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음악과 오디오
평일 저녁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집에 도착하면 아홉 시가 넘기 일쑤다. TV를 볼 시간도 없이 PC를 켜고 유튜브를 조금 보다가 라디오를 듣거나 혹은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기도 한다. 작은 책상 한편에 놓인 북셀프 스피커 하나와 올인원 앰프 하나면 그 곳이 천국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로운 일요일, 늦게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 TV를 켜고 ‘출발, 비디오여행’을 보면서 영화 프로그램을 검색하곤 한다. 네트워크 앰프에 스피커 하나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결국 저녁에 극장 예매를 했다. 영화 ‘승부’가 개봉했기 때문이다.
그저 가장 보통의 우리가 사는 일상과 그 한편에 필요한 것은 그저 한 조의 스피커와 최근 발매된 윔 앰프 같은 네트워크 앰프 하나 정도다. 최근 이런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는 스피커를 발견했다. 다름 아닌 스위스 피에가에서 출시한 ACE 시리즈로, ACE 30 북셀프 스피커와 ACE 50 플로어스탠딩 스피커가 그 주인공이다.

피에가 그리고 리본
피에가의 역사는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오 그르트 쇼이프가 설립했는데 피에가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주름’을 뜻한다고 한다. 유추해보면 피에가는 그 설립 동기에 리본 트위터를 통한 혁신적인 스피커 제작과 관련이 있다. 리본 트위터의 그 얇은 주름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피에가 사운드의 시그니처 중 하나가 리본이라면 또 하나는 알루미늄 인클로저다. 지금이야 매지코나 YG 어쿠스틱스 등 여러 하이엔드 스피커 메이커가 알루미늄을 적극 사용하면서 인기를 얻고 있지만 피에가가 알루미늄을 사용한 건 오래 전 1990년대였다.

피에가의 리본 트위터는 매우 얇고 가벼운 금속 다이어프램을 사용한다. 이 다이어프램엔 보이스 코일이 들어가 있어 별도의 콘이나 돔 없이도 소리를 낸다. 이 다이어프램을 네오디뮴 자석 사이에 위치시켜 전기 신호가 흐르면 플레밍의 왼손 법칙에 의해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게 된다. 이런 방식은 일단 다이어프램을 일반적인 돔 트위터보다 50배 이상 가볍게 만들 수 있어 응답 속도가 빠르다. 더불어 왜곡이 적으며 특히 빠른 응답 특성은 파장이 짧은 고역 재생에 강점이 많다. 트위터의 형식으로 제격이다. 한편 알루미늄은 잘 만들면 이전 세대의 목재에 비해 공진에 강하다는 강점이 있다. 드라이브 유닛에서 방사되는 에너지를 저장하거나 진동하는 현상을 줄여 왜곡, 착색을 최소화할 수 있다. 피에가는 시작부터 앞서갔다.

ACE 30과 ACE 50
피에가의 상위 모델을 보면 리본 트위터에 더해 그만큼 빠르고 강력한 피스톤 운동이 가능한 우퍼를 결합했다. 한편 COAX 라인업으로 가면 리본의 역할을 확장시킨 리본 동축 유닛이 등장한다. 하지만 리본 트위터는 그 성능만큼이나 제조 공정이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든다. 스피커 가격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위 모델에선 리본 대신 AMT 트위터를 사용해 제작 단가를 낮추되 그 외 부분들에선 공통적인 설계 공식을 따라 가격 대비 성능을 높이고 있다. 기존에 T Micro 시리즈가 그 증거인데 최근 이를 잇는 라인업 ACE가 등장했다.

최근 만난 ACE 시리즈는 ACE 30과 ACE 50 스피커다. 하나는 북셀프, 나머지 하나는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로서 각각 작은 방이나 데스크톱 환경 혹은 거실 스피커로 제격이다. 기본적으로 두 스피커 모두 좁은 전면 배플에 더해 날씬한 몸매 등 마니아가 아닌 일반 대중들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더불어 설치 시 공간을 크게 차지 않으므로 아파트는 물론 원룸, 오피스텔에도 제격일 듯하다.

일단 두 스피커 모두 AMT-1이라는 트위터를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본 스피커 중 오디오벡터나 부메스터 혹은 핑크 팀의 스피커에서 사용한 그 AMT 트위터 계통이다. AMT는 오스카 하일 박사가 곤충의 고속 날갯짓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일종의 트위터 형식으로 여러 메이커에서 이 형식을 빌려 제작하고 있다. 피에가에서는 AMT-1을 리본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정확히 이야기하면 리본 트위터와 다른 원리를 갖는다.

AMT는 주름진 필름 다이어프램에 알루미늄을 새기고 이를 강력한 자기장 안에 배치한다. 여기까진 리본과 비슷해 보이지만 전기신호가 흐르면 다이어프램이 마치 아코디언처럼 수축, 확장하면서 공기를 좌우로 밀어내면서 소리를 낸다. 리본보다 제작 난이도와 비용은 낮지만 유사한 음향적 효과를 낼 수 있기에 현대에 와서 리본보다 더 인기를 얻고 있다. 물론 리본만큼 극단적인 고역 확장과 해상도를 얻긴 힘들어도 가청 영역에서 좀 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기도 한다.

