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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하이엔드 앰프의 총아

버메스터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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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푸른 나무처럼

최근 여러 굵직한 브랜드에서 40주년 혹은 50주년을 맞이하면서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자축 또는 헤레티지의 강조를 통한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이겠지만 브랜드 내외적으로 이런 이벤트가 선사하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리고 다각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분명히 있다. 최근 출시되는 애니버서리 모델의 경우 그 옛날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모델들이 등장한다. 때론 곁에 두고 오랫동안 다양한 음악으로 애호가들을 울고 울렸던 추억의 명기들에 대한 헌정이랄수도 있지만 그저 애정에 대한 자기표현으로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다. 겉만 당시 디자인이고 사실 내부 디자인은 당시 설계와 흔적도 사라지고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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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는 그 로망과 같았던 레전드 모델들이 그대로 복원되어 눈앞에 나타나면 어떨지 꿈을 꾸곤 한다. 예를 들어 시대를 호령했던 마크 레빈슨의 프리앰프와 파워앰프들, 클래스 A 증폭에 대출력을 구사하던 무소불위의 크렐, 어떤 잡티도 보이지 않은 듯 아름다운 물결무늬 섀시처럼 검은 배경의 제프 롤랜드 앰프들 말이다. 때론 SACD 포맷의 탄생을 천명하면서 포맷을 개발한 소니 스스로가 레퍼런스로 만들어낸 SCD-1 같은 제품이 신품으로 동일하게 다시 생산된다면 어떨까? 이젠 오랜 시간 동안 늙고 병들어 제 성능을 못 내고 사그라드는 와중에 있는 명기들에 대한 작별을 고하긴 왠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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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이라는 모델명을 달고 나온 버메스터도 그 중 하나다. 이 파워앰프는 보자마자 명기로 기억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렸을 때지만 911이라는 이름부터 멋있었다. 지금 이 모델명을 이야기하면 포르쉐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내게 911이라는 숫자는 다른 무엇도 아닌 버메스터 파워앰프의 모델명일 뿐이다. 깍아지른 날렵한 금속 디자인에 도도하게 반짝이는 헤어라인 그리고 무엇보다 근육 위에 핏줄이 일어서는 듯 음악의 핵과 골격을 정확히 짚어주어 증폭해주던 그 기품과 기개가 그립다. 늘 푸른 나무처럼 거기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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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프로젝트

나의 바램은 그저 꿈이 아니었다. 버메스터는 911을 단종시키지 않았다. 단지 몇 주년 기념으로 리이슈하는 형태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 버메스터는 자신들의 이 위대한 파워앰프 911을 생산 중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911을 대체할 후속기를 개발하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버메스터 자체적으로 이 모델을 대체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아니, 무엇보다 설립자인 디터 버메스터가 모든 것을 바쳐 만들었던 911 파워앰프의 정신과 사운드 시그니처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 아닐까?

159 cover

대신 버메스터는 새로운 세대를 이끌 레퍼런스 파워앰프를 개발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바로 159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 파워앰프는 모노블럭 파워앰프로서 911 시절의 설계 및 디자인 그리고 음향적인 특성에서도 또 다른 버메스터의 DNA를 만들어가는 여정이었다. 각종 부품과 장착 기술 및 시그널 전송 방식, 다른 메이커에선 흉내낼 수 없는 버메스터만의 설계 기법 등은 159 프로젝트를 통해 한 세대 진보되는 산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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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파워앰프

베메스터는 911 파워앰프를 단종 시키지 않고 현재 911MK3까지만 진화시킨 상태다. 그리고 새로운 DNA를 탄생시켰으면 그 창조물은 159 프로젝트로 귀결되었다. 플래그십 파워앰프의 탄생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이후 라인업의 산파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패밀리를 만들어간다. 159 프로젝트 이후 버메스터는 216과 218이라는 또 하나의 걸출한 파워앰프 형제를 완성했다. 159 파워앰프를 개발하면서 얻은 새로운 기술과 함께 이전 세대에서 더욱 가다듬은 튜닝은 새로운 패밀리 룩을 완성했다.

