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아득히 먼 옛날이야기만 같다. 블로그 포스팅을 열심히 했고 그저 평소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들이 하루 일과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책상과 컴퓨터가 있어야했고 간단한 오디오 시스템도 있어야했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은 책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글을 쓸 때면 메인 오디오 시스템보단 책상 위 시스템으로 음악을 작게 틀어놓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책상 시스템은 그저 작고 예쁜 것, 가성비 좋은 스피커만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청취 시간이 길어지면 절대 간단하지 않다. 주변에서 가끔 책상 위에 하이엔드에 버금가는 시스템을 꾸려놓는 경우도 봤지만 나 같은 경우엔 맞지 않는다. 되레 장시간 듣다보면 청감상 피로감이 누적되기 십상이다. 더 심각한 건 책상 앞에 앉아 하고 있는 일에 집중이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렇다고 해상력도 매우 높으면서 피로감도 적은 하이엔드 스피커를 책상 위 시스템으로 두기엔 메인 시스템에 투자할 예산도 부족한 현실 앞에서 타협하게 된다.
그런 내게 가장 좋은 소리를, 말하자면 아주 적당한 스피커가 찾아왔으니 바로 Q 어쿠스틱스라는 브랜드의 스피커였다. 사실 별로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왓하이파이 등 주로 영국 매거진에서 호평이 쏟아지던 때였지만 그건 그저 그들의 이야기겠거니 하고 말았다. 하지만 실제 들어보니 수긍이 갔다. 전체적으로 대역 밸런스가 모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귀를 자극하는 법이 없었다. 해상도가 너무 낮아서 그런 게 아니라 청감을 자극하는 불편함이 없어서다. 바로 3010이라는 스피커였다. 그리고 이 스피커는 10년도 넘은 지금도 책상 위에 있다.
최근 다시 Q 어쿠스틱스의 스피커를 떠올리게 된 건 우연이었다. 미션 778X 앰프에 매칭할만한 스피커를 찾다가 Q 어쿠스틱스가 자연스럽게 떠오는 것이다. 미션 778X에 잘 맞을만한 스피커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백만 원 미만 대에서 쓸 만한 제품이 이리도 없었는지 새삼 안타까웠다. 그런 와중에 Q 어쿠스틱스의 건재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Q 어쿠스틱스는 이미 많은 진화를 겪어 이젠 과거 3010 당시와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이니셜 ‘i’만 하나 붙었을 뿐인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그 전에 이 스피커를 설계한 사람에 주목해본다면 수긍할만하다. 2006년에 설립된 비교적 신생 브랜드 Q 어쿠스틱스는 나름 가격 대비 성능을 선전했지만 이후 더 성장할 수 있는 추진력을 불어넣은 힘은 외부에서 나왔다. 바로 칼 하인즈 핑크라는 사람이다. 스피커 설계 컨설팅으로 오랜 시간 전문가로 활동한 프리랜서 컨설턴트로 시작하는 그는 핑크 오디오를 운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와피데일, 미션, 캐슬 등 다양한 유명 스피커의 설계를 도왔다.
게다가 칼 하인즈 핑크는 핑크팀이라는 스피커 브랜드를 직접 런칭해 WM-4, KIM, BORG 같은 역작을 만들어오고 있다. 마이다스의 손을 가진 고수가 만든 수천만 원대 하이엔드 스피커들이다. 개인적으로 작년에 리뷰했던 스피커 중 최고 점수를 주었던 스피커가 KIM이었는데 그 영민하고 독특한 설계 철학과 기술, 노하우 그리고 무엇보다 사운드 면에서는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바로 그 칼 하인즈 핑크가 Q 어쿠스틱스 스피커에도 손을 댔다. 특히 컨셉 500 라인업은 핑크팀의 WM-4에 적용했던 기술을 녹여낸 스피커다. 그리고 이후 바로 ‘i’ 버전 3000 시리즈는 이전 세대로부터 드라마틱한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 중 이번에 테스트해본 모델은 3000 시리즈 중 최상급인 3030i라는 모델이다. 최상급이라곤 하지만 가격은 소박하다. 하지만 첫 인상은 일단 커다란 크기 덕분에 마치 눈사람처럼 귀여운 인상. 높이가 320mm, 너비는 200mm지만 깊이가 313mm로 꽤 덩치가 있다. 게다가 0.9인치 소프트 돔 트위터에 무려 6.5인치 미드/베이스 우퍼를 탑재하고 있어 풍만한 소리가 터져나올 것만 같다. 책상 위에서 쓰던 막내 3010을 생각했다가 큰 형을 만난 기분이다.
