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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하이엔드 앰프의 레퍼런스

T+A P3100 HV & A3000 H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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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음악이 먼저인가, 아니면 오디오가 먼저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연히 음악이 먼저다. 오디오는 음악을 듣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이 도구는 종종 음악의 감동을 저감시키기도 하며, 때론 음악적 감흥을 증폭시켜주기도 한다. 따라서 음악이 먼저이긴 하지만, 오디오가 충실하게 뒷받침되어주어야 가장 즐거운 음악 생활이 완성된다. 요즘엔 아주 간단한 시스템으로도 음악 듣는 데 문제는 없다. 스마트폰에 이어폰 하나면 자족할 수도 있고, 올인원 스피커로도 고해상도 음원을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거의 무한대로 즐길 수도 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거치형, 분리형 시스템으로 파고들면 여러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사실 ‘어떤 제품을 어떻게 매칭해 시스템을 완성할까?’하는 고민에 빠져있을 때가 가장 행복할 때다. 모두 완성해놓고 나면 다시 무언가 업그레이드하고 싶고, 업그레이드에 만족하고 돌아서면 다시 약점을 찾아내 스스로 고민에 빠지곤 한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교차하는 이 역설적 취미의 유희는 돈이 많이 들어 종종 곤혹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좋은 음질로 나의 가장 소중한 음반을 한 뼘이라도 나아진 음질로 듣고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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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딪히는 난제가 몇 있는데 그중 프리앰프를 들 수 있다. 이는 최근 나 역시 고심을 하게 된 문제 중 하나인데, MSB Analog DAC를 들이면서부터다. 기존에 사용하던 제프 롤랜드 프리앰프를 내보내고 DAC에 옵션으로 내장한 프리앰프를 사용했는데 그 성능이 무척 뛰어났다. 하지만 여러 소스 기기를 운용하는 내게 아날로그 입력은 한 조뿐이었다. 그것도 RCA만 지원했다. 여러 프리앰프를 물색했지만 직결이 더 나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클라세 델타 프리앰프를 들이면서 프리앰프 고민은 일단락되었다. 다양한 RCA, XLR 입력단과 섬세하면서도 작은 볼륨에서 해상도, 다이내믹스 손실이 별로 없는 프리앰프의 존재 이유를 다시 확인했다.

다음은 다즐 프리앰프가 목표지만, 최근 매킨토시 C55 솔리드스테이트 프리앰프와 C2800 진공관 프리앰프를 테스트해 보니 매킨토시가 당기기도 한다. 레퍼런스 프리라면 정말 여러 종류를 경험해 보았고, 지금은 파워앰프보다 되레 프리앰프를 더 중요시하게 된다. 갈수록 스피커로부터 멀어지는 쪽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꼴인데, 바로 소스 기기와 프리앰프, 즉 신호를 받아 볼륨을 감쇄시키고 파워로 전달해 주는 곳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섬세하고 선별과 매칭이 쉽지 않다. 특히 프리앰프는 내겐 마치 뜨거운 감자 같은 것으로 느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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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 P3100 HV 프리앰프