218의 외관을 보면 과거와 유사한 아웃라인을 보이지만 세부적으로는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다. 좌/우 방열판의 경우 단순히 열을 방출하는 역할 뿐 아니라 전체 디자인에 있어 연장선에 있는 모습이다. 상판의 경우 어디를 보아도 나사 하나가 보이지 않는 구조로 커다란 버메스터 로고가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후면을 보면 조임식 스피커 출력 단자가 하단에 나란히 우치하고 있으며 중아에 전원 인렛 및 전원 스위치가 보인다. 입력은 오직 XLR입력만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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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과 218은 전반적으로 거의 동일한 설계구조와 만듦새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상위급답게 218은 더 큰 몸집과 함께 한층 더 높은 출력 그리고 스피커 대응력을 갖추었다. 159 모노블럭 파워앰프의 파생작인만큼 다양한 부분들에서 상위 모델의 기술을 아낌없이 물려주고 있는 모습이다. 우선 클래스 A 입력 설계에 좌/우 대칭 설계 구조를 취한 모습이다. 한편 입력단은 DC 커플드 설계다.

DC 커플드는 ‘Direct-Coupled’를 뜻하는 것으로 입력단에 일체의 커패시터를 사용하지 않는 설계다. 입력단의 커패시터는 DC 입력을 막아주는 등 장점도 있지만 음질적인 측면에선 소리의 순도를 낮추고 왜곡을 일으키는 주범으로서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생략해버릴 경우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버메스터는 입력 커패시터의 단점을 상쇄시키면서 음질적 이득만 취하는 DC 커플드 회로를 완성해 적용하고 있는 모습으로 순전히 음질만을 위한 순수한 설계 철학이 엿보인다.

버메스터 218 파워앰프는 기본적으로 스테레오 파워로서 8옴 기준 채널당 165와트 출력이다. 동생 모델 216이 100와트인 것에 비해 훨씬 높은 출력이다. 하지만 요즘 출시되는 하이엔드 파워앰프들이나 클래스 D 앰프에 비하면 작은 출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정도 출력만 해도 가정용 스피커 드라이빙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4옴 기준 채널당 275와트, 2옴에선 400와트 출력을 자랑한다. 2옴이라면 앰프 입장에선 상당히 곤혹스러운 부하가 걸리는 상황으로 이러한 상황에서의 출력까지 공개한 건 버메스터의 자신감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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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이번 시청엔 윌슨 베네시 Resolution 스피커를 사용했다. 메머드급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로서 개인적으로 윌슨 베네시 플로어스탠딩 스피커 중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스피커다. 이 외에 프리앰프의 경우 T+A P3000HV, 소스 기기로는 MP3100HV를 사용했다. 본래 버메스터는 자사의 프리앰프, 특히 808 프리앰프와 매칭이 정석이지만 T+A와 매칭도 좋은 상성을 보여주었다. 한편 케이블은 실텍 위주로 세팅했고 청음 공간은 청담동 세헤라자드 제 1 시청실에서 진행했음을 밝힌다.

lara alice sara ott

버메스터 218은 내가 듣던 과거 911과 많은 부분 공유하는 면들이 있지만 또 많은 부분에서 색다른 음향적 체험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앨리스 사라 오트가 연주한 쇼팽의 ‘12 etudes’를 들어보면 잔잔하게 물방울리 파장을 일으키다가 이내 우박 같은 얼음이 떨어지는 듯 강력한 어택을 선보인다. 강, 약 구분이 명료하며 그 대비가 매우 명료해 군더더기 없이 맑고 깨끗한 재생음을 선보인다. 어떤 스피커도 자신만의 다이내믹스, 앤벨로프 특성대로 조율해내는, 개성 강한 앰프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dominique

일시적으로 매우 낮은 임피던스 하강 곡선을 그리며 커다란 파워를 요구하는 스피커, 또는 커다란 스케일과 다이내믹 스윙이 필요한 사람들. 그들은 저출력의 고순도 앰프보단 순도가 떨어지더라도 대출력의 광대역 앰프를 원한다. 그러나 순도 면에서 하락을 면치 못하는 앰프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면 버메스터 같은 앰프가 있다. 버메스터는 단순히 커다란 스케일과 쿵쿵거리며 힘만 내세우는 앰프가 아니다. 도미니크 피스 아이메의 ‘Birds’를 들어보면 낮음 음량이나 커다란 음량 모두에서 다이내믹스나 음결 훼손 없이 끝없이 확장된 마스터 음원의 본질과 만나게 된다.

