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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맡에 펼쳐진 음악의 우주

코드 Anni 그리고 Qutest

ANNI QUTEST 2

손이 닿는 곳에

최근 가장 뿌듯했던 일이라면 시청실의 턴테이블을 전면이 아닌 우측 사이드로 옮긴 일이다. 별도의 오디오 랙을 구입해 놓고 우측에 별도의 오디오 시스템을 꾸릴 생각을 한 지 약 석 달만에 실행에 옮겼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시청실의 청취 거리가 꽤 멀다 보니 엘피를 교체하기 위해 걸어가는 길이 너무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엘피 듣는 일이 귀찮아졌다. 음악 듣는 일엔 그리 귀찮아하지 않는 내게도 이런 일이 가끔 벌어진다. 엘피로 음악 듣는 행위의 번거로움이 되레 음악에 대한 몰입을 추동한다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너무 먼 거리는 번거로움의 어느 선을 넘어서 행위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ANNI HEADPHONE

주말에 막간을 이용해 엘피를 듣기 위해 들인 린 LP12 또한 내겐 종종 이러한 편의성의 선을 넘어서게 만들었다. 시청실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지만 스피커 옆까지 걸어가기가 예전보다 귀찮다. 예전에 그리 자주 오간 익숙한 3미터 정도의 거리지만 나이 탓인지 점점 더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최근에 청취 위치 바로 옆에 놓은 값싼 오디오 랙을 하나 주문해 설치했다. 그 위에 린 LP12를 설치하니 그리 편리할 수가 없다. 엘피 들을 생각을 하지 않다가도 가장 가까이 위치한 턴테이블로 손이 간다. 거리가 음악 소스의 선택에 상당 부분 영향을 주고 있다.

사실 디지털 소스로 음악을 듣는 데는 손이 닿는 곳에 꼭 디지털 소스 기기가 있을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바로 네트워크 스트리밍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이젠 너무나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다름 아닌 리모트 앱이다. 손에 항상 쥐고 있는 스마트폰에 앱을 깔아 디지털 소스기기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멀리 있어도 마치 바로 앞에 있는 듯 그것을 조정하고 끄고 켜며 때론 공간 최적화 및 이퀄라이징까지 가능한 세상이다. 이제 손에 닿을만큼 가까운 거리에 오디오가 있을 필요가 없다.

ANNI FRONT2

코드 Anni

하지만 나는 여전히 손이 바로 닿을 수 있는 곳에 오디오를 배치하고 조작하는 것을 즐긴다. 책상 위에 작은 앰프의 볼륨 노브를 직접 돌리는 것이 좋다. 최근에도 책상 시스템에 아주 오래 사용하던 앰프를 업그레이드하려 새로운 앰프를 찾아보았다. 작은 사이즈에 DAC를 내장하고 있고 USB 입력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되레 요즘엔 USB 입력이 빠져 있는 것들이 많았다. 이른바 네트워크 앰프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이더넷 및 광, 동축 입력은 만들면서 그 흔하디흔했던 USB 인터페이스를 생략했다. 결국, 출시된 지 한참 지난 DAC 내장 인티앰프를 구입했다. USB를 한 번 메인 출력 장치로 잡으면 유튜브가 되었든 KBS 콩이 되었든 별도로 설정을 만질 일이 없다.

ANNI QUTEST HUEI 2

최근 코드 Anni라는 제품을 받아들고 한동안 상념에 빠지게 된 사유는 이렇다. 손에 잡힐 장소에 위치하고 언제든 손으로 조작하면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책상 맡은 음악 친구. 하지만 작은 사이즈 이상으로 다양한 스피커를 매칭할 수 있고 때론 헤드폰, 이어폰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기 말이다. 내부에 DAC까지 내장하면 좋겠지만 Anni에겐 딱 맞는 커플이 있다. 나 또한 무척 좋아하는 Qutest라는 DAC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네트워크 스트리밍 기기들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고 이더넷 또는 와이파이라는 플랫폼 위에서 작동하지만, 여전히 USB 유선 연결이 주는 편의성은 포기하기 힘들다. 그 사용 위치가 특히 책상 위라면 굳이 비싼 돈을 주고 네트워크 스트리머를 구입할 필요가 있을까?

