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그 이후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문화, 예술 분야는 침체 일로를 걸어갔다. 새로운 공연 기획은 물론이고 이미 예정되어 있던 뮤지션의 방한도 줄줄이 취소되기 시작했다. 클래식, 팝, 록 할 것 없이 음악계는 물론이고 뮤지컬, 연극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가득 차던 영화관도 긴 침묵의 시간으로 들어갔다. 마치 어두운 터널을 들어간 듯한 상황은 수년 넘게 이어졌다.
세상은 ‘비대면’이 일상화되었다. 재택근무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고 학생들은 원격 수업에 익숙해져가야만 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던 행복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교훈도 잠시. 견디기 어려운 ‘뉴 노멀’에의 적응은 절대 녹록치 않았다. 그러나 그 틈바구니로 위로가 되어주는 것은 음악이었다. 공연장에 가지 못하니 갈 곳 잃은 시선은 TV와 유튜브로 옮겨갔다.
엔데믹 시대, 여전히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의 습관이란 무섭고 질기며 되돌아가기에 너무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는지도 모른다. 꼭 만나야할 자리가 아니면 전화로 대신하고 여럿이 모이는 자리는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팬데믹의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이지만 후유증이라고 부정적인 인식을 갖기엔 장점도 없지 않다. 쓸 데 없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저녁 귀가 시간도 좀 더 앞당겨졌다.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었던 강남, 홍대 등지도 예외는 아니다.
듣고 보고, 즐기고 위로 받으며
필자 같은 경우 긴 팬데믹의 터널을 지나면서 좀 더 많은 개인적 여유 시간을 획득했다는 데 의미를 두는 편이다. 예전보다 그 양이 줄었던 독서량이 조금이나마 늘었다. 음악, 미술, 철학, 우주, 심리 등에 관련된 서적들에 눈을 집중했다. 미루고 미루던 영화를 모두 섭렵했고 음악도 더 많이 듣게 되었다. ‘중이 남의 머리 못 깎는다’고 하듯 나의 오디오에 약간 취미를 잃었던 사이 팬데믹을 기회로 더 많은 업그레이드를 진행했다.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즐거웠다.
각각 그 양상은 다르겠지만 다수의 모임에서 소수의 모임으로 그리고 가능한 외부 모임보단 개인 또는 가족의 시간이 증가했다는 건 시인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와중엔 음악과 영상 그리고 이를 모두 합쳐놓은 유튜브는 사상 초유의 발전을 이룬 듯하다. 갈 곳 없는 눈은 영상을 향했고 음악 애호가들은 음악 들으면 영상을 함께 즐겼다. 나 또한 평소 같으면 친구나 선후배와 자주 하던 저녁 자리를 자의든 타의든 대폭 줄이고 매일 새벽까지 프로젝터를 켜고 스크린에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띄워놓았으니까.
듣고 보고, 즐기고 위로 받으며 팬데믹을 지나 엔데믹으로 흘러가고 있는 사이 해외에서 흥미로운 리뷰 한 편을 읽게 되었다. 다름 아닌 RS250이라는 스트리밍 기기에 대한 스테레오파일지 리뷰였다. 리뷰어 존 앳킨슨은 ‘Highly recommended’를 외쳤고 2022년 3월 봄 그가 편집장으로 근무하는 스테레오파일의 추천기기 중 디지털 소스기기 부문에서 클래스 A의 영예를 안겼다. 마치 오징어게임이 Emmy 어워드를 수상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RS520
아마도 이런 수상의 한 편엔 그저 음질적인 부분 외에 기능적인 우수성과 창의적인 인터페이스가 고려되었음이 분명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세계인의 발이 꽁꽁 묶인 시점에서 하이파이로즈의 네트워크 플레이어는 귀는 물론 눈까지 만족시켜주는 흔치 않은 오디오였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튜브 뮤직을 커스터마이징, 자사의 앱에 빌트 인시킨 경우는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름도 아름다운 ‘로즈튜브’라니. 이런 창의적인 엔지니어링에 가산점을 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이제 2022년 9월.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다름아닌 스트리밍 앰프 혹은 네트워크 앰프라고 부를만한 올인원 앰프의 출현이다. 사실 이런 컨셉의 제품은 이미 RS201A라는 모델명으로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엔 RS250은 물론이며 무엇보다 RS150이라는 네트워크 플레이까지 출시하며 진화한 하이파이로즈다. 특히 새로운 앰프 RA180의 출시는 의미심장하다. 이전까지 거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등 디지털 소스기기에 역량을 치중하던 하이파이로즈가 자사의 앰프 설계 능력을 펼쳐보였기 때문이다.
- 디자인/인터페이스
결국 RS520이라는 올인원 스트리밍 앰프의 출현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그러나 과연 어떤 형태로 귀결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박스에서 제품을 꺼내니 믿음직스럽고 단단한 알루미늄에 둘러싸인 블랙 섀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기존에 그 어떤 하이파이로즈 제품보다도 훨씬 더 세련된 디자인으로 상단엔 전원 버튼 등 간단한 버튼 네 개가 보인다. 전면엔 하이파이로즈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12.6인치 LCD 디스플레이로 넓게 펼쳐진다.