우선 이 스피커는 2웨이 저음 반사형 타입으로 설계되어 있고 주파수 응답은 46Hz에서 30kHz까지 걸쳐 있다. 중간 저역에서 초고역까지 재생하므로 북셀프 치곤 상당히 넓은 대역을 소화하는 스피커다. 공칭 임피던스는 6옴에 감도는 88dB. 임피던스의 경우 아무리 낮게 내려가도 4옴이 최소라고 하니 앰프에 많은 부담을 주는 스피커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실제 들어봐도 그리 크지 않은 출력의 미션 778X(45와트) 같은 앰프로도 충분히 제어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스피커를 듣자마자 내가 오랜 시간동안 들어왔던 3010의 소릿결이 떠올라 잠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런 소리가 맞지”. 아주 편안한 대역 밸런스를 가졌고 표면에 뭔가 약간 보슬보슬한 이슬이 내려앉은 듯한 소리다. 맑은 청량한 느낌인데 자극적이지 않다. 전체적으로 소리의 두께가 얇지 않고 너무 두껍지도 않다. 상당히 예쁘게 찰랑거리는 고역은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데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듯한 사운드다.
이런 소리를 또 한 번 생각나게 하는 스피커가 있다. 바로 동료 평론가 김편 님의 애장기 드보어 피델리티의 Orangutan O/96이다. 물론 전혀 다른 유닛과 인클로저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무척 유사한 토널 밸런스를 보여준다. 가격 차이가 엄청나게 많이 나지만 성향 자체는 유사한 스피커다. 더불어 중역대도 너무 얇게 흩날리지 않고 곱고 담백하다. 확실히 영국 스피커가 맞다.
아무래도 칼 하인즈 핑크의 손길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부분은 인클로저 설계에 있고 이는 중, 저역 쪽 공진을 제어한 부분에서 드러난다. P2P 브레이싱 설계 및 HPE 튜브 같은 독보적 기술들이 Q 어쿠스틱스 3030i라는 엔트리급에 파격적으로 적용된 것. 덕분에 6.5인치 우퍼를 채용하고 있지만 이 꽤 큰 유닛에서도 펑퍼짐하게 퍼지지 않는다. 살짝 들어 올려 탄력을 유지하며 시종일관 야무진 리듬 섹션을 선보인다. 전면으로 나와 공격적으로 과시하는 저역이 아니라서 작은 방에서도 충분히 스트레스 없이 즐길 수 있는 사운드 특성을 보인다.
이런 소리가 SOtM SMS-200Ultra 그리고 미션 778X 등 오직 두 개의 기기만으로 만들어진 소리라니 새삼 놀랍다. 아주 정밀한 포커싱과 긴장감 높은 타격감 및 밀도 등을 무기로 하는 짜릿한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맑고 명랑하면서도 절대 피로하지 않은 고역에 질감, 텍스쳐가 손으로 만져질 듯한 중역 그리고 과하게 몰아붙이지 않아도 음악이 얼마나 맛있을 수 있는지 알려준 저역. 장시간 사용자의 공간을 포근하게 음악으로 물들여줄 수 있는 스피커다. 나는 종종 새로운 스피커에서 의외의 성능을 발견했을 때 가장 즐겁다. 게다가 이 작지만 작지 않은 스피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대에 위치해 있다. 가격을 생각한다면 횡재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