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스피커
만일 20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는 하이파이 오디오 박물관이 있다면 재미있을 듯하다. 국내엔 유독 20세기 초반은 웨스턴 일렉트릭 같은 스피커를 전시해놓은 곳은 꽤 있지만 그 당시 스피커에만 고착되어 있고 이후의 오디오까지 구경할 곳은 없다. 오디오, 그 중에서도 스피커를 역사적 맥락 위에서 고찰해볼 수 있다면 오디오에 대한 훨씬 더 깊은 통찰이 가능할텐데. 인간의 음향에 대한 도전과 모험의 역사를 반추하는 시간은 무릇 음향에 관심이 없다 해도 과학과 인물의 영역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일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웨스턴 일렉트릭, 일렉트릭 보이스, 알텍과 JBL을 지나 윌슨과 헤일즈, 틸과 아발론 등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당시 헤일즈를 통해 스피커를, 마크 레빈슨을 통해 앰프를 제작했던 삼성 엠페러도 생각난다. 영국으로 넘어가면 탄노이를 비롯해 20세기 중반 고성능 컴팩트 스피커 역사의 서막을 연 에드가 M. 발처 박사의 AR(어쿠스틱 리서치)가 부표처럼 머릿 속을 둥둥 떠다닌다. 1970년대는 또 어떤가? BBC에 젖줄을 대면서 일군의 데뷔 무대를 장식한 하베스, 로저스, 스펜더를 빼놓을 수 없다. B&W, LINN으로 이어지는 브리티시 하이엔드 스피커의 역사는 또 다른 그룹을 형성하며 역사의 줄기를 틀었다.
세상의 모든 스피커는 각자의 역사가 있으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엔지니어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다. 지금 보면 약간 치기어린 시도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스피커란 것이 예나 지금이나 기본 틀은 변함이 없는 것을 보면 물리적인 기초 과학을 거스르긴 아직도 요원해보인다. 인클로저와 드라이브 유닛 그리고 크로스오버와 인클로저. 이 모든 것들을 각각 어떻게 설계하고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그 소리는 천차만별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스피커들은 각각 어떤 매칭을 통해 운용하는 것이 좋을까? 과연 정답이란 있는 걸까?
레퍼런스 모니터의 표준 BB1으로부터
스피커로서 스튜디오라는 음악 생산 공간에서 모니터링 스피커로 사용하는 스피커가 있다. 믹싱이 아니라 마스터링 과정에서 특히 세밀한 검청 과정은 소비자와 가장 가깝다. 이 때문에 마스터링 엔지니어 중에선 의외로 오디오 마니아도 꽤 있고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공집합이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아마도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사용하는 스피커 중 하이파이 오디오에서도 겹치는 스피커는 B&W, ATC, PMC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가장 표준적인 밸런스와 뛰어난 내구성 그리고 대중적인 입맛을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포용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 중 PMC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뭐가 더 특별할까? 그것은 아마도 시계를 돌려 1980년대 BBC 방송국에서 일하던 당시 피터 토마스에게 카메라 앵글을 맞추어보면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릴 듯하다. 그는 동료 애드리언 로더와 함께 업무용 모니터 스피커를 개발했는데 그것이 바로 BB1이었다. 그리고 이후 그들은 아얘 독립해 PMC라는 브랜드를 설립한다. 이전의 BBC 모니터들은 로저스, 하베스, 스펜더 등을 생각하겠지만 PMC는 완전히 다른 설계로 모니터 스피커에 도전했다. 그 핵심은 다름 아닌 트랜스미션라인 인클로저에 있다.
잠시 로딩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밀폐형은 능률과 출력이 낮고 볼륨에 따라 왜곡이 높아진다. 이를 개선해보고자 만든 저음 반사형 타입은 저역 재생이 쉽지만 위상 특성이 저하되며 포트 노이즈가 추가될 위험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만든 것이 미로형이지만 워낙 이 또한 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며 추가적인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문제점을 PMC만의 방식으로 해결한 절충안이 바로 트랜스미션라인이며 정확히는 ATL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트랜스미션라인은 그러나 길이, 폭, 흡음재에 다른 음의 속도 지연 등 다양한 난제를 넘어야하는데 PMC는 이를 진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유닛, 크로스오버 등의 설계는 모두 ATL이라는 인클로저 설계에 최적화시켜 제작한 것들이다.