최근 만난 독일 T+A의 P3100 HV 프리앰프는 내게 다시 한번 프리앰프의 존재 이유를 강력하게 설파하고 있었다. 제품을 보자마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건 후면 단자 배치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직업병인지는 몰라도 새로운 모델을 보면 전면보다 후면이 더 궁금한데, 여러 입/출력 단자 이전에 좌/우로 한 개씩 장착되어 있는 전원 인렛이 보였다. 프리앰프 하나에 전원 케이블을 두 개 꼽으라는 의미다. 가까이에서 보니 전원 인렛 중 하나는 아날로그, 나머지 하나는 디지털이라고 표기해놓았다. 내부에서 디지털 프로세싱 기능 조작 등의 회로에 필요한 전원을 따로 분리 공급해 가장 중요한 아날로그 증폭 등 신호 프로세싱에 악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다. 결벽증적인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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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로 시선을 옮기면 좌/우 입력단과 출력단이 완전히 대칭으로 도열해있다. XLR 입력 단이 총 네 조, RCA 입력 단이 총 일곱 조나 마련되어 있어 필자처럼 다양한 소스 기기를 운영하는 사람은 안도할 만하다. 한편 출력은 XLR 및 RCA 각 한 조씩 마련해놓고 있는데, 후면 패널 좌/우 맨 끝에 단자를 마련해놓고 있다. 이런 단자 배치는 나에게 제품 설계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 스테레오 프리앰프 좌/우 채널 입력에서부터 출력까지 모두 독립적으로 설계해 채널 간섭을 극도로 억제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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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P3100 HV는 알루미늄 섀시로 마치 탱크 같은 몸체를 자랑하며, 내부 회로 기판 사이에 두터운 알루미늄으로 구획을 나누어놓았다. 전원 관련 회로를 완전히 하단으로 분리시켰고, 좌/우 모노, 대칭 구조로 설계해놓은 모습이다. 한편 J-FET 트랜지스터를 사용해 차동 캐스코드 증폭 설계를 구현해놓은 모습이다. 네거티브 피드백이 없이도 선형적인 특성을 구현할 수 있는 회로도 및 소자 품질을 완성했다. 입력단, 볼륨 제어 및 출력단 사이 어떤 신호 경로에도 커플링 커패시터를 사용하지 않아 입력된 신호에 대해 착색을 최소한으로 유지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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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000 HV 파워앰프

파워앰프에서도 이러한 T+A 고유의 설계 기조는 동일하다. 이전 리뷰에서 설명했듯 일단 좌/우 완전한 대칭 구조로 기판 자체를 나누어놓은 모습인데, 파워앰프 두 대를 하나의 섀시에 넣어놓았을 뿐 모노블록 파워앰프에 가까운 모습이다. 따라서 좌/우 신호 간섭이 거의 없고 넉넉한 전원부를 통해 각각 전원을 공급받는다. 프리앰프와 마찬가지로 위/아래 격벽 구조로 분리해 전원부가 시그널 증폭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했다. 여러 부분에서 전자 회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절연, 차폐 등에 대해 철저한 회로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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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워앰프는 전압 증폭 및 전류 증폭 모두 포함하고 있다. 전압 증폭 부분은 차동 캐스코드 증폭 설계로 싱글 엔디드, 클래스 A 증폭을 택하고 있다. 여기엔 MOSFET 소자를 사용했다. 이후 증폭 단엔 바이폴라 출력 트랜지스터를 사용해 푸시풀 증폭하는데, 채널당 총 8개를 사용한다. MOSFET과 바이폴라를 각각 서로 다른 역할 분담시켜 활용하면서 엄청난 양의 전류 전달뿐 아니라 가장 순수한 사운드를 얻을 수 있는 회로 구성으로 보인다. 한편 파워앰프엔 시스템 모니터링 회로를 내장해 일정한 작동 온도를 유지하며, 부하 변동과 관계없이 왜곡 제로의 균질한 증폭 성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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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000 HV는 RCA 및 XLR 입력 등 두 조의 입력을 지원하며, 출력 같은 경우 스피커 두 조에 대응하므로 활용도 또한 높은 편이다. 출력은 8Ω 기준 300W, 4Ω에선 500W다. 만일 스테레오로 부족하다면 파워앰프 한 대를 더 추가해 모노 브리지 모드로 세팅, 운용할 수도 있는데, 이때 출력은 8Ω 기준 380W, 4Ω 기준 650W로 증가한다. 더불어 파워앰프에 PS3000 HV라는 외장 전원부를 추가해 업그레이드도 가능하다. 파워앰프에 내장된 전원보다 훨씬 더 높은 대용량 전원부를 갖춘 외장 전원부로서, 그야말로 극한의 성능을 뽑아내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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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T+A P3000 HV 프리앰프와 A3000 HV 파워앰프 시청엔 소스 기기로 동사의 MP3100 HV를 사용했다. 한편 스피커의 경우 부메스터 BC150 모델을 매칭해 테스트를 진행했다. 재생은 ROON을 활용해 타이달에서 재생했으며, 시청은 청담동 소리샵 제1 청음실에서 이뤄졌다. 참고로 부메스터 BS150 스피커는 34Hz에서 20kHz까지 재생 가능한 광대역, 대형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로, AMT 트위터를 전/후로 두 개 사용한 독특한 설계의 스피커다. 감도는 88.5dB로 평균적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공칭 임피던스가 무려 3Ω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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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선 – ‘Cocoon’

