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동안 북셀프 스피커에 천착해왔다. 여기 시청실을 내 모두를 털어 얻기 전까진. 오디오 리뷰를 업으로 삼고 있음에도 집에서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악재 속에서 나는 결국 집을 탈출했다. 하지만 가끔은 작은 방에서 문지방 사이를 오가며 수많은 북셀프 스피커를 나르고 세팅하던 때가 그리울 때도 있다. 어디 상처라도 나지 않을라 애지중지하면서 ATC, 다인오디오, 토템, 포커스오디오, 소너스 파베르 등 수많은 브랜드의 수많은 스피커를 즐겼다.
그 중 다인오디오를 빼놓을 수 없다. 컨투어 초창기 1.3M2, 1.3SE는 물론 그 이전의 크래프트도 좋았다. 크래프트는 아마 지금 헤리티지 스페셜의 조상 즈음 될 것 같다. 에소타의 진한 선홍빛 질감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이후 스페셜 25를 지나 컨피던스 3, 5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용한 게 컨피던드 C4다. 아무튼 간접적으로 체험한 북셀프까지 합하면 정말 많은 모델이 리스트에 등재될 것 같다. 그 중 몇 개만 꼽자면 다인 크래프트, 토템 마니2, ATC 20, 오디오피직 브릴런도 생각난다. 이 외에 린필드나 그 옛날의 루악, 아르테미스 에오스 등 많이 생각난다.
아탈란테 3를 리뷰해보곤 들이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사실 아탈란테 5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특히 다인오디오의 그 유명한 에소타, 세로타 등의 유닛을 만든 장본인이 설립한 메이커이니 믿음이 컸다. 하지만 집에서 운용할 자신이 없었고 전체적인 대역, 토널 밸런스는 내 공간에서 아탈란테 3가 더 나을거라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실제 집에 세팅해보니 생각보다 더 컸다. 스탠드 상, 하판이 더 작아 가분수 같은 모양이 나왔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소리를 들어보았는데 리뷰할 때보다 더 나았고 확실히 앞으로 더 발전할 가능도 엿보였다.
많은 매칭을 시도했다.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거나 또는 리뷰 테스트 용도로 대여받은 기기들을 모두 매칭해보았다. 예를 들어 SAL i5, 바쿤 7511MK4 스테레오 및 모노브리지, 서그덴 A21, 미션 778X 그리고 패스랩스 XA60.5 모노에 이르기까지. A, AB클래스 등 증폭이나 전원부, 정류단 등 각각 설계도 다르고 게인, 임피던스 특성, 출력 특성까지 모두 제각각인 앰프들이다. 그리고 최근 유튜브 촬영차 테스트할 땐 궁금했던 일렉트로콤파니에 ECI6MKII, 오디아플라이트 FL3S까지 테스트해보면서 아탈란테3의 야누스 같은 퍼포먼스에 한편으로 놀라고 한편으로 즐거웠다.
그러던 차 우연히 리뷰 테스트 시기가 겹치면서 골드문트 앰프와 매칭할 기회가 생겼다. 유튜브 촬영을 위한 준비 기간에도 매칭을 못해봤는데 이후 나의 매칭 궁금증은 골드문트는 그냥 내보내지 못하게 했다. 몇몇 곡을 시청해보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폰의 메모장을 띄우고 청음평을 적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메모장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골드문트는 미메시스 27.8 프리앰프와 텔로스 300 스테레오파워앰프 구성이다. 골드문트는 접한 지 꽤 오래되었다. 최근에도 계속해서 신제품 출시는 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 구성에서 다시 한번 골드문트 사운드의 매력을 보았다. 표면 마감이 아주 곱고 중심이 뚜렷한 편인데 딱딱하거나 드세지 않으면서 미음을 내준다. 매우 예쁘게 화장을 했으나 천박함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로 되레 도도하고 고급스러운 사운드를 내준다.
