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본 라멜라가 빚어낸 순수한 파동
한 동호인의 집이었다. 온라인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던 시절이었다. 대체로 거실에 오디오를 세팅해놓고 즐기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유독 나의 눈을 잡아끌던 시스템 사진을 발견했다. 해외 생활을 오래 한 듯한 주인장은 방 안에 온갖 오디오 기기들을 집결시켜놓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취미 이상의 시스템이었다. 서너 개의 스피커와 트랜지스터, 진공관 가리지 않고 모노 블록만 두어 대. 이 외에 CD 플레이어와 턴테이블까지 합하면 발 디딜 틈이라곤 보이지 않는 시청 환경이었다.

그 중심에 마치 성곽을 지키는 병사가 들고 있는 창처럼 위로 뾰족하게 솟은 구조물 있었고 그 아래로 드라이버처럼 보이는 트위터가 보였다. 마치 꽃봉오리가 아직 꽃을 피우기 이전의 모습을 닮았다. 이것이 내가 처음 본 MBL의 모습이었다. 바로 MBL 111이라는 스피커다. 이후 나는 동호인 집에서 MBL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고 가끔 가다가 오디오 쇼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스테레오파일에서 찾아본 MBL 1111에 대한 평가는 더욱 흥미를 끌었다.
“리뷰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은 테스트 제품이 마침내 청음실을 떠나는 순간입니다. 제품을 떠나보내는 것이 기쁠까요? 아니면 아쉬움이 남을까요? 저는 지금 아침 7시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스테레오파일의 데이비드 헨드릭이 이번 달 표지 촬영을 위해 스피커를 사진 스튜디오로 가져가기 전에, MBL 111의 특별한 매력을 마지막으로 만끽하기 위해 정신없이 CD를 올리고, 한 곡씩 재생하고 있습니다.”

나 또한 리뷰어로서 이런 일들이 일 년에 몇 번씩 일어나기 때문에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 벌써 20년 전, 2006년 편집장 존 앳킨슨의 리뷰였다. 이후 리뷰어로서 활동하면서 MBL을 테스트하고 그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최근 나의 시청실에 세팅한 후 들었을 때만큼 감동을 느낀 적은 장담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이 스피커가 가지는 독보적인 설계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 넓은 공간에서 스피커 뒤편 및 옆 벽을 충분히 띄어 놓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소스 기기나 앰프에 대한 반응도 예민해 제대로 세팅된 시스템을 만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라디알슈트랄러의 미학
이 스피커의 핵심은 우선 트위터와 미드레인지에 있다. 바로 MBL 스피커를 규정 짓는 알파와 오메가, 라디알슈트랄러다. 무지향, 정확히는 전지향 드라이버로서 일정한 지향각을 갖지 않고 360도 전방향으로 소리를 내는 유닛들이다. 모양을 보면 마치 꽃봉오리가 오므리고 있는 듯한데 이런 디자인이 도출된 이유가 있다. 우선 360도로 음향을 방사하려면 보편적인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구조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MBL은 내부의 보이스코일이 상하로 움직이게 만들고 그 주위에 카본으로 만든 진동판을 마치 꽃잎처럼 붙여 수평으로 팽창, 수축을 하면서 소리를 방사하게 했다.

하지만 이런 제작 공정은 간단하지 않다. 대량 생산하는 드라이버와 달리 거의 모든 공정을 사람의 손으로 진행해야한다. 말은 쉽지만 사진으로 보듯 카본 진동판 안쪽에 댐핑용 흡음재를 채워 공진과 간섭을 제어하고 있다. 한편 이런 무지향 드라이버의 경우 스파이더가 필요 없다. 따라서 물리적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고 훨씬 더 세밀한 반응 특성을 얻을 수 있다. 일반적인 트위터보다 가벼운 리본 진동판처럼 말이다.

한편 각 유닛 하단엔 마그네틱 어셈블리가 설치된다. 이 곳에도 음향적 진동, 노이즈 저감을 위해 특별한 댐핑 물질을 사용한다. 제작 공정을 보면 매우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라디알슈트랄러 같지만 절대 쉽지 않은 제작 난이도를 가진다. 이 때문에 여러 댐핑 소재를 혼용하며 카본 진동판 및 내부 카본 로드 등 가공 난이도가 높은 소재를 투입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MBL은 1979년 설립된 회사다. 그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노하우는 우습게 볼만한 것이 아니다.
다음은 MBL 111F의 스펙이다. 사실 스펙으로 알 수 있는 사운드 특성은 별로 없지만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다. 4웨이 6스피커 시스템으로 트위터와 미드레인지 두 개는 무지향 드라이버로 만들고 나머지 중, 저역 구간은 일반적인 다이내믹 드라이버에 맡겼다. 트위터는 HT37, 미드레인지는 MT50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한편 미드/베이스 우퍼가 양쪽으로 한 개씩 탑재되어 있는데 5인치 구경이다. 그 다음으로 저역 재생용 우퍼 또한 사이드에 두 발을 채용하고 있으며 이는 8인치다. 우퍼 네 개는 모두 진동판에 알루미늄을 사용했다. 총 여섯 개의 드라이버를 사용하고 4웨이로 나누고 있는 형태. 당연히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총 세 개 구간에 위치시켰다. 170Hz, 650Hz, 3500Hz.

제품 사양
System : 4 way, bass reflex system
Acoustic center : 107 cm, 42”
Woofer : 2 x 220 mm, 8” Aluminium (push-push layout)
Low midrange : 2 x 150 mm, 5” Aluminium (push-push layout)
Midrange : Radial MT50, woven carbon fiber
Tweeter : Radial HT37, unidirectional carbon fiber
Lowest frequency : 38 Hz
Crossover frequencies : 170 Hz, 650 Hz, 3500 Hz
Nominal impedance : 4 Ohm
Nominal power handling / Peak : 340 Watt / 2 200 Watt
Weight (single speaker) : 64.5 kg / 142 lbs

완벽한 몰입을 위하여
무게는 스피커 하나에 64.5kg. 상당히 무거운 편인데 요즘 금속을 사용한 스피커들 무게가 워낙 무겁고 이 정도 대형기는 100kg 안팎이 흔해서인지 이제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직접 실물을 마주하면 사용자를 압도하는 느낌이 있다. 상단에 마치 갓을 쓴 듯한 느낌을 주는 그릴, 그리고 그 안에 뾰족하게 웅크리고 있는 트위터와 미드레인지가 오묘한 느낌을 준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기지개를 켜면 꿈틀거릴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사이드 우퍼들은 일종의 푸시-푸시 방식으로 움직이면서 웅장한 저역을 토해낼 듯 단단히 준비 중이다. 일단 음악이 터져 나오면 꼼짝 없이 교향곡 한 곡은 다 듣고 나서야 문밖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마도 콘서트 홀처럼 완벽한 몰입을 위해 설계한 스피커 같다는 인상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런 설계가 원하는 소리는 어떤 것일까? 간단히 전면 배플 방식으로 만들어도 될법한 스피커를 왜 이토록 힘든 설계를 선택한 것일까. 그것이 과연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누구에겐 평생이 될 수도 있는 시간을 들일만큼 중요한 것이었을까? 다음 글에서 좀 더 이야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