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으로 기억한다. 월간팝송 애독자코너를 읽고 있었다. 해당 코너에 그룹 예스(Yes)의 키보디스트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을 생생하게 묘사한 독자의 그림이 시선을 잡더라. 잡지사로 무작정 편지를 보냈다. “그림의 주인공님, 나는 이봉호라는 사람인데 그룹 예스(Yes)에서 스티비 하우(Steve Howe) 다음으로 릭 웨이크먼을 좋아하는데 어쩌구 저쩌구”.
신기하게도 답장이 도착했다. 그림의 주인공 동성이는 음악잡지를 매개로 알게 된 인연이다. 그는 홍대 동양화과에 재학 중이었다. 당시 신입사원 1년차이던 나와 7살 터울로 기억한다. 우리는 각자 추종하는 밴드와 연주자를 가득 적은 편지를 주고받다가 홍대에서 처음으로 회동한다. 동성이가 나를 데리고 간 엘피바가 바로 <블루스 하우스(Blues House)>였다.
홍대 주차장 거리 지하에 위치한 <블루스 하우스>는 그야말로 신천지였다. 바닥에는 큼지막한 회색빛 자갈이 깔리고 시멘트벽에 조명을 내려주는 엘피바. 지금은 흔하디 흔한 인테리어지만 당시는 요즘말로 힙하디 힙한 음악카페였다. 게다가 틀어주는 음악은 어찌나 입맛에 척척 맞는지 자리를 뜨기가 아쉬웠다. 작가 하재봉은 이곳을 소재로 <블루스 하우스>라는 소설을 출간한다.
2기 <블루스 하우스>는 건너편 지하에 자리잡는다. 이번에는 웨스턴 바(Western Bar) 형식의 엘피바였는데 역시 서울에서 보기 드문 인테리어였다. 벽에는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이 보컬로 참여한 밴드 빅 브라더 앤 홀딩 컴퍼니(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의 대형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블루스 하우스>에서 동성이와 버드와이져를 마시며 로드 맥퀸(Rod McKuen)의 음악세계를 공감했다. 이곳은 음악가에게도 사랑받는 엘피바였다. (고)김광석, 이은미, 김경호는 <블루스 하우스>에서 마주친 이들이다. 필자는 이곳에서 친구들과 자신의 생일파티를 하던 김경호 바로 옆자리에서 축하박수를 보내줬다.
귀요미 물고기가 보이는 요마 카우코넨의 레코드를 소개한다. 이 앨범은 1974년에 발표한 요마 카우코넨의 첫번째 솔로음반이다.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과 핫 튜나(Hot Tuna)에서 활동했던 요마 카우코넨은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데뷔작에서 원없이 쏟아낸다. 가장 좋아하는 솔로앨범 역시 1집이다.
<블루스 하우스> 사장은 9시를 넘길 즈음에야 엘피바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와는 명륜동의 레코드점에서 이미 마주친 적이 있던 인물이었다. 당시도 블루스 록 계열을 음반을 찾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사장이 출근하면 늘 요마 카우코텐의 곡 [Song For The North Star]를 신청하곤 했다.
강남에서 원정방문을 올 정도로 2기 <블루스 하우스>는 음악광의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세월은 흐르고 사장이 거제도에 3기 <블루스 하우스>를 차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주인이 바뀐 <블루스 하우스>는 예전 같은 열기가 없었다. 이미 홍대 주변에 엘피바가 30개 가까이 오픈한 상태였다.
<블루스 하우스>는 3년 전에 망원동에 새롭게 둥지를 텄다. <학살롱>이라는 엘피바가 있던 자리에 새로이 간판을 올렸다. 그는 를 신청하던 20대 후반의 청년을 기억할까. 조만간 <학살롱>에 들르면 요마 카우코넨의 신청곡쪽지를 건너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