fourplay

음량이나 임피던스 증감에 따른 성능 편차가 적다는 것은 내부 시그너 전송, 증폭 회로 뿐 아니라 전원 품질이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수십와트 출력의 하이엔드 앰프가 수백와트 출력의 염가형 앰프보다 되레 저역 드라이빙 능력이 뛰어난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버메스터는 적당한 출력에 넉넉한 전원부 및 각 신호 전송부의 핵심 부위에 대한 섬세한 설계를 통해 순도와 힘 그리고 스피드를 더했다. 예를 들어 포플레이의 ‘Tally ho!’처럼 리듬 패턴이 변화무쌍한 곡에서도 허둥대는 모습 없이 민첩하고 정확하게 힘을 분배한다. 되레 신나는 곡이 너무 진지하게 들릴정도로 엄숙하게 윌슨 베네시를 제어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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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헤레베헤 지휘로 듣는 모차르트 ‘Requiem’에선 대편성 레코딩에서 각 성부의 분리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버메스터의 서포트를 받은 윌슨 베네시 Resolution은 한층 더 세분화된 정위감을 선보였다. 각 악기와 보컬을 막론하고 정위감을 극도로 끌어올려 각 존재의 실체를 보다 뚜렷하게 청자에게 알려주었다. 서서히 고조되는 분위기는 마이크로 다이내믹스 표현으로 인해 더욱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했다. 특히 정위감 표현에 있어 무대의 전/후 깊이 표현이 인상적인데 겹겹이 애워싼 성부가 명확한 거리를 두고 레이어링을 형성해 현장감을 북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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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버메스터의 알파와 오메가는 내게 있어 여전히 808 프리앰프와 911 파워앰프다. 공학과 예술의 완벽한 조화를 완성한 초기 하이엔드 앰프의 교과서 같은 앰프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마크 레빈슨, 크렐, 제프 롤랜드 혹은 스위스의 골드문트 사용자조차도 버메스터의 저 서슬 퍼런 아성 앞에선 별다른 말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아마도 버메스터가 저 두 개 모델을 단종시킬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며 실제로 디터 버메스터가 생전에 더 진보시키지 못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519 프로젝트를 통해 버메스터는 한 번 더 진화했다. 911 파워앰프 같은 경우 매우 엄격한 버메스터 제작 기술과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독보적인 사운드 스펙트럼을 완성했지만 진공관 앰프 추종자들까지 흡수할 종류의 앰프는 아니었다. 강건하고 빠른 솔리드스테이트 앰프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216, 218을 들어보면 작금의 버메스터는 더 균형 잡힌 밸런스와 더 세련된 음색, 그리고 종국엔 음악성이라는 표현까지도 어울리는 앰프로 진화해 있었다. 그리고 공간 표현에 있어서 218을 듣다가 구형 911로 돌아가는 것은 마치 새로 맞춘 안경에서 이전의 안경을 쓰는 것과 비교할만하다. 218은 현대 하이엔드 앰프의 총아 버메스터의 역작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TECHNICAL DETAILS

Device type Dual-channel power amplifier
Weight 42 kg
Width 496 mm
Height 216 mm
Depth 479 mm
Voltage ranges (Model 218-240) 230 – 240 V~, 50/60 Hz
Voltage ranges (Model 218-220) 220 V~, 50/60 Hz
Voltage ranges (Model 218-120) 110 – 120 V~, 50/60 Hz
Voltage ranges (Model 218-100) 100 V~, 50/60 Hz
Power consumption STBY (230 V) 0,46 W
Output power stereo (IEC 62368-1) at 2 Ω 400 W
Output power stereo (IEC 62368-1) at 4 Ω 275 W
Output power stereo (IEC 62368-1) at 8 Ω 165 W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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