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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메스터에서 마주친 음악의 영감

버메스터 B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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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영감

음악가의 연주를 담아낸 녹음을 재생하는 데 있어 스피커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래서 오랜 시간 스피커 제작자들은 가장 우위에 서서 하이파이 오디오 분야를 이끌어왔다. 드라이브 유닛 개발자와 인클로저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부문을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점점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나 개발 소프트웨어를 통해 오랫동안 난제로 남아 있던 정축, 비축 주파수 응답 특성 및 지향성 측정은 물론 시간축 반응 특성을 해결해왔다.

하지만 결코 각자의 개성 넘치는 설계와 소재 부분에서 배어나오는 음색 부분은 측정 부분으로는 추측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페이퍼 콘과 카본 진동판의 차이, 밀폐형과 저음 반사형 또는 그 옛날의 백로드 혼 같은 로딩 측면은 물론 배플 소재와 크로스오버 설계에 따른 차이를 측정치로 구분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예측, 도입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 많은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들은 카본, 알루미늄, 그래핀 등 음향적, 전기적으로 좋은 소재를 사용하고 밀폐형, 저음 반사형 등으로 어느 정도 상향평준화된 소재, 설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개 오디오 마니아로서 필자는 이보다 측정치는 조금 덜 완벽하더라도 더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소리를 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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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쳇말로 꽂힌 스피커 형식이 있다. 일단 페이퍼 진동판을 채용한 대형 우퍼 소리가 당긴다. 그 옛날엔 수도 없이 썼던 JBL 등 페이퍼 진동판이 많았지만 되레 요즘엔 귀해졌다. 한편 트위터는 AMT나 리본 같은 평판 형이 당긴다. 평평한 진동판은 그 모양대로 180도로 방사하는 형태의 돔 트위터와 방사 특성이 다르고 그래서 지향 특성도 다르다. 하지만 일단 간접 음이 적다는 이점이 있고 무엇보다 높은 고역까지 분무기로 소리를 뿌리는 듯한 소리가 좋다.

실제로 이런 특성을 갖는 스피커를 찾아보면 꽤 있다. WHT라는 스피커 메이커는 리본 트위터에 대형 우퍼를 달고 나왔다. 게다가 인클로저는 나무 소재인 것에 더해 백로드 혼 타입을 구사했다.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피에가의 플래그십 스피커도 떠오르고 AMT 트위터 소리가 매력적인 오디오벡터도 좋다. 최근엔 아주 멀리 옛날로 돌아가 에스칼란테 디자인이 만들었던 프레몽 같은 스피커를 구할 수 있다면 시청실에 들여놓고 진공관 앰프로 시스템을 꾸리고 싶은 생각도 든다. 음향을 담당하는 스피커를 통해 음악의 영감을 얻을 때가 있다. 바로 좀처럼 잊고 있었던, 혹은 너무 한 쪽 방향으로 일방통행하고 있는 최근 하이엔드 오디오와 다른 특별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스피커를 만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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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메스터 스피커

부쩍 평판 트위터와 페이퍼 콘 등에 대한 상사병이 걸린 최근 여러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진 스피커를 만났다. 사실 뜬금없는 발견이었는데 바로 버메스터의 스피커다. 사실 버메스터는 프리, 파워, 인티앰프 등 주로 앰프 부문에서 호평 받으며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브랜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버메스터처럼 매력적인 아우라를 가진 스피커 제조사도 드물다. 그렇다. 사실 버메스터는 음악을 듣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앰프, 소스기기부터 스피커까지 모두 만들어낸다. 하지만 엔트리급부터 최상위 모델까지 모두 극단의 성능을 추구하는 하이엔드 오디오의 범주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적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리본이나 AMT 같은 평판 트위터에 페이퍼 콘 등을 떠올린 것은 광대역이면서도 포근한 중, 저역의 질감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또한 저음압 스피커에서 종종 긴장해서 집중해 듣다보면 가끔은 편안하게 이완된 소리가 그리워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긴장을 늦추고 소파에 기대어 평안을 찾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특히 아날로그 시절 녹음을 LP 같은 아날로그 포맷으로 감상할 때 더욱 그렇다. 동료 평론가 김편 님의 드보어 피델리티 Orangutan O/96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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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메스터 B38