미드 우퍼와 베이스 우퍼는 ACE 30과 ACE 50이 다르다. ACE 30은 120mm MDS 우퍼 하나를 채용했으나 ACE 50은 미드 우퍼에 MDS 하나, 그리고 베이스 우퍼에 MDS 두 개를 채용하고 있다. 각각 2웨이 2스피커, 저음 반사형 북셀프 그리고 3웨이 4스피커, 저음 반사형 플로어스탠딩 형태다. 당연히 주파수 응답 특성도 다른데 ACE 30은 최저 50Hz, ACE 50은 최저 45Hz가 한계며 고역은 동일하게 40kHz까지 뻗는다. AMT 덕분이다. 한편 공칭 임피던스는 둘 다 4옴이지만, 감도는 각각 87dB, 90dB로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인 ACE 50이 3dB나 더 높다. 앰프 입장에서 저역 제어가 쉽다는 의미다.

청음
이번 테스트는 나의 전용 시청실에서 진행했다. 스피커는 ACE 50을 사용했으며 여타 제품은 평소 사용하던 제품들을 활용했다. 웨이버사 Wcore를 룬 서버로 사용하고 오렌더 A1000을 네트워크 렌더러로 사용, USB 출력을 반오디오 Firebird MK3 Final Evo와 연결해 사용했다. 앰프는 캘릭스 I 인티앰프를 사용했음을 밝힌다.

다이애나 크롤 – I’ll see you in my dreams
가장 먼저 들려오는 건 역시 중고역이다. 저역은 작은 우퍼로 낮고 빠르며 간결하게 표현하고 고역에 AMT 평판을 투입해 심플하면서도 섬세한 사운드를 목표로 한 듯하다. 역시 빠르게 날아와 꽂히는 중고역 근처의 기타, 피아노는 명료하고 방향성이 뚜렷하다. 그러나 횡으로 넓게 흩어지는 소리 입자는 절대 귀를 피로하게 만들지 않는 모습이다. 장시간 들어도 좋을 소리다.

샤데이 – Smooth operator
통통 튀는 리듬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아주 높은 압력이 느껴지는 리듬이 아니라 가볍고 순발력 좋은 리듬감이다. 전반적인 대역 균형은 살짝 올라와있는 편으로 어떤 중압감 없이 술술 흘러나오는 소리가 사방에 자연스럽게 울려 퍼진다. 무척 가벼운 소재의 리본 트위터는 지저분한 잔상을 남기지 않고 빠르고 깨끗한 여운을 남기지만 AMT는 차갑지 않고 온기가 있는 편이다.

제프 카스텔루치 – Sixteen tons
악기의 포커싱은 또렷한 편이다. 어떤 음악을 들어도 뒷맛이 개운하면 자연스러운 에너지의 균형이 느껴져 자극적인 맛이 없다. 다이내믹 헤드룸이 충분히 느껴지므로 쥐어짜는 느낌 없이 술술 자신의 소리를 내지른다. 저역은 속도가 마르고 해상도도 좋지만 양감이 크진 않다. 애초에 ACE 시리즈의 설계 콘셉트로 유추된다.

조성진/유럽 챔버 오케스트라 –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20번, 1악장
피에가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Coax 시리즈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리본보단 AMT가 해상력은 조금 빠지지만 약간 더 부드럽고 종종 달콤한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다른 일을 하면서 음악을 틀어놓고 즐기기 좋은 스피커지만 어느 대목에선 갑자기 귀에 걸리는 소리들이 있다. 달콤하고 예쁜 소리가 공간을 구석구석 섬세하게 메워주는 덕분이다.

총평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사실 음향적으로 매우 열악하다. 스피커 제작사 혹은 해외 평론지에서 발표하면서 홍보하는 주파수 특성이나 시간축 임펄스 응답은 무지향 혹은 많이 양보하더라도 음향적으로 잘 튜닝된 공간이다. 실제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곳에서 그런 음향 특성을 얻기 위해 우리는 때로 전문 음향 자재를 벽에 설치하고 때론 디락 라이브 같은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아 주파수 특성을 다듬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래 스피커의 특성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금속 돔 트위터가 소프트 돔 트위터로 변하지 않으며 BBC 모니터가 갑자기 금속 인클로저의 매지코가 되지도 않는다. 사실 일상의 주변은 적당한 타협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피에가는 수천, 수억 원대 하이엔드 스피커를 만드는 브랜드지만 종종 그 기술을 하늘이 아닌 땅으로 내릴 때가 있다. 그 결과물이 ACE 시리즈다. 책상 위, 혹은 작은 서재에선 ACE 30을, 거실의 TV 옆엔 ACE 50이 제격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피에가 ACE 30
- 트위터 : AMT-1
- 미드/베이스 우퍼 : 120mm MDS
- 주파수 응답 : 50Hz – 40kHz
- 공칭 임피던스 4옴, 감도 87dB
*피에가 ACE 50
- 트위터 : AMT-1
- 미드 우퍼 : 120mm MDS
- 베이스 우퍼 : 120mm MDS-B x 2
- 주파수 응답 : 45Hz – 40kHz
- 공칭 임피던스 4옴, 감도 90dB
제조사 : PIEGA SA (스위스)
공식 수입원 : ㈜ 샘에너지
공식 소비자가
Ace 30 – 1,860,000원
Ace 50 – 3,50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