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업
투라즈 모가담이 이끄는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는 그의 설계 철학을 다양한 라인업에 녹여놓았다. 1980년대 록산 시절부터 턴테이블 등 다양한 제품군을 기획, 설계해왔던 엔지니어가 대표로 있기에 베르테르 어쿠스틱스의 제품들은 누가 봐도 마니악해보인다. 우선 턴테이블 디자인만 보아도 일반적인 턴테이블의 디자인과 사뭇 다른 모습에 처음엔 적응이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세밀하게 따져보면 그 안에 투라즈 모가담의 음향기기 설계에 대한 타협 없는 기술적 접근과 치밀함이 한 땀 한 땀 새겨져 있다.
턴테이블
우선 턴테이블을 살펴보면 RG-1, SG-1, MG-1, DG-1S 등 네 개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뒤에 붙은 G는 ‘Groove’의 약자로서 앞에 레퍼런스, 슈퍼, 매직, 다이내믹이 이 단어를 수식하면서 모델명으로 만들어졌다. 바로 베르테르 어쿠스틱스가 주창하는, 스튜디오에서 막 커팅 작업을 마친 바로 그 오리지널 마스터의 그루브를 그대로 옮긴 듯한 소리를 재생해내겠다는 의지가 이름에 새겨져 있다.
베르테르 어쿠스틱은 일단 다른 브랜드에서 종종 사용하는 설계 몇 가지를 금기시하고 있다. 일단 스프링으로 서브 섀시를 받치는 설계다. 외부에서 발생하는 진동을 감쇠시키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내부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일 뿐더러 되레 음악 재생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스타일러스와 엘피 소릿골 사이에 생기는 악영향은 과거에 비판적으로 연구되지 못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스프링 서스펜션을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클램프를 사용한다던가 또는 진공 흡착 방식으로 엘피를 평평하게 만들려는 시도는 의미가 없다는 판단 하에 설계에 고려하지 않는다. 이는 턴테이블이 아니라 톤암, 카트리지가 감내해야 할 문제다.
베르테르 어쿠스틱스 턴테이블은 메인 플린스로 아크릴을 선택했다. 아크릴은 진동 측면에서 강점이 많고 가공 편의성도 좋은 편이다. 물론 아크릴보다 더 좋은 소재도 있지만 베르테르는 아크릴을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구조화시켜 진동을 최소화하고 있다. 상위 레퍼런스로 올라가면 겹겹이 쌓아 올린 아크릴 플린스를 독자적인 구조로 받쳐 진동을 격리시키는 구조다.
서로 다른 모델이지만 이런 설계의 핵심 사항들은 레퍼런스뿐만 아니라 하위 모델들에서도 그 설계 컨셉을 공유한다. 예를 들어 하이엔드 턴테이블의 경우 모터의 진동을 격리시키기 위해 본체와 분리 설계하는 경우가 많지만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는 모터를 본체 안에 설계하되 플린스 자체를 두 개로 나누어 모터가 포함된 플린스를 교묘하게 분리시켜 놓고 있다. 모터 또한 특이한데 플린스와 격리시켜 놓아 처음 구동시 흔들리다가 안정화되면 플린스와 거리를 두고 조용히 작동한다.
진동에 대한 베르테르 어쿠스틱스의 이러한 독보적인 접근 방식은 베어링 부문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레퍼런스 모델의 경우 항공 우주 등급의 인청동 하우징과 초정밀 텅스텐 카바이드 스핀들, 실리콘 질화물 볼로 구성해 최고 수준의 강도는 물론이고 각 부품들 사이에 접촉면을 줄여 애초에 진동 유발 요소를 최소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매우 엄격하게 가공한 베어링, 스핀들은 공차가 적어 어떤 틈도 찾기 힘들 정도다.
“턴테이블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는 톤암이다”라는 것이 베르테르의 강력한 주장이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 SME는 톤암의 대외 판매를 중단했고 그라함 등 레전드급 톤암 수급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는 최고급 톤암을 오랫동안 개발, 진화시켜오고 있다. 레퍼런스 톤암 Gen III, SG-PTA 톤암 등이 그것이다. 톤암은 ‘Tri Point Articulated’ 구조로 설계하고 케블라를 사용해 통해 수직, 수평 모든 각도에서 소음 및 마찰을 극단적으로 제어하고 있다. 아마도 이 정도 정밀도와 안전, 내구성을 확보한 톤암은 지구상에 몇 개 존재하지 않을 듯하다.
아마도 턴테이블에서 노이즈를 만들어내는 시작점은 모터 그리고 그 이전에 이를 구동하는 모터일 것이다. 베르테르는 RG-1, 임페리움, 템포 등 세 개의 모터를 개발해 준비해놓고 있다. 비교적 최근 발표한 Tempo라는 전원부를 보자. 기존에도 별도의 전원부를 제작했지만 Tempo는 한층 향상된 성능을 제공할 듯하다. 내부엔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탑재해 디지털 사인파와 코사인파를 생성하고 이를 온보드 DAC를 활용해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한다. 그 다음 두 개의 브리지 앰프를 통해 파형을 증폭, 모터에 전원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베르테르에선 Tempo를 통해 기존보다 더 낮은 노이즈와 왜곡을 실현했다고 한다. 전원부의 중요성은 대단히 중요한데 특히 아날로그 시스템에서 그 역할을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소자들이 접촉할 때 소음을 내게 되며 마찰 저항이 생긴다. 아날로그 기기에서 이는 모두 노이즈가 되어 소리로 변환될 수밖에 없다. 특히 턴테이블 관련 기기의 경우 소릿골에 담긴 정보를 카트리지가 인식해 그 진동을 전기 에너지로 변환시킨 후 다시 소리 에너지로 변환, 표출시키는 기기다. 따라서 조그만 진동 노이즈도 재생 음을 변형, 왜곡시킨다. 그 출발점은 레코드의 소릿골과 이를 읽는 카트리지다. 베르테르는 바로 카트리지까지 직접 출시해 소리의 출발점부터 철저히 제어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영국 턴테이블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턴테이블 메이커를 꼽는다면 베르테르 어쿠스틱을 빼놓을 수 없다. 국내에선 케이블이 약간의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확실히 베르테르의 본령은 턴테이블이다.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아들이자 최근 몇 년간 비틀즈의 재발매 리믹스를 맡았던 자일스 마틴도 베르테르를 사용해 모니터링을 할 정도. 메커니즘을 하나하나 살펴볼수록 놀라움의 연속이다.
