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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가 안내하는 음향의 우주

윌슨 베네시 Discovery 3Zero

Discovery 3zero wilson benesch

1968 디스커버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우리 시대 영화의 거장 스탠리 큐비릭의 대표작으로 지금도 여전히 참신한 해석이 이뤄지고 있는 문제작이다. 영화는 스탠릭 큐브릭이 감독을 맡아 제작했으며 개봉 후엔 책으로도 소개되었다. 각본을 맡았던 아서 클라크가 동명 소설로 발간한 것. 영화와 소설의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핵심 주제는 공유한다. 인간과 인공 지능 그리고 우주와 외계 문명의 관계들이다. 블랙 모노리스라는 신비의 유물 발굴로부터 시작해 우주 탐사 그리고 아폴로 비행사들 및 인공 지능 컴퓨터 HAL9000이 조종하는 디스커버리.

2001

비교적 최근, 2021년 출시된 스탠리 큐브릭의 생애와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스탠리 큐브릭: 미국인 영화감독’에서도 이 영화의 ‘HAL’은 ‘풀 메탈 재킷’의 파일 이병, ‘아이즈 와이드 셧’의 빌 하퍼드 등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의 공통점을 다루기도 한다. 한편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디스커버리호는 영화가 개봉된 1968년, 이후 실제 미국 NASA가 세 번째로 만든 우주 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1984년 초도 비행을 했다는 것이 비추어보면 시대를 앞서간 공상 과학 영화로서 그 상상의 나래가 얼마나 멀리 뻗어있었는지 소름이 돋을 정도다.

discovery1

2001 디스커버리

20세기 중반의 미래 공상 과학 영화 속 디스커버리를 지나 20세 후반 실제 우주로 쏘아올린 디스커버리호를 기억하다가 우리의 시선을 모은 것은 21세기를 여는 시점에 등장한 디스커버리 스피커였다. 우리 같은 오디오파일들이 이러한 우주, 신화, 절설에 등장하는 이름을 오디오 모델명에서 마주치는 것은 어쩌면 흔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21세기가 열어젖힌 밀레니엄 시대에 이 그로테스크(?) 디자인의 디스커버리가 오디오, 그중에서도 스피커 엔지니어링 분야에 준 충격과 통찰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총 네 개의 드라이브 유닛의 하나의 스탠드마운트 스피커에서 우겨 넣은 모습. 이 스피커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과연 어디에 네 개가 쓰였고 각각 어떻게 어떤 대역을 재생하는지 궁금증투성이였다. 그뿐만 아니다. 하방을 향해 베이스 우퍼가 등을 내밀고 있는 모습에선 그저 실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었고 스피커를 세팅할 땐 바인딩포스트가 어디 있는지 잠시 헤맸다. 스탠드마운트 스피커지만 바인딩포스트가 금속 스탠드 하단에 왜 있는 걸까? 게다가 카본으로 둘러싸인 인클로저는 바늘로 찔러도 단 1mm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단단해 보였다. 과연 21세기의 스피커는 앞으로 이런 식으로 우리를 낯선 세계로 인도할 것만 같았다.

wilson benesch discovery 2

2015 디스커버리 II

디스커버리의 낯선 비행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두 번째 비행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연착륙했다. 이미 그 형식과 내부 구조 및 카본 소재 등 10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도 디스커버리는 대동소이했지만, 세월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신선한 설계와 소재를 보였다. 수십년을 앞서 상상했던 우주선처럼 윌슨 베네시는 디스커버리 스피커를 과거에서 타임머신 속에 실어 2015년에 꺼내놓은 듯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세밀한 부분에서 윌슨 베네시는 디스커버리 안에 그들의 비기를 곳곳에 숨겨 넣고 있었다. 드라이브 유닛은 세미스피어 트위터로 발전했고 우퍼는 일제히 택틱 2세대로 진화해 더욱 강력한 강도로 그 성능을 끌어올렸다. A.C.T. 모노코크 인클로저로 중무장한 디스커버리는 소재 그리고 구조적 진동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SSUCHY 프로젝트

2017 SSUCHY

아마도 2세대까지 진화시킨 디스커버리에서 윌슨 베네시는 또 다른 동력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새로운 라인업 개발과 환기 그리고 항상 시대를 앞서갔던 그들은 그 동력을 R&D에서 찾아왔었다. 10만 평이 넘는 대규모 연구단지 AMP 산하 AMRC 연구 센터에서 보잉, 에어버스, 심지어 롤스로이스 같은 첨단 브랜드와 함께 연구를 진행해왔던 그들이다. 아마도 이곳의 유일한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가 윌슨 베네시였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동력을 이끌 대형 연구 프로젝트가 2017년 약 4년간 740만달러의 연구비를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열 개가 넘는 유럽 유수의 대학과 블루칩 기업 등 22개 이상의 파트너들과 함께 연구에 몰두 했고 그 결과 윌슨 베네시는 미래의 하이엔드 스피커의 근간이 될 소재를 개발해냈다.

