내가 평소 사용하는 시스템에서 듣는 게 가장 좋다. 좋다는 의미는 그냥 듣기 좋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제품 특성을 잡아내기 좋다는 의미다. 시스템은 일단 반오디오 실피드를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사용하고 선야타 리서치 Venom USB 케이블을 사용해 MSB Analog DAC과 연결했다. 이후엔 코드 일렉트로닉스 SPM1400E 그리고 베리티 Rienzi 스피커를 통해 재생했다. 이 외에 케프 LS50Meta 및 프리마루나 EVO400도 테스트에 사용했음을 밝힌다.

참고로 반오디오에선 실피드에 대해 세 종류의 업그레이드를 진행한 바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종류가 세 개인데 Normal, Warm(Gold), Cool(Silver) 버전 등이 그것이다. 이번에 필자가 테스트한 제품은 Cool 버전이다. 혹시 소리에 불만이 있다면 다른 버전을 보내준다고 했지만 나의 기준엔 마음에 드는 소리를 내주었기 때문에 Cool 업그레이드 버전만으로 테스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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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NAS 속에 잠겨 있던 잭슨 브라운의 [Running On Empty]의 2005년 리마스터링 버전이 눈에 들어왔다. 수록곡 중 ‘The load-out & Stay’는 엘피가 닳을 정도로 듣던 곡인데 1977년 메릴랜드 실황 녹음으로 잭슨 브라운의 보컬과 데이빗 린들리의 기타 그리고 중간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로즈마리 버틀러의 보컬이 백미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반오디오는 일관적으로 추구하는 사운드가 뚜렷하다. 어떻게 된 게 네트워크 플레이어도 불새 MKIII와 유사한 음질적 표정들을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곱고 차분하면 특히 중역대 디테일이 좋고 다소 진한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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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건진 앨범은 오디오 피델리티가 발매했던 도어스의 24K Gold 시디다. 오리지널 마스터 테잎을 사용해 마이다스의 손 스티브 호프먼이 리마스터링한 버전들. 실피드로 듣는 ‘Touch me’는 활달하고 경쾌한 리프가 맛깔나다. 이 곡 특유의 리듬감 덕분이기도 하지만 특히 중역과 고역의 표현력이 이 곡을 더 즐겁게 만든다. 키보드와 드럼, 기타의 협주가 만들어내는 탄력적인 질감 표현이 관건인데 뭉개지지 않으면서도 찰진 탄력감이 좋다. 더불어 고역을 오가는 스트링 세션이 주눅 들지 않고 섬세하며 연주 주변을 상쾌하게 감싼다. 부드러운 고해상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사운드 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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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2천 년대 초반 즈음 일본에서 발매되어 국내에서도 오디오파일 사이에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XRCD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음원이다. 아트 페퍼의 빅밴드 녹음으로 [Art Pepper+Eleven]이란 앨범이다. 특히 최근 크래프트 레코딩에서 컨템퍼러리 재발매 시리즈의 일환으로서 엘피로 발매되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론 오히려 이 XRCD가 가장 마음에 든다. 과거에 이 버전으로 많이 들으면서 익숙한 탓도 있는데 질주하는 알토 색소폰은 마티 페이치의 진두지휘 아래 하늘을 날아오를 듯하다. 음향적으로는 로이 두넌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16bit/44.1kHz 해상도임에도 ‘Move’와 ‘Groovin’ high’로 이어지는 세션은 가장 최상의 컨디션과 절정의 연주를 보여준다. 실피드는 마치 중, 고역에 숨겨진 음악의 숨결을 불어넣은 듯하다.

zimerman rachmaninov piano concertos nos 1 2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언급하고 싶은 건 최근 다시 몇 번이고 듣고 있는 크리스티앙 짐머만의 연주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인데 특히 1번, 1악장에서 보여주는 짐머만의 피아노는 실피드에서 확실히 힘 있고 무게감이 실린다. 음결 자체는 편안하면서도 그 디테일이 살아 숨 쉬며 동적인 면에선 묵직한 어택과 장쾌한 에너지를 실어 음악을 더욱 호소력 짙게 만든다. 어떤 착색이나 과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염되지 않은 투명한 무대 위에 음의 미립자들이 싱그럽게 뛰어 노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사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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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알루미늄을 사용했다곤 하지만 최신 네트워크 플레이어에 비하면 우직하기 그지없는 디자인. 게다가 어떤 디스플레이도 보이지 않아 초심자라면 어떤 곳에 사용하는지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전혀 감이 안오는 프로용 기기처럼 보이는 실피드다. ‘바람의 정령’이라는 실피드의 이름은 어쩌면 만듦새와 전혀 겹쳐지지 않는다. 게다가 자체 리모트 앱이나 그 흔한 컬러 디스플레이도 보이지 않는, 뭔가 한 세대 전의 물건 같은 모습이다.

반전은 이토록 심플한 디자인 속에서 나오는 둘도 없이 순수한 음악적 표현력이다. 종종 음악적이라는 표현은 해상도나 미세 약음 디테일의 부족 등 정보량 저하와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놓인다. 그러나 실피드에선 예외다. 부드러운 고해상도 속에서 음악은 더욱 음악답게 표현된다. MSB Analog와 매칭에서도 뛰어난 사운드를 들려주었지만 제짝이라고 할 수 있는 불새 MKIII DAC와 매칭이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실피드라는 차가운 디지털 플레이어 안엔 바람이 아닌 음악의 정령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실피드는 적어도 내가 경험해온 네트워크 플레이어 중 소리 하나만큼은 탑 클래스에 속하는 제품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지원하는 Network Protocol
1) 인터넷 라디오(KBS, MBC, SBS)
2) MPD 기반 UPnP/DLNA
3) Roon Bridge RAAT
4) SqueezeBox Player
5) AirPlay(추가 소프트웨어 설치로 가능)
6) HQPlayer(추가 소프트웨어 설치로 가능)

Network : 100/1000Mb Ethernet
USB : USB 2.0
Case Material : 100% Aluminum Alloy
WDH : 330x250x65(80mm with foot)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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