멜로디 가르도 – Who will comfort me
기타 아르페지오가 간결하면서도 귀를 간질이는 고운 미음이다. 보컬이 시작될 때 올라가는 구간이 가파르며 매끈하고 서스테인이 짧아 속도감이 좋은 편이다. 중역대의 살집은 많지 않고 대신 디테일은 충분히 살려준다. 저역으로 하강하는 구간은 짧고 명료하며 뒷맛이 개운하다.
포플레이 – Chant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가슴을 턱~ 가격당한 느낌이다. 그만큼 어택이 빠르고 과도응답특성이 뛰어난 앰프며, 이를 아탈란테3가 잘 받아준다는 의미다. 하지만 음색 자체는 너무 차갑다는 느낌은 들지 않으며 높은 밀도감에 고운 표면 텍스처 기반의 미음이어서 귀에 착 감겨온다. 스피드와 다이내믹은 물론 음색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소리다.
게리 멀리건 – Night lights
얼마 전 대학 시절 음악 동아리 친구들과 오래간만에 들으며 감탄했던 곡. 윌슨 사샤로 들을 땐 음향적 쾌감에 몸서리쳤지만 뭔가 아쉬움이 있었는데 아탈란테3로 들으며 그 아쉬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고해상도의 소프트 돔이 펼쳐내는 관악기의 약간 낡은, 날것 같은 표면 질감과 블로윙에 깃든 게리의 호흡 등 사람 냄새였다. 뛰어난 표면 질감 표현력과 마이크로 다이내믹스를 실감할 수 있다.
안드리스 넬슨스/보스턴 심포니 – 쇼타코비치 교향곡 10번, 2악장
화살은 활시위가 당겨진 상태여야 앞으로 날아갈 수 있다. 그리고 활시위가 얼마나 당겨졌느냐에 따라 활의 비거리가 달라진다. 이 곡에서 활시위는 최대는 아니더라도 내가 사용하는 윌슨, 락포트 대비 80퍼센트 정도 비거리로 화살을 날려 보낼 것만 같다. 생긴 것과 달리 음폭, 다이내믹스 폭, 무대 폭 모두 예상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로 확장된다.
팔색조 아탈란테 3
결론적으로 출력의 크기와 상관없이 전원부 설계가 좋고 봐야한다. 결국 크로스오버 왜곡이 적고 SN비가 높아 순도 높은 소리를 내줄 때 가장 좋다. 클래스 D는 대부분 그리 좋지 못할 듯하고 클래스 A, AB는 잘 선택하면 좋은 매칭을 이룰 것 같다는 짐작이 간다. 아마 가장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매칭은 진공관 앰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만난 골드문트는 지금까지 들었던 아탈란테3와 또 다른 소리를 들려주었다. 미세 약음들의 살벌한 다이내믹스, 표면 질감을 뭉개지 않는 고해상도와 살짝 고급스럽게 입힌 컬러. 도도하고 고급스러운 질감 표현이 스피커 특성과 함께 시너지를 내준다.
결론적으로 앝라란테 3는 시쳇말로 입이 큰 스피커다. 어떤 시그널이 들어와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낸다. 하지만 그만큼 앰프 그리고 소스기기의 성격을 잘 분석해 토해내기 때문에 스튜디오 모니터 같은 면모도 분명히 지니고 있다. 아마도 바꿈질 많은 나로부터 무려(?) 1년이 넘도록 쫓겨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이유가 이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긴 것만 보고 BBC 모니터 계열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보다 해상도는 몇 배는 높아 음원의 민낯을 충분히 분별해내며 다이내믹스, 사운드스테이징 등 모두 탑 클래스에 올라있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스타일로 대충 예쁘게 만들어 추억팔이 하는 스피커가 절대 아니라는 의미다. 좋은 매칭을 찾아 그 존재를 일깨워주면 이 가격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퍼포먼스로 보답하는 스피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