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 조개 스피커로 유명한 바워스앤윌킨스(B&W)의 Nautilus. 이 스피커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은 디자인이 예쁜 스피커 정도일 것이다. 마치 미술관에나 있을 법한 조형 작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설계를 분석해보면 Nautilus는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의 시금석이 될만한 것이다. 이 모델이 출시된 시점을 보면 정말 놀랍다. 1993년으로 이미 3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로 적어도 인클로저 설계에서 이보다 더 진보한 것은 없어 보인다.
최근 롯데 백화점에 이 스피커가 설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튜브 촬영 의뢰가 있어 가보았는데 의문점이 많이 해소되었다. 실제 보고 잠시 들어본 게 꽤 오래 전이지만 지금 보아도 전혀 구태한 이미지가 없다. 지금 바로 신제품으로 출시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만큼 진정 앞서간 디자인이다. 우퍼 옆쪽으로 동그랗게 말아 돌아간 모양부터 시작해 상위 유닛의 후방으로 길게 뻗은 튜브 디자인 등 Nautilus는 바워스앤윌킨스를 그 전과 그 후로 나눈 스피커답다.
하지만 아름다운 오브제 같은 디자인과 달리 이 스피커는 현대 하이파이 음향이 추구하는 극단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모습이다. 채널당 네 개의 유닛이 각각 별도의 4채널 앰프를 필요로하며 페어이므로 무려 8채널을 필요로 한다. 스테레오 파워라면 네 대, 모노블럭으로 구성한다면 네 조, 즉 여덟 대의 파워앰프가 필요하다. 프리앰프에서 출력된 신호를 파워앰프로 바로 받아 증폭하는 게 아니라 그 중간에 액티브 크로스오버를 셋업해 각 대역을 담당하는 유닛에 한정적인 대역폭의 신호를 분할, 전송한 후 증폭해 주어야한다.
이번엔 파워앰프만 모노 블록 파워앰프로 매칭하고 트위터엔 스테레오 한 대로 좌/우 채널을, 스테레오 파워 두 대를 각 채널의 어퍼 미드, 로워 미드레인지 유닛에 매칭해 테스트했다. 모든 대역을 하나 또는 두 대의 모노블럭으로 드라이빙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해상력, SN비를 보여줄 수 있는 구성이다. 매지코도 최상위 모델 M9에 이런 설계를 했고 과거 JBL도 전성기엔 이런 모델을 내놓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설계로 상용품을 내놓은 것은 바워스앤윌킨스가 내가 아는 한 최초다. 궁극의 이상적 설계는 멀티앰핑이며 스피커 디자인에서 이미 황금비율을 적용해 회절, 정재파 등에 대응한 점 등 여러 면에서 대단한 스피커다.
흥미로운 건 모두 알루미늄 진동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 이미 바워스앤윌킨스는 Nautilus 출시 이후, 다이아몬드 트위터 및 케블라, 컨티늄, 에어로포일 등 다양한 진동판을 각 주파수 대역을 담당하는 유닛에 최적화시켜 진화시켜왔다. 하지만 여전히 Nautilus는 1993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럼 3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이 진동판이 내주는 소리는 설득력이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되레 신선하고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공식 리뷰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아무튼 최근 몇 년간 경험했던 사운드 중 가장 충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