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되는 리뷰 테스트는 가끔 나를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신제품이지만 그리 감흥이 없는 경우도 있고 너무 고가여서 도저히 넘보기 힘든 것들도 있다. 하지만 가끔은 사막의 모래 속에서 진주는 찾은 듯 감탄을 할 때도 있어 즐겁다. 게다가 음질, 성능, 기능에 더해 가격도 합리적일 경우 직접 구입해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엔 리바이벌오디오 아탈란테3, 마란츠 모델 40n, 그리고 사무실에서 쓸 요량으로 구입해놓은 캐리 SLI80Sig 인티가 그렇다. 한편 너무 좋은데 구입하지 못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하나 카트리지에서 나온 Umami Red나 Blue 같은 카트리지 그리고 베르테르에서 새로 나온 XtraX 카트리지다.
요즘 아날로그 쪽은 정체 상태였는데 이 카트리지들은 간만에 정신을 환기시켜주었다.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다이나벡터나 골드링 같은 카트리지도 물론 좋아하지만 역시 아날로그 쪽은 디지털과 달리 정말 정확히 가격대로 음질이 좋아진다. 하지만 요즘 재발매들 중 국내 가요 쪽 재발매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 2~3만원이면 족할 정도의 품질인데 4~5만원대가 기본이고 어떤 건 아무 이유 없이 10만원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엘피 붐에 편승한 과욕은 시장을 황폐화시킬 게 뻔하다.
그런 와중에서 최근 빌 에반스의 엘피 하나를 듣고 있는데 음질이 너무나 좋다. 이 정도라면 좀 비싸더라도 충분히 용서가 된다. 듣고 있으면 자꾸 얼마 전 리뷰 후 반납한 하나 카트리와 베르테르 어쿠스틱스 카트리지가 생각난다. 저출력 MC 카트리지의 섬세함과 나긋나긋한 패시지 표현, 유연한 주파수 이음매는 풀 아날로그 방식 엘피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권이다. 스스슥 거리며 심벌 위를 노니는 브러쉬, 피아노를 누르는 손가락의 강도와 잔향의 길이 그리고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멤버들간의 인터플레이, 호흡이 가감없이 전해진다.
최근 빌 에반스의 1968년 녹음 ‘Some other time’ Vol.2가 드디어 출시되었다. 처음 이 녹음이 엘피로 발매되게 된 계기는 레조넌스 레코드의 제브 펠드먼의 집요한 추적 작업과 열정 덕분이다. 그는 독일의 재즈 레이블 MPS 사장의 아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빌 에반스의 미공개 스튜디오 녹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녹음 시기는 1968년, 바로 그 유명한 몽트뢰 페스티벌 공연이 있었던 해였다. 버브에서 발매에서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던 바로 그 앨범이다. ‘Some other time’은 바로 그 공연이 있었던 1968년 6월 15일로부터 닷새 후 독일의 ‘블랙 포레스트’에서 녹음한 판본이다.
처음 레조넌스에서 발매된 후 순식간에 품절된 후 고가에 거래되다가 이후 RSD(레코드 스토러 데이) 한정반으로 발매되어 운 좋게 구입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후 2XHD에서 다시 또 발매되었고 그 음질에 놀란 바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음질을 위해 45RPM으로 발매되면서 전체 곡을 모두 수록하지 못한 점이 무척 아쉬웠다. 그런데 역시 2XHD는 계획이 있었던 것. 최근에 나머지 곡을 모두 담은 Vol.2를 출시했다. 이 엘피의 음질이 뛰어난 건 기본적으로 스튜디오 녹음 원본의 탁월함이며 훌륭한 보관 상태다. 여기에 더해 나그라의 르네 라플람이 마스터링하고 버니 그런드먼 마스터링에서 커팅해 만들었다는 점이 더해진다.
제작에 사용한 기기들도 모두 아날로그 명기들의 향연이다. 나그라 T-Audio와 역시 나그라 4S로 재생 및 녹음이 이뤄졌고 케이블 같은 경우도 모두 OCC 순은선을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유럽으로 건너가 다양한 희귀 녹음을 많이 녹음하고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등 연주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그리 뛰어난 녹음이 많진 않은 것도 사실. 빌 에반스와 에디 고메즈 그리고 잭 디조넷 등 최고의 황금기 멤버들의 연주를 독일의 한스 게오르크 브루너 슈베르와 요아킴 어니스트 브렌트 등 독일인들이 녹음한 앨범. 이미 CD나 24비트 음원 그리고 RSD 에디션 엘피로도 가지고 있었지만 2XHD의 마스터링 시스템으로 출시된 엘피로 듣는 맛은 남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