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의 보도
베스트 매칭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건 전기적, 물리적 해석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출력, 임피던스, 주파수 응답이나 앰프의 출력 임피던스 등 다양한 스펙, 측정치를 감안해서 수학 공식처럼 풀어내기엔 변수가 너무 많다. 사람들은 때론 그런 정보를 가지고 복잡한 수학 공식을 풀 듯 베스트 매칭을 역산해 보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베스트 매칭은 별다른 정보 없이 그저 미련하게 다양한 매칭을 시도한 끝에 얻어낸 경험의 산물인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아주 기본적인 오디오 이론이 기반이 되었을 순 있다. 8Ω, 85dB 스피커에 10W 짜리 진공관 앰프를 매칭해서 베스트 매칭이라고 우긴다면, 그건 그만의 착각으로 치부되며 보편적인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결국 아무리 이론적인 산술과 법칙을 운운해도 종종 생각지도 못한 재생음의 품질과 매칭이 우리를 당혹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토템 Mani2를 다룰 때였다. 극악무도한 임피던스 커브와 감도를 가진 이 스피커를 드라이빙 하려 약 열 종의 앰프를 매칭해보곤 했다. 그런데 우연히 입수하게 된 사이러스 인티앰프가 꽤 설득력 있는 소리를 들려주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베스트 매칭은 아니다. 저역으로 하강하는 구간에서 높은 저역 이하가 급속한 dB 저하를 겪으면서 홀쭉하고 엷은 저역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베스트 매칭은 하베스와 사이러스, 혹은 로저스와 네임오디오 같은 것이다. 때로 BBC 모니터는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오디오를 좋아하는 일반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정받아 구전으로 전해지는 베스트 매칭이 많다. 그중 하베스 같은 경우 사이러스가 베스트 매칭 중 하나다. 사실 네임오디오나 EL34 진공관 싱글 혹은 푸쉬풀 앰프도 좋지만, 가장 담백하면서도 곱게 빻은 듯한 표면 텍스처와 함께 다부진 중, 저역을 내주는 그 맛은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그 맛은 오랜 시간이 흘러 화려한 스펙과 기능을 자랑하는 기기들이 나와도 대체하기 힘든 면이 있다. 또한, JBL엔 마란츠, B&W엔 크렐 등 이젠 지나간 이야기 같지만 오랜 세월 경험으로 체득했던 전가의 보도들이 있다.
인티앰프와 프리, 파워
그중 인티앰프, 그리고 프리, 파워 분리형에 관한 경험과 베스트 매칭 역시 여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게다가 그것은 사실 이론적 기반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이야기한 마크 프리엔 크렐 파워, 트랜지스터 파워앰프에 진공관 프리를 매칭해 힘과 음악성을 모두 취하고 싶을 땐 BAT나 오디오 리서치 등에서 나온 하이브리드 진공관 프리앰프가 제격이다. 스펙트랄은 프리앰프가 게인이 높아 타사 파워와 매칭하면 좀 드센 경향이 있지만, 같은 스펙트랄 파워앰프는 반대로 움푹 들어간 얼음 동굴 같은 소리를 내준다. 결국 순정 조합은 상호 보완적 관계로 최상의 매칭을 보여준다. 매칭이 까다롭기로 소문이 무성한 패스 알레프 시리즈는 사실 오디오 리서치나 설계자가 같은 스레숄드 프리 같은 게 제격이다.
인티앰프는 마치 스트리밍 DAC 같은 것으로 축약의 산물이다. 인티앰프가 프리, 파워 분리형에 필적한다고 기세 좋게 이야기하는 이도 있지만, 사실 이 문장은 프리, 파워와 성능이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까스로 조금 비슷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분리형보단 못하다는 함의가 내포되어 있다. 오디오 발전이 더뎌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전원이 별도로 탑재되는 것, 그리고 섀시가 분리되는 것만으로도 서로 간섭이 적어지고 최적의 작동 환경에 도움을 준다. 게인, 임피던스 또한 분리형에서 서로 나누어 담당하는 것이 최종 성능에 유리한 면이 있다.
