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대중음악은 싱글 위주로 간단히 감상하고 소비되는 현상이 지배적이지만 난 여전히 앨범 형태를 좋아한다. 음반을 구입해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앨범이 생긴다. 한 곡이 아니라 그 앨범 자체를 만들 때 뮤지션들의 생각, 때론 컨셉 앨범일 경우 그 내용, 서사까지 즐기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아날로그 시절 음반들은 나름의 거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고 때론 나중에 발굴된 데모 버전, 미공개 트랙에서 그 곡을 만들기까지의 여정을 더 깊게 알게 되는 것도 즐겁다. 마치 돌아가진 아버님이나 할아버지의 오래된 노트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음향 관련 일을 하면서 많은 리뷰를 쓰는 나 같은 경우 종종 음향적으로 좋은 버전을 계속해서 갈구하게 된다. 동일한 앨범도 이미 여러 장 가지고 있으면서 새로운 재발매가 나오면 또 구입해서 들어보곤 한다. 아르네 돔네러스의 ‘Antiphone Blues’도 마찬가지다. 음원, CD, LP 모두 여러 버전으로 가지고 있지만 최근에 또 새로운 버전을 입수했다. 다름 아닌 이태리 레이블 오디오노츠 레코딩이 발매한 버전이다.
아마도 엘피 재발매 중에선 가장 최근 버전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33RPM 그대로 제작했고 이태태리 엔지니어를 기용해 커팅했다. 레커 커팅은 독일 팔라스에서 진행했고 최종 프레싱은 역시 독일의 엘피 제작 명가 옵티멀에서 진행했다. 노이만 VMS70 커팅 레이스에 노이만 SX-74 커팅 헤드 그리고 노이만 SAL74B 앰프를 사용했는데 오리지널 아날로그 마스터를 사용해 직접 커팅했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요즘 오리지널 아날로그 마스터를 사용했다면서 사실은 중간에 디지털 변환해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듯.
아무튼 매우 정직하고 고지식하게 엘피를 제작해 오디오파일 입장에선 매우 반가운 일이다. 게이트폴트 커버로 안쪽에 커팅 및 프레싱에 관련된 내용 그리고 테스트 프레싱을 검수했던 시스템 목록까지 적시하고 있다. 뭐 이런 것까지 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 또한 발매 예정인 엘피의 테스트 프레싱을 받아 테스트하면서 오점을 발견할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테스트 프레싱 검토에 쓰인 시스템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국내 음반사들의 경우 제대로 된 테스트 시스템을 못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음질적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바로 양산, 출시했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레이블은 턴테이블로 현재 하이엔드 턴테이블 브랜드 테크다스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로 세이키 RX3000에 이케다 IT407 톤암, 피델리티 리서치 카트리지 등 정상급 아날로그 시스템으로 테스트했다고 한다. 값비싼 가격표만큼이나 음질은 매우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