부메스터 스피커는 처음 듣는 순간 스피커 자체의 존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음악만 남는다. 스테레오 이미징, 정위감, 입체감이 놀랍다. 한편 소리 자체의 순도가 굉장히 높아 아주 작은 디테일도 누락되지 않는 모습. 피아노는 마치 그 앞에 있는 듯 사실적이며, 보컬인 나윤선의 목소리는 몇 년 전 이 공간에서 있었던 신작 발표회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생생하다. 확실히 전 대역에서 티끌만 한 잡음도 느껴지지 않은 투명한 소리지만, 여기에 더해 고운 입자감과 약간의 온도감까지 더해져 감미로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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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스 트루 스토리 – ‘Can’t Get You Out Of My System’

T+A는 자신의 존재감을 여전히 과시한다. 같은 독일의 하이엔드 브랜드로 쌍벽을 이루지만, 서로 상당히 다른 음색을 가진다. 부메스터는 마치 현장의 그것처럼 싱싱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여기에 T+A는 탄탄한 중, 저역을 바탕으로 약간의 온기와 탄력을 추가한다. 관악은 섬광처럼 반짝이지만 결코 탈색될 정도까진 흐르지 않고, 마치 그 황금빛 표면이 눈에 비칠 듯 광채가 흐른다. 정말 고급스러운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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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카 누다 – ‘Come Together’

굉장히 크고 깊은 몸체의 BC150 스피커는 자칫 저역 과잉이 걱정될 수 있는데, 컨트롤하는 힘과 제어력이 제법이다. 부메스터엔 부메스터라지만 T+A의 스피커 장악력은 또 다른 면에서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단순히 찍어 눌러 압착한 저역이 아니라 적당히 조율된 저역. 이에 포근하고 찰진 중역대가 얹어져 힘과 질감을 양립한 모습이다. 확실히 3Ω짜리 스피커의 저역 제어는 쉽진 않지만, T+A는 주눅 들지 않고 베이스의 낮은 현들을 튕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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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체코 필히모닉 오케스트라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

피아니시모부터 포르티시모까지 전체 강약 세기 표현 반경이 매우 넓은 편이다. 스피커 덕분도 있지만, 이런 다이내믹 콘트라스트가 이 정도로 넓게 표현되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악기가 모형이 아닌 실제 거기에 있는 듯한 실체감이 최고조로 증폭된다. 맑은 지하수처럼 투명도를 유지하면서도 너무 차갑지 않은 것은 자연스러운 엔벨로프 특성 덕분일 듯. 스피커의 특성에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은 확실히 뒷받침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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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T+A의 제품들을 하나하나 테스트하고 리뷰해나가면서 가장 돋보이는 점 첫 번째는 균질함이다.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서로 약간 상이한 음색이 발견되기도 하며 가격대에 따라서 성향이 꽤 차이가 나기도 하는 경우가 있지만, T+A는 정말 정밀하게 설계와 QC를 일관적으로 가져가는 브랜드다. 두 번째는 가격과 등급에 대한 신뢰도다. 어떤 기기라도 그 가격대와 라인업의 위치에 따라 성능 차이가 확실히 갈리며,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정확히 올라간다. 특히 HV 시리즈는 플래그십으로서, 하위 모델에선 도달하지 못하는 성능을 구가하며 T+A의 기술력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이보다 더 화려하고 더 강하며 더 값비싼 앰프도 많다. 하지만 이보다 더 안정적인 작동과 함께 질리지 않고 오래 사용할 만한 제품은 흔치 않을 듯하다. 보고 만지고 들어보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분리형 앰프는 부메스터와 함께 독일 하이엔드 앰프 레퍼런스의 반열에 올려도 될 법하다.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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