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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모인 사람들

문화중독자의 플레이리스트 – 3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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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19일 저녁부터 서울에 폭설이 내렸다. 다음 날 아침부터 눈길을 헤치고 지하철역으로 향한 이유는 개봉작 [크레센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서울에 개봉관이 많지 않은지라 필자는 광화문까지 이동해야만 했다. ‘만약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루에서 우승하지 않았다면 [크레센도]를 예약했을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지하에 위치한 시네큐브 극장 입구에는 개봉일에 맞춰 상영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크레센도 마크

필자의 기대와 달리 임윤찬의 인터뷰 장면은 40여분 후에서야 등장한다. 음악 다큐 중반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크레센도]는 콩쿠루를 석권한 임윤찬 1인을 위한 다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대회는 1948년 동서 냉전시대를 음악으로 치유해 줬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을 기리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반 클라이번은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한다. 임윤찬 역시 같은 곡으로 대회 결선에 대비한다. 한국은 이미 2017년 선우예권이 위 대회의 최초 한국인 우승자로 지명되었다.

crescendo

[크레센도]는 콩쿠르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는 음악 다큐다. 초반에는 대회에 임하는 30명의 간략한 인터뷰가 등장한다. 그들은 미국인 지원자를 제외하고 시차 적응과, 피아노 연습과, 치열한 경쟁과, 미국 텍사스라는 환경 모두에 적응해야만 하는 과제에 부딪친다. 30명의 명단에는 임윤찬을 비롯한 김홍기, 박진형, 신창용이라는 한국인이 있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임윤찬의 장면이 등장한다. 그는 이미 행사 진행자 2명의 극찬을 받는다. 30명에서 18명, 12명, 6명의 피아니스트로 지원자가 추려진다.

크레센도 포스터3

한편 이 대회는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를 참여시킨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내전이 발발하자 러시아 출신 음악가의 참여를 거부하는 국가가 늘어난다. 반 클라이번 콩크루 역시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다. 대회를 주관하는 인물은 고민 끝에 과감하게 러시아 지원자를 포함시킨다. 그는 결국 6명의 결선에 선발됩니다.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레셴도]가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음악을 넘어 세계 평화의 가치를 이뤄야 한다는 대회의 정신과 철학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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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은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을 기립박수와 함께 마무리한다. 20대 지원자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18세라는 어린 나이로 만들어낸 음악적 성취였다. 다큐의 하이라이트는 그와 협연한 연주자들이 줄지어 대기하면서 임윤찬에게 찬사를 전하는 장면이다. 필자를 포함한 관객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어준 장면이었다. 클래식 음악팬을 포함하여 모든 다큐 애호가에게 [크레센도]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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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 봉호

대중문화 강의와 글쓰기를 사랑합니다. 때문에 문화콘텐츠 석박사 과정을 수학했습니다. 저서로는 '음악을 읽다'를 포함 10권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음악과 관련한 글을 집중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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