일단 스피커를 보면 후방으로 깊고 전면도 넓은 패널에 드라이브 유닛을 큼직하게 장착하고 있다. 일면 과거의 고전적인 박스형 스피커 같지만 ATL 및 그에 상응하는 유닛, 크로스오버 등 내부 설계는 오랫동안 갈고닦은 현대 하이파이 스피커의 혁신을 담아내고 있다. 우선 트위터는 노르웨이 시어스(SEAS)와 협력해 만든 1인치 소노렉스(Sonolex) 유닛이다. 소프드 톰 트위터로서 하단의 미드레인지와 프레임이 겹쳐 있다. 이는 중, 고역 사이의 위상 정렬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미드레인지로 시선을 옮기면 이 또한 특주 유닛으로 PMC75SE라는 유닛이다. 3인치 사이즈로 진동판이 타원이 아닌 거의 구형에 가깝게 볼롤 튀어나와 있고 외곽 프레임 아쪽으로 쏙 들어가게 배치해 트위터와 소리의 출발선상을 거의 유사하게 만들었다. 마치 ATC의 ‘악마의 눈동자’ 같은 모습인데 실제 보면 표면 처리가 다르면 내부도 완전히 다른 유닛이다.
한편 베이스 우퍼는 무려12인치 유닛으로 대형이다. 먼저 전면 스파이더 가이드가 눈에 띄는데 이 또한 철저히 음향적인 완성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다. 이는 우퍼 바스켓과 연결되어 있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동판이 움직일 때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보이스 코일의 발열을 식혀주기도 한다. 상당히 독특한 디자인과 설계로 SE 시리즈의 전매 특허 설계 중 하나다.
앰프 매칭에 대해
사실 이번 리뷰의 주제 및 핵심은 앰프 매칭에 관한 것이다. 여타 BBC 출신 스타급 브랜드 혹은 B&W, LINN 및 대단히 많은 영국 스피커들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PMC는 초기 BBC 출신 엔지니어가 만든 스피커 중 하나라는 바운더리에서 생각하기엔 더 진화했고 더 넓은 사용자층을 포용하고 있다. B&W나 포칼, 윌슨오디오처럼 이들은 글로벌 하이파이 스피커 메이커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로컬 브랜드로 치부하기엔 이미 지역색을 많이 벗어난 상황이다. 그렇다면 ATL, 즉 진화한 트랜스미션라인 인클로저와 오랫동안 발전시켜온 유닛 및 크로스오버로 구성된 MB2SE의 앰프 매칭은 어떨까? 아니, 어떠해야할까?
앰프 선택은 총 세 개 모델로 결론 지어졌다. 하나는 리니어 전원부에 바이폴라 출력 트랜지스터를 사용하는 클래스 AB 앰프, 또 하나는 스위칭 전원부에 MOSFET을 사용한 클래스 AB 증폭 앰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진공관 앰프다. 출력관은 EL34. 순서대로 마크 레빈슨 No.526 프리앰프와 No.534 스테레오 파워앰프, 코드 일렉트로닉스 Ultima Pre3 프리앰프와 Ultima 5 파워앰프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리마루나 EVO 400 프리 및 EVO 400 파워앰프가 그 주인공들이다. 클래스 D 증폭이 하나 빠졌지만 각각 설계에서부터 음질적인 특징이 크게 갈리는 세 종류 앰프를 통해 MB2SE가 과연 어떤 성능, 표정 변화를 나타내는지 알아보았다.
테스트에 사용한 음원은 팝, R&B 그리고 재즈, 클래시컬 음악 등 다양했는데 확실히 앰프에 따른 특성 변화가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도미니크 피스 아이메의 ‘Birds’에서 저역 하강 능력 및 후방에서 들리는 작은 이펙트의 디테일 그리고 무대를 장악해내는 능력과 무대의 전, 후 깊이 및 좌/우 너비 등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지가 관건이었다. 이 외에 앨리스 사라 오트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이 함께 한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에선 미세 약음이 얼마나 세밀한 차이로 표현되는지 그리고 후방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거리가 각각 다르게 펼쳐졌다. 물론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각 악기들의 위치, 즉 정위감 표현 성능도 대비되었다. 참고로 소스 기기는 오렌더 N100H 및 코드 일렉트로닉스 DAVE와 Mscaler 등을 사용했다.
