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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도 리콜이 되나요

문화중독자의 플레이리스트 –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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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해서 노래를 듣는 걸까”
“아니면 노래를 듣고 불행해지는 걸까”

벽과 바닥에 잔뜩 레코드를 쌓아놓은 롭(존 쿠삭 역)이 독백을 날린다. 당신이 음악광이라면 불행해서 노래를 들은 기억과, 노래를 듣고 불행해진 기억 모두를 경험했을 것이다. 흥미진진한 음악담론으로 출발하는 영화의 원제는 <하이 피텔리티>, 한국제목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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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줄거리는 특별한 게 없다. 자신의 연애사를 회상하는 장면이 중반부까지 이어진다. 훈남 이미지를 가진 롭이지만 그는 실패한 연애의 원인을 늘 상대방에게 전가한다. 그렇다고 자신이 완전무결한 50대 미혼남이라고 우기지도 않는다. ’나는 좀 찌질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멋진 연인이었다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네‘라는 심리가 계속 이어진다. 롭의 연애사가 특별하거나 감동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는 눈과 귀를 달래주는 지원병이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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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은 레코드가게를 운영한다. 그는 모든 음악장르를 수용하겠다는 생각이 없다. 함께 일하는 직원 2명도 마찬가지다. 손님이 원하는 음반을 말하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응대방법이 달라진다. 직원 베리(잭 블랙 역)는 아예 음반을 사겠다는 손님을 연속으로 문전박대한다. 손님이 자신보다 음악을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롭은 베리의 엉뚱한 태도에 은근히 공감을 보낸다. 이런 분위기는 한국 레코드점에서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가 락매니아의 교본처럼 여겨지는 사례는 아래와 같다.
다음은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과 관련한 장면들이다.

  1. 스티비 원더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를 무시하는 베리
  2. 손님에게 밥 딜런의 ((Blonde On Blonde))를 강매하는 베리
  3. 중간중간 카메오로 등장하는 부르스 스프링스틴의 모습
  4. 자신의 여친이 그린 데이를 좋아한다고 감격해 하는 음반점 직원 덕
  5.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반 등을 훔치다가 롭한테 걸리는 밴드지방생들
  6. 클럽에서 피터 프램튼의 [Baby, I Love Your Way]를 열창하는 신인가수
  7. 장례식에는 아네사 플랭클린의 노래가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롭
  8. 딮 퍼플로 시작해서 하울링 울프까지 넘어 왔다고 뿌듯해 하는 롭
  9. 롭이 소장한 레코드 더미 위로 보이는 스틸리 댄의 ((Pretzel Log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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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스토리텔링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음악장면 때문인지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는 어떻게 음악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관객이 행복감에 빠져 극장에 나오게 만드는 작품”이라며 별 4개를 수여했다. 게다가 배우 캐더린 제타 존스, 팀 로빈스, 존 쿠삭의 누이 조안 쿠삭이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의 원작은 닉 혼비의 소설 <하이 피델리티>다. 작가 역시 음악광인데 이와 관련한 내용은 서평집 <음악을 읽다>에 자세히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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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사운드트랙에는 밥 딜런, 킹크스, 러브, 엘비스 코스텔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가 담겨 있다. 레코드점 특유의 복잡미묘한 공기와, 레코드 수집에 관한 대화와, 음악후일담에 관심이 있다면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를 놓치면 안될 것이다. 제목에 궁금증을 가진 이를 위해 첨언하면, 음악에 리콜 따위는 없다. 리듬과 멜로디가 쏟아지는 음악을 즐기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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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 봉호

대중문화 강의와 글쓰기를 사랑합니다. 때문에 문화콘텐츠 석박사 과정을 수학했습니다. 저서로는 '음악을 읽다'를 포함 10권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음악과 관련한 글을 집중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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