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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디지털 사운드의 심장

T+A MP200

mp 200 cd radio cards 1200x700

디지털 소스 기기의 변천

주로 CD를 듣던 시절이 있었다. 필립스 CD 플레이어와 소니 CD 플레이어를 주로 사용했다. 모두 CD라는 디지털 포맷을 만든 회사들이 하드웨어까지 선점하던 시절이었다. CD는 기존에 LP를 대체하면서 그 세력을 넓혀갔고, 순식간에 LP를 메인스트림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나중의 일이지만 소니가 자사의 모든 기술력을 쏟아부어 만들었던 SACD 플레이어 SCD-1을 사용해 보면서 그 정교한 만듦새와 메커니즘에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리딩 속도가 느리긴 했지만 사용자를 만족시키는 디자인과 작동 메커니즘은 왜 하이엔드 오디오가 필요한지 알려주었다. 광학 매체 재생에 있어 예술의 경지였다.

한편으로 고급 기기 사용자들은 분리형을 운용하기도 했다. CD를 읽어들여 디지털 신호로 내보내는 역할만 하는 트랜스포트 한 덩어리, 그리고 이 신호를 받아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해 주는 CDT가 있었다. 와디아, dCS, 세타 등 각국의 디지털 기술 강호들이 이 분야의 영토를 놓고 경쟁했다. DAC엔 역시 소니와 필립스가 제정한 인터페이스 SPDIF 동축 또는 AES/EBU로 통신했다. 가끔은 기기 내부 통신에 사용하는 i2S 인터페이스를 사용하기도 했다. CD 또는 SACD 재생에 있어 극한의 정보량과 분해력을 추구하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dCS 엘가를 위시로 CDT, DAC, 업샘플러도 합체된 풀 세트가 보이면 가슴이 두근대면서 소유하고 싶어진다.

dcs

디지털 소스 기기의 커다란 변화는 음원을 재생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면서부터 예고되었다. PC에 음원을 리핑해 HDD에 담고 USB 출력으로 DAC와 연결해 들었다. 당시 필자의 경우엔 곧 죽어도 CDT와 DAC 분리형을 운용하곤 했다. 그래도 DAC에 USB 입력이 없어 PC의 USB 출력을 받아줄 DDC를 사용해 DAC와 연결해 사용하곤 했다. 주로 디지털 소스는 CD를 사용해 즐기곤 했지만, 음원 재생의 편의성에 눈 감긴 힘들었다. 인간은 편리함의 노예이고, 산업은 성능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기능, 편의성 위주로 발전한다. 대부분의 기기들이 구형에서 신형으로 오면서 기능은 좋아지되 하드웨어 부문의 원가절감이 눈에 띄는 것도 같은 이치다.

mp 200 teaser mp 200

멀티 소스

지금은 과연 어떤가? 이젠 PC를 통해 음원을 재생하는 이른바 PC-FI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사용해 음악을 듣는다. 소유의 시대에서 이젠 공유의 시대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PC나 NAS에 음원을 저장해놓고 이를 재생해 즐기는 마니아들도 있지만, 한번 타이달 등 온라인 스트리밍에 익숙해지면 만사가 다 귀찮아지기 마련이다. 한편 CD나 LP도 여전히 듣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나 같은 경우 여전히 CD와 LP를 가지고 있을뿐더러, 종종 구입하기도 한다. 음반 구입에만 한 달에 수십만 원을 지출할 때도 있다. 왜냐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만은 충족되지 않는 음질 또는 소유의 즐거움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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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가 건네는 제안

전체 음악 감상 인구의 소비 방식 중 온라인 스트리밍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현재에도 나처럼 여전히 CD를 구입하고 리핑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은 비율이긴 하지만, 소수 의견과 소수의 피지컬 매체에 대한 고집이 절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감상자 입장에서 음악이라는 도락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동 수단이 발달하고 자율 주행이 유행하더라도, 나는 일부러 멀리 돌아가며 걷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신체 건강을 위해서,. 음악 감상이란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온라인 스트리밍에만 의지하지 않고 종종 콘서트홀에 가거나, 음반을 구입해 뮤지션에게 사인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MP200 silber Front Web

T+A에서 필자 같은 사람을 위해서 소스 기기를 하나 출시했다. 이름은 MP200. T+A는 독일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로서, 마치 탱크 같은 섀시에 그들이 수십 년간 발전시켜온 정밀 기술을 투입해 다양한 제품군을 발표해오고 있다. 그중 200 시리즈는 DAC200을 비롯해 A200, M200 파워앰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DAC에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내장하는 대신 네트워크 스트리밍 기능을 별도의 기기 MP200에 담았고, 추가로 CD 플레이어를 내장했다. 여전히 유럽은 CD 등 물리 매체의 천국이다. 최근 몇 년간 네덜란드 음반 페어를 다녀온 지인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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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네트워크 플레이어 부문은 UPnP/DLNA에 대응하므로 NAS에 저장된 음원을 불러와 재생 가능하며, 이 프로토콜을 지원하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코부즈, 타이달 등은 물론이며 무척 다양한 스티리밍 서비스에 전 앱을 통해 진입할 수 있다. 이 외에 인터넷 라디오도 청취 가능하며, ROON 레디 제품이므로 ROON 사용자라면 별도의 앱 없이 ROON 리모트 컨트롤을 사용하면 그만이다. 다만 이 제품은 ROON 브릿지 역할에 한정되므로 PC, NAS 등을 ROON 서버로 사용해야 한다.