전원을 켜면 전면 디스플레이를 통해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이 나열되며 터치스크린 방식이기 때문에 손으로 직접 좌/우로 스크롤하면서 원하는 기능에 접근, 조정 가능하다. 전면에 보이는 어플리케이션만으로도 RS520의 기능들을 짐작할 수 있는데 에어플레이는 기본이며 블루투스도 당연히 지원한다. BluOS를 지원하는 플레이어 외엔 벅스뮤직이 빌트 인된 유일한 네트워크 플레이어며 이 외에 스포티파이, 타이달, 코부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더불어 최근엔 애플뮤직까지 인앱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 인터넷 라디오, 팟캐스트도 지원한다.
조목조목 어플리케이션을 보고 있자만 해외 스트리밍 플레이어에서 그들의 채널과 인터페이스를 중심으로 설계된 것들과 달리 국내 상황에 최적화된 모습이어서 편리할 뿐만 아니라 매우 친근한 느낌이 든다. 후면을 보면 다양한 입/출력단이 가득하다. 아날로그 라인 입력 및 프리 아웃 출력이 각 한 조 마련되어 있어 외부 소스기기 및 파워앰프와 연결도 가능하며 스피커 출력단은 RA180에서 대폭 축소시켜 간단한 스피커 한 조만 지원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편 디지털 입/출력은 다른 하이파이로즈 기기는 물론 해외 스트리밍 플레이어나 스트리밍 앰프에 비해서도 매우 다양한 편이어서 확장성 측면에서 강점이 많다. 일단 광 입/출력 및 동축 입/출력단을 각 두 조씩 마련해놓았으며 스트리밍 플레이어에선 생략하거나 옵션 처리하는 USB B타입 입력도 마련해놓은 모습이다. 더불어 외장 플래시 메모리 등 스토리지와 연동이 가능하도록 USB 3.0 입력도 마련해놓았다. 이더넷 입력은 기본이며 HDMI 입/출력을 통해 영상기기와 연계도 가능한 점은 하이파이로즈의 강점이다. HDMI eARC 입력단을 마련해 TV의 음성 출력을 받아 RS520과 함께 셋업한 하이파이 스피커로 TV 음향을 즐길 수 있다는 의미다. 더불어 HDMI 출력을 마련해 RS520에서 지원하는 프리미엄 유튜브뮤직을 외부의 커다란 모니터 및 TV 화면으로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 설계 특징
하이파이로즈는 RS520을 개발하면서 기존에 이미 개발해 출시했던 기기들의 기술적 노하우를 트리클 다운하는 방식을 택한 듯하다. 그 대상은 다름아닌 RS150과 RA180이다. 각각 하이파이로즈의 최상위 네트워크 스트리밍 플레이어와 인티앰프인데 이 둘을 축약해서 효율적으로 하나의 제품 안에 녹여낸 인상이다. 일단 디지털 부문엔 ESS 테크놀로지의 최상위 칩셋 ES9038PRO를 탑재해 PCM의 경우 768kHz, DSD는 DSD512까지 지원하고 있다. 무압축 무손실부터 무손실 압축, 손실 포맷에 이르기까지 해상도와 관계없이 모두 재생 가능하다고 보면 맞다. 더불어 펨토 클럭을 탑재해 지터 오류를 최소화한 모습을 돋보인다.
참고로 MQA 디코딩 기능도 탑재해 타이달 등에서 마스터 음원 재생시 더 뛰어난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더불어 UPnP/DLNA를 지원하므로 이 네트워크 프로토콜을 통해 NAS 등 외부 스토리지에 담긴 음원에 접근, 간단히 재생도 가능하다. 다양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경우에도 하이파이로즈 자체 앱에서 접근도 가능하지만 해당 스트리밍 서비스의 리모트 앱에서 RS520을 잡아 재생도 가능하다.
델타 시그마 변조 방식의 ES9038PRO를 전류 출력 형태이기 때문에 반드시 전압으로 변환해주는 회로가 필요하다. 여기서 하이파이로즈는 일반적으로 간단히 구현할 수 있는 방식을 피하고 디스크리트 OP 앰프 형태로 설계했다. 다량의 OP 앰프를 활용해 디스크리트 형태로 회로를 구현함으로써 설계 넓은 대역폭과 생생한 사운드를 해치지 않도록 의도한 모습. 이는 음질적인 부분에서 꽤 큰 차이를 불러올 수 있는 부분이다.
