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많은 오해와 편견, 그 정글 속에서 우린 외로운 싸움을 걸지’
1996년에 개봉한 김흥준 감독의 영화 <정글스토리>를 소개한다. 1994년작 <장미빛인생>으로 한국영화의 이정표를 찍었던 그가 음악영화라는 장르에 도전한다. 여기에 김창완, 윤도현, 조용원이 배우로 참여한다. 가수 신해철은 OST를 담당하고 자신의 실제 공연장면을 영화에 넣어 현장감을 배가시킨다.
이 정도면 대중문화의 열기가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의 흥행작으로 기대를 해볼만 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의 흥행은 처참했다. 6천명의 관객을 동원한 망작으로 남은 <정글스토리>를 선정한 이유는 한국 음악영화의 기록지로 남을만한 장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의 플롯에 대한 문제점은 인정한다.
영화에서 주인공 도현(윤도현 역)의 고향은 그가 실제로 성장했던 경기도 파주다. 그는 부모의 우려를 물리치고 전업음악가(로커)를 목표로 서울로 향한다. 돈벌이와 음악생활을 병행해야 하기에 종로 낙원상가에 일자리를 얻는다. 그는 목표는 록밴드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다. 도현은 밴드 이지 라이더의 멤버 대영과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선배와 함께 미래를 준비한다.
한편 지우(김창완 역)는 록월드에서 공연을 하는 도현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그는 도현에게 접근하여 밴드 매니저를 하겠다고 제안한다. 어렵사리 기회를 잡은 도현은 파주로 돌아가 멤버들을 규합한다. 그들은 황량한 벌판에 만들어진 비닐하우스에서 연습에 몰두한다. 그들은 연습과정에서 의견충돌을 거듭한다. 멤버끼리 주먹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밴드생활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도현이 방문하는 약국에서 닐 영의 [Heart Of Gold]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온다. 하이틴 배우로 인기의 정점에서 교통사고로 자취를 감췄던 배우 조용원이 약사로 등장한다. 영화 줄거리와 연관성이 떨어지는 장면이지만 배경음악 덕분에 깊은 잔상을 남겨준다. <정글스토리>의 가장 큰 단점은 전체 줄거리와 따로 움직이는 부분이다. <장미빛인생>의 완성도가 다시금 떠오를 수밖에 없다.
무명밴드의 미래는 공연실패로 마무리된다. 그들은 길거리 즉흥공연으로 밤안개에 휩싸인 자신들의 처지를 항변한다. 설명한대로 영화 <정글스토리>는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신해철이 제작한 음반 ((정글스토리))는 엄청난 판매고를 보인다. 그렇다. 1990년대 한국대중음악계에는 신해철이라는 인파이터가 있었다. 그는 음악가를 딴따라로 취급하는 방송권력에 맞서 싸우던 용자이자 현자였다.
음반 ((정글스토리))의 대표곡은 [70년대에 바침]이다. 군사정권시대의 방송으로 시작하는 노래가사는 다시 들어봐도 절절함이 가득하다. 유치한 양비론에 휩싸여 좌우갈등을 반복하는 정치권과 언론의 미래를 신해철은 예상했던 것일까. 그가 만약 살아 있었다면 어떤 발언과 행동을 남겼을까. 음악과 역사를 구분 짓지 않았던 인간 신해철이야말로 90년대에 바쳐진 소중한 유산이었다.
하늘이 그리도 어두웠었기에 더 절실했던 낭만
지금 와선 촌스럽다 해도 그땐 모든 게 그랬지
그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 70년대를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가위를 든 경찰들
지금 와선 이상하다 해도 그땐 모든 게 그랬지
그 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 70년대를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
신해철 곡 [70년대에 바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