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킹 크림슨의 ‘소리에서 침묵으로’라는 평전이 나왔다. 나 또한 어린 시절 프로그레시브 록에 심취한 적이 있어서인지 나이가 들어도 종종 꺼내 듣는 앨범이 꽤 있는데 이제까지 국내에선 평전이 없었다. 평전의 출간 자체가 아쉬웠던 차에 정말 반가운 마음이 앞서 펀딩에 참여해 받았다. 책 두께는 벽돌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한 볼륨을 자랑한다. 책을 써본 사람이라면 이런 두께의 책을 쓴다는 게 얼마나 많은 고난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안다. 일단 펀딩 후 받아보니 디테일이나 역사적 맥락, 음악적 분석과 고찰 등이 충실하다.
게다가 출간을 기념에 내 시청실에서 출간 기념 저자 강연을 열었다. 오디오 홍보를 위한 시청회는 많지만 대개 음질에 대한 관심뿐이고 정작 중요한 음악 중심의 강연은 요즘 들어 거의 없는 편. 대관료 이런 거 없이 저자에게 강연 장소를 내주었다. 소수만 모여, 약 여섯 분만 신청 받아 진행했다. 학교 다닐 때는 음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2주에 한번, 때론 1주일에 한 번씩 만나 이런 음악 감상회를 하곤 했는데 간만이 음악 감상회라니 감회가 남달랐다.
사실 저자와 친분이 있어서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익힐 알고 있었지만 애정만 가지고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실제 강연을 들어보니 킹 크림슨을 제법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나조차도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초창기 자일스, 자일스 & 프립 시절부터 이언 맥도널드, 주디 다이블 등 다양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유명한 충격의 1집에 관한 이야기는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무디 블루스의 영향을 받아 이언 맥도널드의 멜로트론 도입, 피터 신필드의 이야기 등이 이어졌다.
이어 거의 1집과 쌍둥이 같은 2집의 이야기와 3집 ‘Lizard’, 그리고 킹 크림슨의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Island’는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기도 했다 리바이벌오디오 Atanlante 5로 다시 들어보니 예전에 듣던 소리와 또 달라 흥미로웠다. 사실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이후 ‘Larks’ tongues in aspic’으로부터 ‘Red’까지 이어지는 킹 크림슨의 음악 이야기다.
핑크 플로이드가 블루스 록 기반이라면 킹 크림슨은 재즈 기반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더불어 종종 클래시컬 음악의 형식과 악기 활용 그리고 록과 아방가르드, 때론 헤비메탈 등 굉장히 다양하고 깊은 음악적 스펙트럼은 킹 크림슨의 매력이다. 강연 중 마지막으로 ‘Discipline’의 수록곡 ‘Elephant talk’ 같은 곡을 들어보면 1981년이라는 시대적 음악 흐름을 외면할 수 없다. 저자의 말대로 토킹 헤즈 같은 밴드의 음악이 연상되기도 했다.
이후 130인치 스크린을 내려 유튜브에서 영상 두어 개를 감상했다. 특히 도쿄에서 있었던 라이브 실황 영상은 나 또한 몇 번이나 감상해본 것인데 다시 봐도 흥미롭다. 드럼을 무려 세 대나 투입하고 그것도 전면에 배치해놓는 구성은 기발하다. 처음엔 서정적인 울림으로 시작하지만 조금씩 소리의 벽을 쌓아올리면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구조미는 현장 녹음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절대 영상 녹화를 허용하지 않는 그들이지만 영상미도 꽤 뛰어난 편이다. 이 영상을 보다가 서브우퍼를 두 대 놓으려고 했다가 포기한 생각이 나기도 했다.
이번 킹 크림슨 강연의 의미는 저자는 물론 내게도 남달랐다. 음악이 있고 그 다음이 오디오인데 오디오에만 너무 몰입되어 있는 나와 이 분야에 대해도 반성이 되기도 했다. 수백만 원대 오디오 액세서리 홍보를 위한 시청회나 그런 건 종종 열리지만 정작 음악에 대한 고찰은 전무한 행사들을 자주 본다. 그런 곳에 투자할 돈이 있지만 정작 음악은 월 만 원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요금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오디오파일이라는 게 씁쓸하기도 하다. 과연 뭐가 더 중요한지 자기 각성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불현 듯 이런 음악 감상회를 가끔이라도 열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