후면을 보면 MP200의 기능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우선 SPDIF 동축 입력 두 조, 그리고 광 입력 한 조를 지원한다. 이더넷 LAN 입력도 당연히 지원하고 무선 WLAN도 지원하므로 랜 케이블 없이 사용도 가능하다. 하지만 가능하면 안정성 측면에서 유선 LAN 세팅을 권한다. 출력의 경우 동축 한 조만 지원한다. 디지털 신호를 받아 디지털로 전송하는 기능만 MP200에 부여하고 실제로 아날로그 신호로 변조하는 과정은 외부 DAC에 맡긴 것이다. 한편 무선 프로토콜은 블루투스를 지원한다. aptX HD 블루투스를 지원하므로, 24bit 고해상도 음원도 무선으로 재생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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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CD 재생을 위한 메커니즘이 좌측 전면에 배치되어 있다. 어떤 메커니즘을 사용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꽤 튼실해 보이는 섀시 안에 고정되어 있는 모습이다. 작동 메커니즘은 슬롯 로딩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트레이가 앞으로 빠져나오는 프런트 로딩 방식이 일반적이고, 가끔 고급기의 경우 제품 상단 CD를 LP처럼 얹어 넣는 탑 로딩 방식도 있다. 그러나 이 기기에선 가장 간략한 방식인 슬롯 로딩 방식을 구현해 별도의 트랙이 없이 슬롯에 직접 CD를 밀어 넣는 식으로 장착 후 감상 가능하다. 참고로 MP200의 전원부는 스위치 모드 전원부를 사용하고 있다. 한정된 섀시 안에 여러 멀티 소스 기능을 모두 탑재하기 위한 방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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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T+A MP200 네트워크 플레이어의 테스트에는 같은 200 시리즈를 동원했다. DAC로 DAC200, 파워앰프는 퓨리파이 아이겐탁트(Purifi Eigentakt) 증폭 모듈을 사용한 M200 모노블록, 그리고 스피커는 오디오벡터의 R3 Arrete 모델을 사용했다. 음원의 경우 룬 Nucleus 룬 코어를 사용해 타이달 음원을 주로 재생하면서 성능 파악에 주력했다. 참고로 테스트 장소는 청담동 소리샵 제2 시청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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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드카 토네프/The moon is a harsh mistress

언제나 그렇지만 T+A는 원래 오리지널 마스터 음원의 정보에 충실하다. Radka Toneff의 목소리는 어떤 조미료도 가하지 않은 청초하고 맑은 그 음색이 또렷하다. 오염되지 않은 이슬 같은 투명도와 함께, 평탄한 중고역 밸런스에 힘입어 정확한 토널 밸런스를 완성한다. 전제적으로 자신의 색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투명하고 싱싱하며, 음원의 특징을 가감 없이 전달해 주는 스타일임을 감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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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탈 챔버랜드/Temptation

풍부한 정보량을 기반으로 하는 네크워크 플레이어는 DA 변환 이후에도 노이즈로 인한 오염, 왜곡 없이 충실한 시간축 특성을 유지한다. 딜레이나 위상 오차가 거의 사라진 이런 특성은 클럭 관리가 제대로 되었을 때 재생되는 소리다. 역동적이며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명확히 살아 있는 싱싱한 사운드가 펼쳐진다. 온도감은 높지 않은 편이며, 어택부터 디테일, 릴리스 등이 매우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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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가바렉/Officium

다시 또 중고역이다. 사실 이 대역에서 디지털 소스 기기의 차이가 가장 예리하게 드러난다. 고조파 왜곡이나 SN비 등의 차이로 인한 배음쪽 오염, 왜곡 현상은 청감상 거의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모범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이른바 착색을 통한 특유의 개성 대신, 마스터에 충실한 레퍼런스 사운드를 택한 T+A의 시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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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데이비스 & 토론토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중 ‘March to the scaffold’

약음으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음량 때문에 처음엔 다른 녹음보다 볼륨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총주 부분으로 치고 올라갈 땐 너무 큰 음량에 깜짝 놀라게 될 정도로 다이내믹 낙폭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역이 터지거나 탈색되어 산산이 부서지지 않는다. 볼륨에 관계없이 충분한 다이내믹 레인지 안에서 모범적인 밸런스, 스테이징을 선보인다.

Anne Sophie Mutter

안네 소피 무터/빈 필하모닉 – ‘Carmen fantasy’

CD 재생은 항상 설렌다. 특히 일반적인 마스터링 음원 외에 특정한 시기에 특정 레이블에서 제작한 버전을 즐기는 색다른 맛이 있다. 이번엔 ‘Direct cut, super master’버전으로 ‘Carmen fantasy’를 재생해 보았다. 트레이가 슬롯 로딩인 것이 좀 아쉽지만, 리딩 속도나 작동 안정성은 훌륭한 편. 확실히 CD 마스터링이 더 힘 있고 중심이 뚜렷하다. 중역에 힘이 실려 진하며, 심지어 중후한 느낌도 배가 된가. 어떤 다른 것보다 소스가 최고의 음향 필수조건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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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T+A가 항상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브랜드의 모토 ‘우리는 사실 과학자들입니다.’라는 문장이 의미하는 함의는 MP200에서 충실하게 표현되고 있다. 특히 이 제품의 의미는 “소리의 출발점”이라는 데에 방점이 찍힌다. MP200의 특징과 성능 테스트를 통해 살펴본 T+A의 사운드는 가장 완벽한 스튜디오 마스터의 구현이다. 착색, 왜곡 등으로 인한 어떤 뒤틀림도 없는 디지털 포맷의 재생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MP200은 T+A라는 독일 디지털 사운드의 심장과 같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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