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발매해온 재발매 엘피를 살펴보면 꽤 잘 만든 엘피들도 있고 정말 못 들어줄 엘피들도 많다. 과거엔 재발매를 상상도 못 했던 엘피들이 쏟아져나오니 일단 사놓고 보자는 식으로 구입하곤 했는데 지금 와서 엘피랙에 모셔둔 엘피를 보면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오리지널 엘피는 너무 값비싼 가격 때문에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던 엘피니 애정이 갈만도 한데 실제 들어보면 음질이 너무 기대 이하여서 그냥 랙의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는 게 몇 박스는 족히 될 듯하다.
그래도 굴지의 국내 레이블에서 출시한 엘피들 중 퀄리티가 좋은 것들이 가뭄에 콩 나듯 발견된다. 예를 들어 씨앤엘에서 제작했던 엘피들이다. 무조건 다 좋을 순 없지만 해외 유수의 마스터 커팅 엔지니어에게 맏겨 제작했던 엘피들이 그렇다. 예전에 내 책에서도 소개했던 게리 카의 앨범들이나 DG 일부 재발매 엘피들이 그렇다. 스피커스 코너 같은 해외 레이블과 일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재발매 엘피에서 꽃피운 경우다. 더불어 국내 레이블 중 비트볼 뮤직 같은 경우도 케빈 그레이 같은 엔지니어를 섭외해 내놓는 일부 타이틀은 음질이 무척 좋다. 블루노트 톤포엣 등으로 최근 가장 명성이 높은 그가 커팅한 가요 엘피라니 신선하지 않은가?
최근 장사익 엘피 또한 이런 면에서 다시 한번 신선한 결과물 중 하나다. 장사익 선생님의 ‘기침’은 이미 나의 세 번째 책에 수록하기로 수 년 전부터 점찍어놓은 앨범. 물론은 이전에 ‘동백 아가씨’가 좋았지만, 예전 재발매 엘피는 열악한 음질로 실망시킨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완전히 기획이 다르고 출시한 곳도 달라 기대했는데 결과물도 흡족하다. 음악이야 말해 무엇하나. 드럼에 배수연, 기타에 김광석은 물론 색소폰에 이정식, 첼로에 권수미 등 녹음 자체도 1집 ‘하늘 가는 길’에 비해 훨씬 더 낫다.
일단 오리지널 마스터를 사용했고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쳤다. 당시 디지털 녹음이었기에 이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를 보완하기 위해 프리즘 사운드에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쳤고 마스터 커팅도 검증받은 엔지니어를 통해 해외에서 작업했다. 다름 아닌 토르슈텐 셰프너다. 스스로 오가닉 뮤직을 운영하고 있는 토르슈텐 셰프너는 마스터링 뿐 아니라 커팅 레이스 제작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해외 아날로그 엘피 관련 포럼에서 그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프레싱은 독일 옵티멀 미디어에서 180g으로 제작해 편차 없이 균질한 프레싱 품질을 얻은 듯하다.
참고로 ‘기침’ 외에도 데뷔 25주년 맞이해 발표했던 감동의 9집 ‘자화상’도 함께 발매되었는데 이 앨범이 또 진수성찬이다. 윤동주의 시에 곡을 붙인 ‘자화상’에 신중현의 ‘미련’ 등 한 번 턴테이블에 엘피를 얹으면 시간 모르고 음악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는 과거 여러 가요제 혹은 최근 같으면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것도 아니고 아이돌처럼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가 된 분이 아니다. 생생한 삶의 현장과 거리에서 온 몸으로 겪은 세상을 노래하면서 얻은 감성은 노래에 겹겹이 쌓여 단단하게 녹아들어 있다. 최근 발매된 국내 재발매 엘피 중엔 손가락 안에 꼽을만한 명반 두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