작아도 분리형이다
최근 만난 분리형 앰프를 보면 하프 사이즈에 불과한 크기의 앰프인데 이걸 굳이 왜 두 개로 나누어야만 했는지 의문을 가지기 딱 좋다. 그리폰이나 단 다고스티노, 제프 롤랜드, 마크 레빈슨 등 요즘엔 매머드 급 인티앰프가 유행이지 않던가? 그런 하이엔드 오디오의 인티앰프를 보면 왜 굳이 이걸 하나의 몸체에 모두 담았을까 하는 의문과 정 반대의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광경이다. 과연 왜 이렇게 두 개의 기기로 나누었을까? 작더라도 프리, 파워 분리형의 음질적 이득은 분명하단 걸 40년 역사를 통해 체득했기 때문이다.
우선 프리앰프를 살펴보면, 작지만 프리앰프의 기능에 충실함을 알 수 있다. 팬텀 블랙 마감에 다부진 사이러스 고유의 디자인은 그대로다. 우측으로 볼륨이 마련되어 있고, 꽤 섬세하게 작동하므로 조그만 방, 근거리에서 사용하더라도 세심한 볼륨 조정이 가능하다. 니어필드에 무척 잘 어울리는 볼륨단이다. 전원부 또한 74VA 용량으로 충분하며, 사이러스의 최상위 모델답게 RCA는 물론 XLR 출력도 가능하다. 참고로 가능하면 XLR 출력단을 활용하길 추천한다. 한편 입력단은 RCA 입력 네 조가 마련되어 있으므로 다양한 소스 기기를 추가로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리모컨은 필수. 꽤 커다란 리모컨을 기본 제공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다양한 부가 기능이다. 일단 포노단을 내장하고 있다. MM에만 대응하긴 하지만, 간단히 턴테이블을 세팅해 바로 연결, 사용 가능하다. 더불어 가장 큰 부가 기능은 역시 DAC다. 내부엔 사이러스에서 QXR이라고 명명한 DAC 보드가 내장되어 있다. 2세대까지 진화한 모델로 DAC 칩셋은 ESS 사브레 칩셋을 사용하고 있다. 디지털 입력단은 광, 동축 각각 2개, 그리고 USB 입력단도 마련해놓고 있어 PC 또는 네트워크 플레이어와 연결 가능하다. 최근엔 DAC나 네트워크 플레이어에 볼륨이 내장되곤 하는데, 중저가에 내장된 디지털 볼륨은 쓰지 말고, 유니티 게인, 대개 최대 출력으로 세팅 후 볼륨은 전용 프리앰프에서 조정할 때 해상도, 다이내믹스 손실 없이 최상의 음질을 들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하기 바란다.
한편 파워앰프는 클래스 AB 증폭을 택하고 있다. 워낙 오랜 시절 앰프를 설계, 제작해온 사이러스만의 설계 공식은 여전하다. 전원부는 408VA 수준으로 충분한 용량의 트랜스포머를 사용해 리니어 전원을 고집하고 있다. 출력은 8Ω 기준 채널당 87W, 4Ω 기준으로는 144W로, 임피던스 하강에 따라 정확히 두 배의 선형 출력 증강을 보여주진 않는다. 추가로 6Ω 기준 110W로, 출력 자체는 최근 D 클래스에 비하면 작아 보이지만 실제 운용해 보면 출력은 수치에 불과하다. 참고로 두 모델 모두 PSU-XR이라는 전용 옵션 전원부를 추가로 구입해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파워 증강뿐만 아니라 프리앰프 아날로그단 등에 개입해 최적의 전원 공급을 보완하며, 이로써 음질적인 부분을 향상시켜준다.
달콤 쌉사름한 초콜릿
테스트는 평소 사용하는 시스템을 통해 이뤄졌다. 일단 ROON을 사용해 재생하기 위해 ROON 코어를 사용했고, 웨이버사 Wcore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 더불어 Wstreamer를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사용했으며, 스피커는 리바이벌오디오의 Atalante 4를 사용했다. 공칭 임피던스 4Ω에 감도는 89dB의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로, 기존 Atalante 3의 플로어 스탠딩 확장형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사이러스 앰프의 볼륨을 조정해 보면 섬세한 볼륨 조절로 음량을 설정하기 좋은 편이다. 더불어 팬텀 블랙 마감이 예전 사이러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입력 선택 버튼들도 세련되게 변모해 더욱 향상된 사용 편의성을 제공한다. 전체적인 음상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으며 중앙에 또렷한 포커싱을 형성한다.