A.C.T. 3ZERO BIOCOMPOSITE MONOCOQUE

SSUCHY 연구의 결과물은 윌슨 베네시의 신제품 개발을 추동했고 속속 결과물이 나오게 된 건 2022년었다. 최상의 에미넌스를 비롯해 옴니엄 등을 비롯해 레졸루션 3Zero, A.C.T. 3Zero, 엔데버 3Zero, 디스커버리 3Zero가 그 결과물이다. 이 중 디스커버리 3Zero는 단연 최대어라고 할만한 모델이다. 과거부터 윌슨 베네시의 가장 인기 기종으로 디스커버리는 세계 3대 스탠드마운트 스피커라고 하면 항상 빼놓을 수 없는 모델이었다. 사실 스탠드마운트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거의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에 버금가는 설계와 성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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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디스커버리 3Zero

디스커버리 3Zero의 전체적인 설계 기조는 과거의 그것과 동일하다. 요컨대 총 네 개의 드라이브 유닛을 사용한 3웨이 4스피커 형식의 대형 스탠드마운트 타입 스피커다. 하지만 일반적인 북셀프 타입 스피커의 공식을 철저히 파괴한 문제작으로 여러 독보적인 기술이 투입되었다. 전면에 트위터, 미드레인지를 장착하고 저역은 인클로저 하단에 장착했다. 겉으로 보기엔 등을 보이고 있는 베이스 우퍼 한 개가 전부지만 내부에 얼굴을 맞대고 또 하나의 베이스 우퍼가 마주하고 있다. 바로 1950년대 해리 올슨이 개발한 이후 역사적으로 여러 메이커가 도입해왔지만 성공적으로 구현해 가장 진보적으로 진화시킨 브랜드가 윌슨 베네시다.

피보나치 실크 카본 트위터

유닛을 살펴보면 트위터는 종전의 세미스피어를 진보시킨 실크/카본 하이브리드 트위터로서 전면 플레이트에 피보나치 문양이 이색적이다. 황금 수열로 불리는 피보나치 수열을 기하학적으로 풀어낸 문양이다. 한편 전면의 7인치 미드레인지는 7인치 구경으로 이 또한 전면 중앙 더스트캡 부분에 동일한 문양의 보조물을 장착시켜놓고 있다. 택틱 3.0 버전으로서 이 두 개의 피보나치 문양은 소리의 회절을 막고 자연스러운 확산, 방사 성능을 돕는다. 더불어 하단의 베이스 우퍼는 동일하게 택틱 3.0 버전 유닛이지만 저역 재생 전용으로 아이소베릭 우퍼 시스템이다. 일반적인 전면 배플 장착 방식보다 훨씬 더 적은 캐비닛 용적 안에서도 되레 저역 하한과 그 성능에선 더 높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게끔 설계했다.

아이소베릭 베이스 우퍼 시스템

한편 인클로저도 A.C.T. 3Zero 모노코크로 대폭 업그레이드되었다. 과거 노맥스 코어와 카본을 사용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대체로 친환경 생체 목합 소재를 사용해 제작했는데 오히려 강도 등은 더 높다는 것이 윌슨 베네시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금속 패널 및 카본 사이드 패널 등 겉으로 보기엔 여전히 윌슨의 독보적인 미관과 소재들이 여전히 혼재되어 있어 그 아름답고 미래지향적인 외형은 여전하다. 한편 어쿠스틱 로딩 방식은 트위터의 경우 밀폐형으로 설계하되 미드레인지와 베이스 우퍼의 경우 각각 하단에 각기 다른 길이의 포트를 마련해 후방 에너지를 하방으로 자연스럽게 방출하고 있다. 짧은 것이 미드, 긴 게 베이스 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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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디스커버리 3Zero는 5kHz에서 로우 패스 필터와 하이 패스 필터를 마련해놓아 크로스오버를 끊고 500Hz부터 아이소베릭 우퍼가 재생하도록 로우 패스 필터를 설계해놓고 있다. 저역은 38Hz, 고역은 30kHz까지 뻗는데 3웨이가 아니라 2.5웨 설계인 이유를 알 수 있다. 매우 단순한 크로스오버 설계를 갖추고 미드레인지가 상당히 많은 주파수 대역을 할당받아 재생하게 되어 있고 저역은 여기에 추가로 보충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런 설계 때문일까? 보편적으로 저역 성능을 드라마틱하게 높일 수 있지만 낮아지는 감도 때문에 대중화되지 못했던 아이소베릭 설계지만 감도가 89dB로 충분히 높은 편이다.