우선 마크 레빈슨은 전통적인 리니어 전원에 바이폴라 출력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앰프로서 가장 모범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고역부터 저역에 이르기까지 마치 피라미드 같은 형태의 대역 밸런스를 보여주었는데 이런 특성이 MB2SE를 마치 거울처럼 정직하게 투영해주었다. 각 악기의 위치는 뚜렷했지만 그 거리가 아주 크게 대비되지는 않았고 포커싱도 무척 무난한 편이었다. 전통적인 설계의 앰프답게 소리가 차갑지 않고 잔향도 적당했다. 디테일, 다이내믹스 등 모든 면에서 평균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어 마치 모든 성능에서 고르게 좋은 소리였다.
한편 코드 일렉트로닉스 Ultima 프리/파워앰프로 듣는 MB2SE는 상당히 변모된 모습을 선보인다. 요컨대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성향이 MB2SE라는 창을 통해 그대로 투과되어 들리는데 일단 스피드의 향상이다. 초스피드, 광대역의 현대 하이엔드 앰프인 코드답게 전대역에 걸쳐 대역폭이 확장되어 들리니 경쾌하고 선명한 느낌이 강하다. 특히 저역 쪽은 마크 레빈슨과 대비되는데 마크 레빈슨이 충분한 양감을 가진다면 코드 일렉트로닉스는 저역이 약간 홀쭉하면서 더 깊고 타이트하게 드라이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덕분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속도감과 쾌감이 한층 음악 감상의 재미를 북돋운다.
마지막으로 프리마루나의 경운 EL34를 채널당 네 발씩 채용해 푸쉬풀 구동하는 앰프답게 70와트라는 출력이 무색할 만큼 출중한 저역 제어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광폭적인 힘이나 대역폭 그리고 입체적인 사운드스테이징보다는 음색 부분에서 강점이 보였다. 트랜지스터에 버금가는 힘과 투명도를 보여주는 프리마루나지만 확실히 진공관은 진공관이어서 풍부한 배음을 기반으로 각 악기의 음색을 풍부하게 노출한다. 전체적으로 소리의 두께가 상대적으로 약간 더 두텁고 잔향 지속 시간도 더 늘어 음악적인 표현력이 풍부해졌다는 인상이다. 더불어 소리의 온도감은 코드, 마크 레빈슨, 프리마루나 순서로 약간씩 높아지는 양상도 흥미로웠다.
총평
PMC MB2SE는 SE 시리즈 최상위 모델인 BB5SE의 바로 아래 등급 스피커다. BB5SE는 사실 일반적인 가정환경에선 기함급이라 꽤 넓은 청음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MB2SE나 IB2SE는 국내 보편적인 가정환경에서도 적응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모델들이다. 하지만 운용에서 항상 관건이 되는 것은 앰프 매칭에 있다. 필자의 경우 PMC는 브라이스턴, 심오디오, 코드 일렉트로닉스 같은 앰프에서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실제 구입해 이러한 매칭으로 여러 번 운용해본 경험이 있다. 이번 테스트에서도 나의 선택은 코드 일렉트로닉스였다. 물론 마크 레빈슨이나 프리마루나도 무척 뛰어난 앰프지만 MB2SE와 매칭에선 코드 일렉트로닉스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스피커에 대한 매칭 노하우는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모두 실제 자신의 공간에서 치열하게 테스트해봐야만 좋은 선택이 가능하다. 이번에 짧은 테스트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통감했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Crossover Frequency:380Hz – 3.8kHz
Dimensions:
(H) 870mm x (W) 380mm x (D) 535mm
Stand – (H)377 (+ 50mm spikes) x (W)374 x (D)502)
Drive Units:
LF – PMC 12” 310mm Radial™ driver
HF – 27mm SONOLEX™ soft dome Ferrofluid cooled
MF – PMC75 SE – 75mm soft dome
Effective ATL™ Length:3m 10ft
Frequency Response:20Hz-25kHz
Impedance:8 Ohm nominal
Input Connectors:3 pairs 4mm sockets (Tri-Wire or Tri-Amp)
Sensitivity:90dB 1w 1m
Recommended Amp Power:10 – 500W
Recommended Drive Unit
Torque Settings:HF: 0.6Nm MF: 1Nm LF: 3NmWeight:58kg (stand 17kg)
제조사 : Professional Monitor Company (UK)
공식 수입원 : 웅진음향 (www.wjsound.com)
공식 소비자 가격 : 31,50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