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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DP의 표준,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품다.

마란츠 SACD 30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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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탐험

고집스럽게 사운드에 고민하며 음악적 열정과 철학을 차가운 하드웨어 기기에 투사하려는 노력이 있어왔다. 특히 고유한 음악적 주장을 갖는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는 유독 이런 노력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마크 레빈슨은 스스로 재즈 뮤지션으로 살면서 마크 레빈슨의 MLAS나 현재도 역사적 명기로 꼽히는 첼로 프리앰프를 튜닝했다. 그는 엔지니어적 측면도 있지만 사실 튜닝 전문가다. 존 컬, 리차드 바우엔, 톰 콜란젤로 같은 기라성 같은 엔지니어를 항상 곁에 둔 이유다.

마치 피아노 조율사나 사운드 컨설팅 전문가들이 악기를 튜닝 하듯 그들은 자신들만의 레퍼런스를 통해 측정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음악적 감성을 붙어 넣는다. 그리고 그것은 가끔 어떤 기기와도 구별되는 그들만의 개성이 되고 커다란 부가가치의 기반이 된다. 이렇게 음악, 음향적 기준이 뚜렷한 몇몇 메이커가 종종 레퍼런스 음원을 보아 음반으로 제작하곤 하는데 이런 음반은 나의 표적이 되곤 한다. 최근엔 나그라, 아큐페이즈 등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가장 뛰어난 선곡과 음질을 들려주었던 기억이 있다.

‘소리의 탐험’(Explorations in Sound)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컴필레이션은 무척 특이했다. 두 개의 디스크에 담은 SACD 포맷이었는데 한 장은 스탠더드라고 할만한 재즈, 클래식 음악들을 담았고 두 번째 음반엔 일렉트로닉 등 좀 더 현대적이고 약간 실험적인 음악들이 즐비했다. 단순히 자사 브랜드 홍보를 위해 급조한 음반은 절대 아니었다. 알고 보면 첫 번째 디스크는 마란츠의 사운드 마스터 요시노리 오가타, 두 번째 디스크는 기타리스트 데이브 롱스트레치 등이 맡았다. 이 앨범은 카메론 섀퍼가 운영하는 VMP가 마란츠와 함께 만든 필청 오디오파일 컴필레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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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D 그리고 마란츠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마란츠의 음향 튜닝을 맡은 사람 그리고 기타리스트와 VMP 라는 음반 레이블의 대표가 선곡했다. 그만큼 음악적, 음향적 고민이 투입된 선곡인데 첫 곡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이애나 크롤의 ‘No moon at all’의 음향이 이렇게 좋았는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음원으로 듣는 음질과 확연히 달랐다. 아무리 PCM 음원 24/192로 들어도 이 컴필레이션에 수록된 버전의 음질을 따라오기 힘들었다.

그 이유로 포맷의 차이 외엔 상상할 수 없다. 바로 DSD 포맷을 기반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1999년 CD에 이어 고음질 포맷으로 개발된 SACD는 CD의 샘플링레이트인 44.1kHz의 64배인 약 2.8Mhz 샘플링레이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포맷을 개발한 회사는 일본의 대기업 소니와 네덜란드의 디지털 전문 메이커 필립스였다. 원래 저작권료가 만료될 시점이 도래할 즈음 새로운 로열티 수익 모델로 만든 것이기도 했지만 SACD는 당시 획기적인 음질로 음악 애호가와 오디오 마니아를 두루 만족시켰다.

PCM VS DSD

소니는 최초의 플래그십 SACDP SCD-1을 출시했고 이후 전 세계 하이파이 오디오 브랜드가 SACDP를 생산했다. 하지만 이런 SACD를 가장 오랫동안 생산해온 브랜드는 역시 일본 메이커들이다. 되레 SACD를 처음 도입한 소니는 고사했고 이후 마란츠, 에소테릭, 아큐페이즈 등이 이 대열에서 장수하고 있다. dCS, 린데만 등 유럽의 하이엔드 메이커들도 에소테릭의 메커니즘을 가져다 쓸 정도였으니 SACDP의 최강국은 역시 일본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되짚어보면 SACD의 대중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해오며 장수한 브랜드는 역시 마란츠다. 개인적으로도 마란츠 SACDP를 여러 번 사용하면서 가격 대비 가장 큰 만족을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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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SACDP SACD 30n

