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앰프는 양날의 검이다. 최근 들어 DAC나 네트워크 플레이어에 간단한 볼륨 조정 기능을 내장한 모델들이 출시되지만 되레 이런 기능은 사용 안 하니만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고 큰돈을 들여서 별도의 프리앰프를 들이자니 예산이 아깝다. 어차피 디지털 입력, 그 중에서도 USB 혹은 동축만 사용하면 되는데 다양한 아날로그 입력단까지 마련해놓은 전용 프리앰프를 굳이 구입해야하나 하는 생각.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디지털 소스 기기에 내장된 간단한 디지털 볼륨을 사용해 파워앰프와 직결을 시도하곤 한다.
나 또한 한동안 프리앰프의 옵션 프리를 사용해 왔다. 물론 일반적인 중저가 DAC의 디지털 볼륨이 아니다. MSB Analog DAC에 별도로 구입해 장착해야하는 프리앰프로 MSB는 항상 자사의 DAC에 파워앰프 직결을 권장하고 있다. 출력 임피던스도 일반 프리앰프처럼 작은 편이어서 트랜지스터 파워앰프와 매칭도 크게 가리지 않는 편. 실제 들어보면 코드 일렉트로닉스, 패스랩스 등 내가 사용했던 여러 파워앰프와 함께 뛰어난 대역 밸런스와 입체적인 음장, 조용한 배경과 SN비를 유지해주었다.
하지만 소스 기기를 다양하게 연결해야하는 내게 항상 입력단 부족에 시달렸다. 아날로그 입력단이 RCA 한 조밖에 없기 때문. 이 때문에 다양한 프리앰프를 영입했었다. 하지만 번번히 좌절하기를 반복. 기능적으로 입력단이 많아져 편리했지만 SN비가 되레 떨어진다던가 다이내믹스 폭이 비좁아지면서 음의 순도, 자연스러운 음장을 해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발매된지 10년 이내 레퍼런스급 프리앰프들은 예산을 한참 초과하기 일쑤.
최근 다시 한 번 프리앰프를 넣어보는 시도를 했다. 다름 아닌 클라세 CP-800MKII. 이 프리앰프를 사실 최신 델타 3세대 프리앰프 경험이 주효했다. 캐나다 클라세를 사운드 유나이티드가 인수하면서 이전 2세대 프리앰프에 여러 기능을 보완하고 생산 기지를 일본으로 바꾸어 출시 한 것. B&W와 바이앰핑해서 리뷰하고 오디오쇼에서 여러 번 시연까지 해보면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일단 MSB 직결에서 해상력, 순도, 다이내믹스를 깎아먹지 않고 최대한 음색에 왜곡을 더하지 않는, 투명하고 평탄한 프리앰프를 원했기에 위시 리스트에 올렸던 모델이다.
시계를 돌려 2세대 델타 시리즈의 탄생 스토리를 생각해보자. 사실 이 당시, 그러니까 2012년 정도의 델타 시리즈는 2세대에 접어들었고 여러 하이엔드 메이커들의 쟁쟁한 엔지니어들이 클라세에 영입되었던 시절이다. 이전의 CA 파워나 CP 시리즈를 완전히 접고 B&W의 디자이너 모튼 워렌이 투입된다. 이 외에 마크 레빈슨의 31.5, 30.6 같은 다수의 명기를 개발한 톰 칼라타이어트, 린의 CD12를 개발했던 앨런 클락 등 그저 꿈이라고 생각할만한 드림 팀이 구성된 것. 모두 B&W 가 그룹 차원으로 사세를 확장하면서 2천년대 초 클라세를 인수하면서 진행된 일이다.
CP-800MKII는 CP-700이라는 아날로그 프리앰프 이후 CP-800으로 진화한 후 다시 네트워크 스트리밍 같은 기능까지 더해져 나온 2세대 델타 프리앰프의 최종본이다. 그래서 최근 디지털 프리앰프들에서 발견할만한 여러 디지털 입력단 및 이더넷 입력단이 마련되어 있다. 게다가 모든 아날로그 입력을 디지털로 변환 후 다양한 디지털 EQ, 틸트 같은 기능을 활성화시켜 활용할 수도 있다. 대단히 다양한 기능을 프리앰프에 편입시킨, 당시로선 굉장히 화려한 성능의 프리앰프. 이전 프리앰프와 달리 둥근 모서리 디자인 등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탈바꿈된 것도 B&W 노틸러스 시리즈를 디자인한 모튼 워렌이 노틸러스 800 시리즈와 매칭을 고려해 디자인 컨셉을 공유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기능, 디자인 다 제쳐놓고…과연 성능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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