우선 이 스피커는 총 세 개의 유닛을 영민하게 선별, 배치하고 있는 모습이다. 트위터의 경우 다름 아닌 AMT 트위터다. 오스카 헤일 박사가 곤충의 고속 날갯짓을 관찰하다가 영감을 얻어 파장이 매우 짧은 고역을 재생하는 데 적용해 트위터라는 트랜스듀서 설계에 적용해 개발한 것. 마치 아코디언 같은 작동 패턴을 보여 같은 평판이지만 리본 트위터와는 다른 설계 구조를 갖는다. 대체로 이 트위터를 사용한 스피커는 오래 전부터 20kHz 초고역을 매우 쉽게 구사하면서도 경질의 피곤한 소리가 아닌 부드러운 고해상도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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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드레인지도 전용 유닛을 따로 제작해 트위터 아래에 배치해놓고 있다. 진동판은 유리 섬유를 사용하며 170mm 구경이다. 여기서 끝이라면 무척 서운했을 것이다. 바로 우퍼가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우퍼는 인클로저 측면 패널에 배치했다. 구경이 무려 320mm로 요즘 이 정도 구경의 우퍼를 보기란 쉽지 않다. 대개 최근 스피커들의 경우 전면 배플의 난반사, 회절로 인한 음질적 왜곡을 막기 위해 전면 배플을 좁게 설계하고 유닛 또한 딜레이가 발생할 수 있는 커다란 우퍼 대신 기민한 반응을 보여주는 작은 우퍼를 다발로 배치하는 경향이 많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측면 우퍼의 진동판이 샌드위치 구조의 페이퍼 콘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마그넷은 강력한 자력의 네오디뮴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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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캐비닛 구조를 살펴보면 상당히 복잡해 보인다. 각 유닛의 후방을 모두 각각의 챔버를 만들어 가두어놓았다. 후방 주파수 에너지가 섞이면서 공진을 일으키고 복잡한 내부 정재파가 최종 소리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게 위해서다. 기본적으로 저음 반사형 타입 설계인데 문제는 이 커다란 우퍼의 진동을 하나의 캐비닛 안에서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다. 내부를 보면 별도의 공간에 우퍼를 가두고 무척 단단한 스테인레스 강 소재 링을 설치해노핬다. 측벽은 이중으로 설계해 불필요한 진동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편 바닥과의 상호 작용으로 인한 진동을 격리시키기 위해 스프링을 이용한 질감 감쇠 시스템을 탑재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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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후면 바인딩 포스트 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토글 스위치다. 이는 종종 몇몇 하이파이 스피커 메이커에서도 도입해놓는 기능인데 바로 저역 조정 기능을 가지고 있다. 공간에서 배치나 공간의 크기, 벽과의 거리에 의해 종종 발생하는 저역 부밍 현상을 이 기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37Hz에서 150Hz, 정확히 낮은 저역에서 높은 저역 구간에 대해 1~3dB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제법 큰 구경의 후방 포트를 개방해놓거나 막을 수 있도록 포트 마개를 기본 제공한다. 두 개의 기능을 통해 저역 스케일 조정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배려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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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116.5cm로 그리 크지 않은 플로어스탠딩 스피커. 그라나 버메스터 B38이 내뿜는 묘한 에너지는 절대 작지 않다. 인클로저 표면엔 어떤 나사 같은 흔적도 없이 말끔한 표면 마감이 미니멀 디자인, 제작 기법의 표본과 같다. 한편 B38의 주파수 응답 특성은 최하 37Hz에서 최고 33kHz라는 광대역에 걸쳐 있다. 공칭 임피던스는 4옴, 감도는 86dB. 아쉽지만 스펙만 보면 제어가 아주 쉬워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실제 청감상 특성과 스펙은 거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진지하게 테스트에 들어갔다. 매칭한 기기는 소스 기기로 T+A의 MP3100HV, 프리앰프는 버메스터 077, 파워앰프는 B38의 성능을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 218 파워앰프를 모노 브리지로 엮어 셋업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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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스피커가 내는 소리는 곱고 섬세하며 맑다는 인상이 가장 먼저 든다. 