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하이파이 오디오 박람회가 열린다. 겨울에 한 번 그리고 봄에 한 번 등 두 번이다. 대체로 이런 박람회는 코엑스 등 대형 부스가 준비된 곳에서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러 문제가 많다. 다른 박람회와 달리 공간의 음향 특성이 소리에 영향을 많이 주는 오디오 박람회는 코엑스 같은 공간에서 좋은 소리를 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참가 업체들은 어쿠스틱 룸 튜닝 음향자재를 공수해서 설치하곤 한다.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수개월에서 1년에 걸쳐서 룸 튜닝을 해도 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하루 이틀 안에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건 쉽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호텔이라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아무래도 우리네 거주 공간과 비슷한 사이즈와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 넓지 않으므로 불규칙한 반사, 잔향이 코엑스 같은 곳보단 좀 덜한 편이다. 공간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음향 자재를 조금만 설치해도 꽤 많은 음질 향상이 있다. 물론 너무 큰 대형기로 좋은 소리 만들긴 쉽지 않고 작은 공간에선 저역 부밍이 생길 소지도 많다. 일장 일단이 있다. 그러나 음질만 놓고 볼 땐 단점보단 장점이 더 많은 듯하다. 나 또한 평소 음악 듣고 하드웨어 테스트하던 집을 떠나 상대적으로 넓은 시청실 공간 튜닝하면서 상당히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이번 KALS 2024 오디오 박람회는 그런 면에서 호텔이라는 공간이 나름 마음에 들었다. 해외 오디오 박람회도 대체로 호텔에서 열리는 이유가 있다. 복도가 비교적 좁고 방도 좁다 보니 관람객들이 이동하기엔 약간 불편한 점도 있을 수 있지만, 그보단 음질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큰 공간에서 진행하면 관람객들은 편리할 수 있지만 반대로 참가 업체들은 공간을 채워 소리 만들기가 힘들다. 더불어 코엑스 같은 곳에서 열리는 경우 참가료가 상당히 부담되는 거로 알고 있다. 이번 KALS 2024는 참가 비용도 비교적 합리적인 선에서 결정되어 두두오에서 개최하는 첫 번째 박람회지만 참가 업체들의 만족도가 높았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바워스앤윌킨스 부스에서 3일 내내 음악 선곡과 시연을 진행했다. 코엑스에서 진행할 땐 시간을 정해 강연을 두, 세 번 했는데 이번엔 오직 선곡과 시연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은 면도 있었다. 물론 선곡을 해도 해도 끝없이 목마르다 보니 되레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다. 특히 선곡은 상당히 힘든데 곡 자체는 좋지만 녹음이 좋지 못한 경우, 녹음은 뛰어나지만 음악이 별로인 경우 등 다양하다. 과거엔 클래시컬이나 재즈를 듣는 동호인들이 많았지만 최근 오디오쇼 관람객들의 경우 취향이 대중적이어서 최대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드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적절한 다이내믹레인지를 고수해 잘 녹음한 해외 음원을 틀다가 게인만 잔뜩 키운 국내 가요를 재생하면 갑자기 볼륨이 높아져 곤혹스럽곤 했다. 그래서 항상 리모컨을 들고 곡에 따라 그리고 청취하는 관람객의 숫자에 따라서 미세하게 조종하면서 시연했다.
이런 박람회의 의미는 관람객의 앵글에서 볼 때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평소 쉽게 접하기 힘든 초고가 오디오의 소리를 직접 보고 들어보는 것이다. 금액은 차치하고 정말 꿈의 오디오를 보고 듣다 보면 정말 좋은 소리가 무엇인지, 이런 오디오의 가치를 왜 좇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곤 한다. 또 하나는 실제로 구매할만한 예산 안에 있는 제품을 한자리에서 다양하게 접해볼 수 있어 선택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된다면 가장 유익한 박람회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러자면 일단 크기가 다양한 공간들이 있어야할 테고 기본적인 음향 특성이 나쁘지 않아야 한다. 업체들에 대한 참가료도 합리적이어야 이 분야 특성상 자그마한 메이커들도 부담 없이 많이 참가해 다양성을 충족시켜주고 다양한 볼거리, 들을 거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아무튼, 이번 박람회는 처음 치곤 꽤 여러 면에서 알찬 행사가 된 듯하다. 기본적으로 호텔이다보니 방음이 어느 정도 잘 되어 있어 부스 사이 소음 간섭이 거의 없었고 가정과 비슷한 구조가 공감을 주기 충분했다. 내가 알기론 여타 오디오쇼에 비해 업체들의 참가비도 합리적이었던 듯했다. 시연자 입장에선 공간이 아늑하고 조용하다 보니 시연을 진행한 나조차도 3일 동안 정말 집중해서 음악을 듣고 소개할 수 있었다. 다만 시연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부스 구경을 거의 못 해본 게 아쉽긴 했다. 내년에는 더 성황리에 개최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