이번에 테스트하게 된 모델은 현역기 SACD 30n이라는 모델이다. 듬직한 만듦새에 전면 패널은 신세대 마란츠의 시그니처다. 전면 패널이 덧대어져 있고 그 패널 좌우로 특유의 문양이 아름답다. 서양의 그것과 달리 동양적인 그 무엇을 느끼게 한다. 한편 SACD에 대해 마란츠는 진심이다. 일단 메커니즘을 타사로부터 빌려 쓰는 게 일반적인 데 반해 마란츠는 오랜 시간동안 진보시켜온 자체 제작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SACDM-3L이라는 메커니즘이다. 자세히 보면 진동에 대해 상당히 섬세하게 대처해놓은 모습이다.

마란츠 SACD30n 후면

후면을 보면 이 기기가 어떤 기능을 수행 가능한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우선 이 기기는 이더넷 입력단을 마련해 네트워크 스트리밍에 대응한다. 데논과 함께 HEOS라는 독자적인 플랫폼을 사용하며 자체 리모트 앱을 통해 진입하면 스포티파이, 타이달 등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에 진입 가능하다. DLNA(UPnP)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 블루투스, 에어플레이 등의 무선 프로토콜도 지원한다. 지원 가능 해상도는 PCM 24/192. 재생 못할 포맷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러 디지털 입/출력단도 눈에 띈다. 그렇다. 이 모델은 SACDP면서 네트워크 플레이어이고 DAC로서 사용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광, 동축 입력단을 지원하며 PC 및 별도의 네트워크 플레이어와 연결시 USB 입력단도 활용 가능하다. PCM은 물론 DSD128까지 지원한다. 한편 디지털 출력도 가능한데 광, 동축 등 두 가지 출력을 지원한다. 아날로그 출력단 또한 넉넉하게 두 조 지원하다. 그런데 가까이 보면 그 활용도가 다르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최대 출력을 내주는 고정 출력이고 또 하나는 가변 출력으로 음량을 다양하게 조정 가능하다.

마란츠 SACD30n 내부 설계

SACD 30n의 심장엔 마란츠의 독보적인 DA 변환 기술 MMM, 즉 ‘Marantz Musical Mastering 회로가 내장되어 있다. MMM 스트림 컨버터는 모든 입력에 해 DSD 11.2Mhz 신호로 변환한 이후에 아날로그 변환을 거쳐 출력하는 형태다. 마치 EMM Labs 같은 메이커의 그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좀 더 아날로그에 가까운 파형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보다 정교한 변환을 위해 두 개의 고정밀 시스템 클럭을 투입했으며 출력단에 HDAM이라는 마란츠 고유의 증폭단을 설계해놓고 있다.