카트리지
카트리지는 미스틱 MC 카트리지 그리고 사브레 MM 카트리지와 마그네토 MM 카트리지 등 단 세 개의 모델만 선보이고 있다. 각각 스타일러스 팁 설계를 마이크로 일립티컬, 일립티컬 디자인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마그네토 외엔 다이아몬드 소재를 사용해 강도를 최대화한 모습이다. 진동에 관한 베르테르의 철저한 관리는 카트리지 상단의 3점접촉 설계에서도 드러나면 내부 설계를 보면 혀를 내두르게 만들 정도로 잘 만든 카트리지의 표본 같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는 포노앰프 및 턴테이블 매트 등 엘피를 즐기는 데 필요한 다양한 제품군을 출시해놓고 있다. 광대역에 오리지널 스튜디오 마스터의 본래 소리를 순수하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데 필요한 그 어떤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정말이지 완벽주의에 가까운 설계와 튜닝을 정점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포노앰프의 경우에도 꼭 필요한 소자를 선별해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아주 작은 신호를 수십 배로 증폭해야 하는 포노앰프이기 때문에 노이즈 문제에도 면밀하게 대처하고 있다. 전원부와 증폭부를 최대한 분리 설계해 간섭을 줄이고 있다. 심지어 포노앰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접지 노이즈에 대한 부분도 편집증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기기들이 저마다 다른 접지 방식을 갖기 때문에 유도되는 접지 험에 관한 것으로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는 포노-1MK2에 무려 세 개의 접지방식을 마련해 상황에 따라 대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케이블
마지막으로 베르테르 어쿠스틱스 테크놀로지의 또 다른 봉우리는 케이블이다. 사실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를 턴테이블 등 아날로그 전문 메이커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는 케이블부터 출시하면서 그들의 존재를 알렸다. 그 이유는 투라즈 모가담의 철학을 이해한다면 너무나 명확하다. 일반적인 오디오 시스템에서 모든 제품의 성능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가장 약한 부분이 바로 케이블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턴테이블 및 톤암, 카트리지 등 아날로그 관련 기기를 만들어내는 메이커에서 케이블을 만드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기껏해야 인터, 스피커 케이블 정도고 케이블을 메인 라인업으로 운영하는 곳의 내가 아는 한 거의 없다.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는 케이블에 있어 전문 브랜드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과 라인업을 확보하고 있다. 베르테르 어쿠스틱스를 설립하게 된 근본적인 철학이 케이블에서 발현했기 때문이다.
우선 도체는 주로 동, 은도금 동을 사용한다. 그리고 단심이 아닌 연심을 사용하는데 그 굵기가 사람 머리카락 굵기만큼 가늘다. 이러한 가는 도체를 다발로 사용해 여러 케이블을 만들고 이를 조합해 사용한다. 예를 들어 신호에 따라 마이크로라인, 헤어라인, 모델라인, 어스라인 등 다중 연선으로 처리해 활용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무척 복잡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펄스 HB, 펄스-R, 펄스-XS, 펄스-XS 레퍼런스, 베럼, 레드라인, D-FI 등 다양한 라인업을 완성해냈다.
정밀 공학의 진수
지면 관계상 모두 언급하진 못했지만 베르테르 어쿠스틱스의 라인업 중엔 다양한 액세서리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턴테이블 매트, 침압계, 기기 아래 받히는 서포트, 심지어 티타늄 카트리지 나사까지 있다. 하나하나 아주 작은 부분들까지 모두 자신들의 설계 컨셉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품들을 개발해 놓고 있는 모습이다. 그 어떤 작은 부분도 베르테르 어쿠스틱스 창조한 세계 안에서 모두 해결하길 권고하고 있는 듯하다.
베르테르 어쿠스틱스의 라인업을 살펴보는 일은 마치 의사가 환부를 살펴보는 일과 비슷할 것 같다. 인간의 육체 안엔 수많은 미세 혈관을 비롯 미시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가장 약한 고리가 결국 정상적인 신체 활동을 저해하고 병들게 한다. 아마도 투라지 모가담은 하이파이 오디오의 미시 세계를 모두 재검토, 재설계하고 싶었던 걸까? 턴테이블, 톤암, 모터, 전원 장치 및 카트리지와 케이블 등 아날로그 장비들 중에서도 정밀한 설계와 계측이 필요한 세계를 하나하나 정복해 그들만의 우주를 완성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베르테르 어쿠스틱스의 창조물들이 이룬 그 우주는 경이롭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조사 : 베르테르 어쿠스틱스
공식 수입원 : 반오디오 (http://bannaudi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