이번 시청엔 국내에 새롭게 상륙한 버메스터의 077 프리앰프 및 216 스테레오 파워앰프를 사용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버메스터 순정 조합이고 윌슨 베네시와 상성도 기대가 됐다. 한편 소스기기는 T+A의 MP31000HV를 사용해 ROON으로 재생하면서 음질적 특성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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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피커를 처음 들어보면 가장 놀라운 점은 발음원이 한 점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유닛만 채용채 만든 풀레인지 스피커처럼 자연스럽다. 실제로 이 스피커에서 사용한 유닛은 스탠드마운트 스피커치곤 이례적으로 많은 총 네 개다. 하지만 예를 들어 도미니크 피스 아이메의 ‘Strange fruit’을 들어보면 보컬이 재생되는 전 대역 안에서 어떤 이물감도 느낄 수 없을 정도다. 더불어 포커싱은 뚜렷하고 풍부한 감정 표현까지 느껴질 정도로 실체감이 뛰어나다. 어떤 대역도 얇거나 엷게 푸석거리는 모습이 없이 고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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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와 보컬 등이 합세한 라이브 레코딩을 들어보면 이 스피커는 풀레인지처럼 자연스러운 대역간 이음매를 보이면서도 공간을 매우 넓게 활용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이애나 크롤의 파리 라이브 실황 중 ‘A case of you’를 들어보면 북셀프로서 만들어낼 수 있는 무대 사이즈를 훌쩍 뛰어넘는다. 물론 북셀프면서 넓은 음장을 그리는 스피커도 꽤 있지만 디스커버리는 풍부한 음압으로 음악의 물결이 공간을 휘젓는다. ‘포만감’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듯한 앰비언스가 청자를 잠시나마 파리 공연으로 이동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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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피터슨의 ‘You look good to me’에선 더블 베이스가 마치 실사이즈로 앞에 서있는 듯 육중한 몸체와 마주하게 된다. 트위터의 고역은 롤 오프가 거의 느껴지지 않으면서 선형적이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아 음악에 장시간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스피드 측면에서도 전혀 나무랄 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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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포플레이의 ‘Tally ho!’를 들어보면 힘의 완급 조절이 능수능란하다. 작은 사이즈에서 억지로 짜낸 듯한 소리가 아니고 중형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처럼 넉넉한 헤드룸을 바탕으로 한 사운드다. 부드럽게 질주하는 여유가 있지만 동시에 속도를 높이면 아이소베릭의 시간 차 없는 쾌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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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 스피커는 북셀프라는 프레임 안에 가두면 안 되는 스피커다. 예를 들어 앨리스 사라 오트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이 함께한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에선 번개처럼 빠른 피아노 타건이 귓전을 때리고 깨끗이 공간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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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2악장에서 악기들은 마치 실타래를 풀어헤치듯 각 악기의 움직임이 분해되어 하나하나 눈에 보일 듯 역동적으로 꿈틀댄다. 물론 상위 엔데버, 레졸루션으로 가면 더욱 여유로운 다이내믹스, 스케일의 운행을 보이지만 밸런스, 음색 등은 동일하며 공간 운영, 가격 면에선 매우 매력적인 디스커버리만의 매력은 충분하다.

Discovery 3zero wilson benesch

총평

디스커버리 3Zero 리뷰는 이번이 두 번째라는 걸 고백한다. 이전 리뷰에선 NAD 및 T+A 같은 앰프를 매칭해 테스트해보았다. 물론 그 앰프들과 조합에서도 디스커버리 3Zero의 개성과 성능은 왜곡되지 않는다. 한편 이번에 매칭한 버메스터 앰프 조합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최초 218이라는 거함을 매칭했지만 실질적인 가격, 체급에서 216이 더 어울렸으며 매칭 측면에서도 더 나은 결과물로 증명했다. 윌슨 베네시의 여타 모델도 마찬가지지만 독특한 설계로 인해 세심한 매칭이 요구된다. 단지 힘으로만 밀어붙이면 오히려 경직되고 과도한 저역 응답을 보이므로 힘과 질감의 양립이 필요하다. 시청실을 나서면서 필자 또한 디스커버리 3Zero를 품에 안을 날을 꿈꿔보았다. 개인적으로 윌슨오디오 사샤와 락포트 아트리아를 운영하고 있지만 디스커버리 3Zero는 또 다른 음향의 우주로 안내한다. 오늘도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흘러나오는 광경을 상상한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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