마란츠 SACD30n 1

청음

테스트는 최근 유튜브 리뷰에서 종종 레퍼런스로 활용하는 시스템에서 진행했다. 앰프는 패스랩스 XP-12, 파워앰프는 일렉트로콤파니에 AW-250R, 스피커는 PMC fact. 12sig를 사용해 테스트했다.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었는데 메뉴에 들어가 탐색해보면 디지털 필터가 두 종류 마련되어 있다. 필터 1은 프리 링잉 및 포스트 링잉 등 에코가 모두 짧은 임펄스 응답을 갖는 필터로서 높은 정보량을 가진 고해상도 음원에서 유리하며 포커싱, 입체적 사운드스테이징 형성에 좋다. 한편 필터 2는 포스트 링잉이 프리 링잉에 비해 좀 더 길게 세팅된 필터로 일반적으로 듣기 편안한 아날로직 사운드를 표출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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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음원 재생을 통해 네트워크 스트리밍 기능의 성능을 살펴보았는데 어떤 음악을 들어도 마란츠의 과거 음질적 특징이 잔존해있다. 부드러운 편에 속하며 군더더기 없고 편안하게 음악으로 이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에지 있고 보다 입체적인 공간 정보를 표출해내 싱싱한 사운드로 변모했다. 예를 들어 수잔 베가의 ‘Luka’를 재생해보면 무대의 크기가 풀 사이즈로 표현되면서 전/후 깊이, 즉 심도가 깊어 생생한 사운드 스테이지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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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지 있고 포커싱 능력도 과거의 마란츠보다 더 나은 소리다. 확실히 현대적인 디지털 소스 기기로의 이행이 관찰되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아오이 테시마의 ‘The rose’를 들어보면 그녀의 보컬 포커싱이 핀 포인트로 맺힌다. 음상 주변에 잔상이 많지 않고 외곽선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피아노 타건은 목표 지점이 뚜렷하고 힘이 실려 있어 과거 마란츠 사운드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수도 있다. 대신 온도감이 과거에 비하면 약간 하강한 느낌인데 그렇다고 아주 차갑게 변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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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입체감과 싱싱한 음결의 본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작은 미세 신호의 섬세한 재생 능력에서 올 것이다. 예를 들어 알 디 메올라, 존 맥러플린, 파코 데 루치아가 함께 한 ‘Mediterranean Sundance/Río Ancho’를 들어보면 현장 녹음의 강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눈 앞에 펼쳐지는 무대의 이미지, 작은 손가락의 움직임까지 지체없이, 보정 없이 날 것으로 표현해낸다. 그렇지만 필터 1으로 재생시 좀 더 깔끔하게 재생되어 오랜 시간 들어도 그리 피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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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이야기한 마란츠와 VMP의 콜라보로 탄생한 컴필레이션 수록곡 중 두 번째 CD를 꺼내 들었다. 오디오 테스트에 매우 좋은 코넬리우스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다. ‘Drop’을 재생하자 흘러나오는 물소리에 오후의 나른함이 휙 달아난다. 매우 빠르고 날렵한 물의 이동이 눈 앞에 떠오른다. 바로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이 곡의 뮤직 비디오처럼 음향의 시각화가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특히 장면 전환, 저역의 급격한 타격감 등 그 어디에도 느릿하고 약간 흐릿했던 과거 마란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마란츠 SACD30n 3

총평

필자의 자택 시스템엔 SA11S3 SACDP가 있다. 아주 자주 듣진 않지만 종종 SACD를 재생해보면 음원보다 더 정교하면서도 부드러운 음결에 놀라곤 한다. 오래 전 CD의 시대가 저물어갈 때 처분한 수 천장의 CD 라이브러리가 가끔 그립기도 하다. 그것이 섣부른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24비트 고해상도 음원이 스트리밍으로 서비스되고 있고 그것 나름대로 좋은 음질을 내주긴 하지만 내가 좋아했던 음반 중 많은 것들이 여전히 서비스되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CD와 SACD를 포기하지 않고 듣고 있는 건 다행이다.

마란츠는 디지털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변화를 온 몸으로 체험한 메이커다. 그래서 SACD 플레이어와 네트워크 스트리밍 그리고 USB DAC라는 음악 재생 방식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놓은 것이다. 음원과 피지컬 등 모두를 아우르며 다양한 포맷을 재생 가능한 SACD 30n은 음악 마니아는 물론 오디오 마니아 양 진영을 모두 포섭할 수 있는 실력기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형식: SACD/CD player featuring network audio streaming and DAC Mode
입력: 1× coaxial S/PDIF, 1× optical S/PDIF, 1× USB Type A, 1× USB Type B, built in dual-band Wi-Fi and Bluetooth
출력: 1× RCA stereo pair (fixed), 1× RCA stereo pair (variable), ¼” headphone jack
지원 해상도/포맷: PCM 32-bit/384kHz, DSD 11.2 MHz, Gapless playback of FLAC, WAV, AIFF, and ALAC files up to 24-bit/192kHz (DSD files up to 5.6 MHz)
주파수 응답: 2Hz–50kHz

전고조파 왜곡율: 0.0008%
다이내믹레인지: 109dB
크기 (W×H×D): 44.3 × 13 × 42.4cm
무게: 13.5kg

공식 수입원 : 사운드유나이티드 (https://www.marantz.co.kr)
소비자 가격 : 3,500,000원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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