예를 들어 빌 에반스의 ‘My funny valentine’을 들어보면 마치 이슬이 송글송글 맺히는 듯한 피아노가 영롱하며 그 표면이 투명하다. AMT 트위터는 작은 브러시 소리마저도 놓치지 않고 포착해 세밀하고 부드럽게 재생해낸다. 흥미로운 건 더블 베이스 사운드다. 대형 사이드 우퍼 덕분에 기대하지 않았던 더블 베이스 연주가 분명하면서도 무게감 있게 표현된다. 전면으로 튀어나와 피아노와 섞이는 크고 둔탁한 저역이 아니라 후방에서 묵묵히 그러나 선명한 존재감을 보이며 탄력적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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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막강한 소스 기기와 앰프 진용을 꾸린 덕분도 있지만 소리는 스펙보다 매우 말쑥하고 쉽게 빠져나왔다. 도미니크 피스 아이메의 ‘Strange fruit’을 들어보면 긴장감이 완전히 풀어져 이완된 소린 아니지만 그렇다고 쥐어짜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한편 간접음, 즉 시청 공간의 측벽 등을 통한 반사음이 적은 AMT 트위터와 미드레인지가 만들어내는 보컬 재생 음은 말끔하고 깨끗하게 들린다. 청감상 SN비가 높아진 인상으로 특히 중역대가 자연스럽고 스트레스 없이 펼쳐진다. 약간 파스텔 톤 같은 음색이 있는데 심각한 왜곡으론 흐르지 않는, 기분 좋은 토널 밸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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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스피커 후방을 으스스하게 메운다. 바로 미키 하트의 ‘The gates of dafos’라는 트랙에서다. 직조된 미음이 아니라 싱싱한 현장의 실체감이 살아 꿈틀거린다. 하지만 그 현장이란 공연 실황이 아니라 스튜디오 실황처럼 반사음이 제거된 공간에 가깝다. 강력한 타악이 난무하지만 절대 산만하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부드러우면서 강한 타입의 저역을 들려준다. 다이내믹 축소가 크게 느껴지진 않지만 너무 찍어 누르는 소리가 아니라 자극을 살짝 제거해 편안하게 들리면서도 펀치력을 살아 있는 소리로 상당히 고급스러운 웰 메이드 사운드를 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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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가까워지면 한 번을 듣고 가는 곡 ‘O helga natt’를 재생해보았다. 이 곡은 파이프 오르간과 합창을 통해 저역의 성능 및 사운드 스테이징 등을 알아보기 좋은데 일단 파이프 오르간은 바닥에 살며시 깔리면서 깊고 고운 저역을 융단처럼 펼쳐놓는다. 그 위로 겹쳐지는 합창은 마치 여러 개의 촛불을 켜놓은 듯 조용히 타오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특히 전/후 거리, 즉 심도 표현이 매우 깊어 자연스럽게 작은 음악회를 떠올리게 만든다. 한편 겹겹이 펼쳐지는 합창 사운드는 이 스피커 고유의 음장 재현 특성을 알게 해주었다.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거친 느낌이 없으면서도 이미지를 눈앞에 만들어내는 성능은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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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AMT 트위터의 고해상도 재생 특성을 통해서만 가능한 넓고 입체적인 무대는 물론 곱게 흩뿌리는 입자감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게다가 고역과 좋은 토널 밸런스를 만들어내는 미드레인지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저역에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 같은 저역은 음악의 깊이감을 몇 배고 향상시켰고 특히 클래시컬 음악에서 가장 빛을 발했다. 나의 예상은 일부는 맞았고 일부는 틀렸다. B218 모노 브리지를 통해 버메스터가 추구한 B38의 이상에 가까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저출력 진공관 앰프로 드라이빙은 힘들 듯하다. 하지만 애초에 AMT 같은 평판 트위터에 대구경 페이퍼 우퍼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광대역, 고해상도에 풍성한 음악적 울림에 대한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우연히 마주친 버메스터에서 최근 불어닥친 음악의 영감과 마주했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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