최종 전압 증폭단은 이전 RA180 플래그십 앰프의 그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물론 바이앰핑에 대응하기 위해 총 네 개의 앰프를 내장했던 RA180과 달리 이번 RS520에선 두 개 모듈만 탑재한 모습이다. 증폭 방식은 하이파이로즈의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한 클래스 AD 증폭을 구사하고 있다. 사실 클래스 D 증폭이 맞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실리콘 대신 질화갈륨 소재의 FET 소자를 활용해 스위칭 사이의 이른바 ‘데드 타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것이 하이파이로즈의 설명이다. 이를 통해 스위칭 노이즈를 최소화해 스위칭 증폭임에도 자연스러운 선형적 증폭 특성을 얻었다는 것. 참고로 출력은 채널당 250와트로 RS520은 사이즈 대비 대출력 앰프로 완성된 모습이다.
청음
음상은 정확한 위치에 형성되며 그 외곽선도 뚜렷한 편이다. 다만 얇거나 너무 작게 맺히지 않아서 둥그런 악기가 손에 잡힐 듯 실체감이 명확하다. 매우 단단하고 옹골찬 느낌이 충만하다. 전체적으로 플래그십 RA180의 성질을 영민하게 트리클 다운받은 느낌이 다분하다. 예를 들어 앤 비선의 ‘Dan unten im tale’(16/44.1, flac)를 재생하면 그윽하고 선이 곧은 첼로 소리가 공간에 넓게 적신다. 보컬은 힘 있고 당차게 표현되어 평소보다 더 호소력이 짙게 다가온다. 연필로 깊게 눌러 쓰고 있는 듯한 음악이 끈질기게 핵심을 파고든다.
볼륨은 40에서 60 정도 레벨 사이를 오가면 들었다. 볼륨을 높일수록 음원 본래의 다이내믹스가 살아났고 활발한 동적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다프트 펑크의 ‘Doin’t right’(16/44.1, flac)을 들어보면 초반에서 가공할만한 저역 하강이 감지되는 곡인데 LS50 Meta와 조합에선 부밍 없이 평탄하게 조탁된 사운드를 들여주었다. 적당한 양감과 저역 확장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절대 무리하는 법 없이 타이트하고 충분히 두께도 있어 클래스 D 증폭이라는 말이 믿겨지지 않는다.
전체적인 주파수 대역 밸런스는 비교적 차분한 편이다. 따라서 고역 쪽으로 산만하게 흩날리거나 하지 않고 힘 있게 무게감을 유지해준다. 게다가 추진력이 높아 왜소하거나 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는 법 없이 적극적으로 호소한다. 도널드 페이건의 ‘Morph the cat’(16/44.1, flac) 같은 곡에서 내뿜는 중, 저역 리듬 파트의 펀치력은 가공할 만하다. 기존에 RA180에 비교해서도 그리 뒤처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육중한 무게감이 실리면서도 풋웍이 질척거리거나 딜레이되는 모습은 발견되지 않고 스타트과 스탑, 맺고 끊는 능력이 훌륭하다.
음색 부분은 담백하면서도 충분한 배음이 스며들어 있어 밋밋하지 않고 섬세하다. 예를 들어 마크 오 코너스 핫 스윙 트리오의 ‘Honeysuckle rose’(16/44.1, flac) 같은 곡을 들어보면 윈튼 마살리스의 트럼펫이 시원하게 쭉 뻗어나가면서 풍부한 음압으로 공간을 가득 메우는 밀도감이 일품이다. 더불어 바이올린 같은 경우 깨끗하고 유려하다. 건조하거나 딱딱하게 재생하는 일부 클래스 D 증폭 앰프와는 기본적으로 결이 다른 소리다. 만일 이 소리에 익숙해지면 최근 중저가 디지털 앰프는 선이 가늘고 차갑게 느껴져 돌아가기 힘들 지도 모른다.
총평
이미 예견되었던 하이파이로즈의 RS520은 메이커 입장에선 아마도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스트리밍 플레이어 부문에서 이젠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으나 방대한 기능으로 인해 그 관리, 업데이트 측면에서 부하가 많을 듯하다. 여기에 앰프까지 합체해 올인원 스트리밍 앰프를 출시하는 것은 세계적인 트렌드, 플랫폼에 올라타는 것임과 동시에 또 다른 벽을 넘어야하는 과제를 하나 더 추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막상 뚜껄을 열어보니 과거 RS201A에서 이런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엔 작심하고 개발해낸 모습이다. 디지털 및 앰프 각각의 완성도는 물론이며 각 부문의 간섭을 피하기 위한 PCB 분리 설계 및 전기적 차폐 그리고 진동, 방열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부분까지 고려해 분투한 흔적이 역력하다.
아마도 RS520은 올해와 내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가장 경쟁력 높은 스트리밍 앰프로 회자될 것이 분명하다. 네임오디오, NAD, 캠브리지를 위시로 다양한 브랜드들이 이 분야에 필승 카드를 내놓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RS520은 어떤 위치에 서게 될까? 하이파이로즈의 RS520은 무섭게 그 영토를 확장해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조사 : 씨아이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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