특히 내장 DAC의 성능이 예상 밖으로 뛰어난데, 입자가 곱고 투명하며 소리를 전면에 호소력 있게 뿌리는 편으로 단박에 귀를 잡아끄는 사운드를 어필한다. 존 애덤스의 보컬은 좌/우 폭은 약간 좁지만 깊이 표현이 좋고 밀도가 높다. 브리티시 사운드를 대표하는 BBC 스피커들이 내주는 사운드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사이러스 앰프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표면 텍스처와 밀도감이다. 기본적으로 표면 텍스처는 곱고, 악기들의 표면 질감을 효율적으로 표현해 준다. 거친 표현도 가감 없이 표현해 준다. 나름 솔직하지만 완전히 투명하게 표현하진 않아서 사이러스 특유의 질감 표현법이 종종 드러난다. 리처드 용재 오닐이 연주한 헨델의 ‘Passagalia’를 들어보면 바이올린 현의 떨림이 매우 강력한 쾌감을 전해온다. 특히 중역대 밀도감이 뛰어난 사운드로서, 머리칼처럼 세세하게 분리되기보단 단단하게 응축되어 묵직하게 파고드는 현 사운드다. 앰프 사이즈는 작지만 밀도 있는 사운드로 어필하면서 중대형 Atalante 4 스피커를 그리 어렵지 않게 제어한다.
아마도 리듬감, 추진력 등 동적인 표현력에 있어 사이러스를 빼면 섭섭하다. 확실히 사이러스만의 다부지고 역동적인 리듬감은 그만의 매력이 따로 있다. 위켄드의 ‘Blinding Lights’를 들어보면 어택이 빠르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소리 하나하나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 아주 예리한 골격을 그리진 않지만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씨처럼 제법 묵직하고 선이 분명한 사운드다. 특히 저역을 오가는 베이스 라인이 다른 악기와 선명하게 구분되어 들리는 부분에선 꽤 놀라웠다. 많은 앰프들이 마스킹 되는 걸 봐왔기 때문이다. 다만 Atalante 4 스피커와의 매칭에선 볼륨을 조금 많이 먹는 면은 있다.
보다 많은 악기가 출몰하는 대편성 교향곡에선 사이러스가 스피커를 통해 분출하는 소리의 정보량과, 해상도, 그리고 다이내믹스와 사운드 스테이징 등 다양한 부분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RCA 입력단을 통해서든 동축 디지털 입력을 통해서든 일정 이상의 해상력 및 다이내믹 헤드룸은 충분히 확보되는 편이다.
특히 낮은 볼륨에서도 해상도가 좋은 편인데, 카플란이 지휘한 빈 필 연주로 말러 2번 ‘부활’을 들어보면 각 악기들의 파트가 각각 그룹을 지어 분명히 구분된다. 다분히 응집력이 좋은 소리로 각 악기들의 음색 분리가 확실히 교통정리되어 들린다. 특히 마이크로보단 매크로 다이내믹스가 높고, 전체 사운드 스테이징은 현대 하이엔드 앰프 같은 입체감보단 단단하게 밀착되어 공간에 정확한 구획을 그려 넣은 타입이다. 음색 자체도 차갑지 않고 온도감이 좋아 친밀감이 느껴진다.
총평
사이러스가 만들어낸 증폭의 세계는 여전히 독보적이다. 작지만 강하고, 합리적인 가격대에 실속파 오디오파일을 많이 양산했던 브랜드답다. 도시락 사이즈의 앰프로 하베스, 스펜더, 프로악, 셀레스천, 어쿠스틱 에너지 등 주머니 사정이 힘든 직장인들을 울리고 또 울렸다. 그리고 이제 사이러스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듯 변화의 조짐을 보이면서 BluOS와 파트너십을 맺고 네트워크 스트리머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라인업의 변화 속에서도 XR 시리즈는 사이러스의 헤레티지를 유지하면서 최신 디지털을 흡수해 더욱 견고히 자신들의 DNA를 진화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그 중심에 XR 시리즈가 있다. Pre-XR과 Power-XR은 사이러스의 전통과 혁신을 모두 담아낸 하프 사이즈 분리형 앰프의 작은 거인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