ANNI SIDE2

Qutest에 Anni를 더하다

Anni는 몇몇 친구들이 있다. 하나는 Qutest로서 PCM 신호에 있어 그 어떤 포맷과 해상도도 모두 지원 가능한 든든한 지원군이다. 특히 USB 입력은 환영 할만한다. 네트워크 스트리밍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책상에 PC와 연결하기 가장 편리한 USB 입력이 생략되기 시작하면서 되레 귀해진 요즘이다. USB 입력에 대응하는 백만 원대 안팎 DAC를 꼽으라면 단연한 첫 손가락에 꼽고 싶은 DAC가 바로 Qutest다. 여기에 더해 Huei라는 포노앰프도 있는데 이건 차후에 소개하기로 하고 일단 신제품 Anni를 살펴보기로 하자.

ANNI SIDE

우선 Anni를 마주하면 좌우 너비가 160mm로 정말 작다. 깊이가 97mm, 높이가 43mm로 그리 넓지 않은 책상에서 스피커를 배치하고도 충분히 올려놓고 사용 가능한 사이즈다. 우선 전면을 보면 아주 간략한 기능을 갖는 버튼과 노브만 마련해놓았다. 우선 ㅈ우앙에 볼륨이 있고 좌우로 각각 6.5mm와 3.5mm 헤드폰 출력단을 마련해놓은 모습이다. 한편 우측 상단엔 게인 버튼이 있어 로우 게인(파랑)과 하이 게인(빨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단, 이는 스피커 출력시에만 변환 가능하며 헤드폰을 꼽아 사용할 땐 자동으로 로우 게인으로 세팅된다. 헤드폰 출력에서도 게인 조정이 가능했다면 더 좋을 뻔했다. 마지막으로 우측 상단 맨 오늘 쪽엔 전원 버튼이 있다.

ANNI REAR

후면으로 넘어가면 여러 단자를 마주하게 된다. 앙증맞은 사이즈지만 있을 건 다 있다는 듯 빼곡하다. 좌측으로는 전원 입력단이 마련되어 있는데 사이즈에서 짐작했든 외부 SMPS 전원부를 갖추고 있고 외부 SMPS 어댑터에서 AC를 DC 전원으로 변환한 뒤 전용 잭을 통해 입력받고 있다. 입력 전압은 15V. 우측으로는 스피커 출력단이 마련되어 있고 특이하게 접지 단자까지 마련해놓은 모습이다. 참고로 사이즈 때문에 말굽 단자는 사용하지 못하고 바나나만 적용 가능한 점에 유의해야 한다. 후방 패널 중앙엔 두 조의 RCA 입력단이 존재한다. 입력단 선택은 볼륨 노브를 길게 눌러 바꿀 수 있다. 1번은 파랑, 2번은 빨강이다. 여기서도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색깔 놀이는 멈추지 않는다.

코드 Anni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고 미니멀 디자인에 무게 또한 625g으로 무척 가벼운 편이다. 하지만 실물의 표면 질감과 만듦새는 소유욕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알루미늄을 CNC머신으로 절삭해 만든 품질은 이제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시그니처라고 할만하다. 게다가 전용 오디오랙 위에 놓으면 Qutest와 완벽히 어울리면서 탑을 쌓을 수 있다. 특히 이 랙은 단순히 장식용이 아니다. 발열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다른 제품과 겹쳐서 위로 쌓을 경우 반드시 랙에 올려 충분히 거리를 두고 통풍이 되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

ANNI QUTEST HUEI 3 1

코드 일렉트로닉스 Anni의 출력은 8옴 기준 채널당 고작 10와트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증폭 방식은 클래스 AB며 슬라이딩 바이어스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원부는 고속 스위치 모드에서 작동하는, 이른바 SMPS 방식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클래스 AB 방식과 약간 다르다. 코드 일렉트로닉스에선 바로 그들의 수천만 원대 플래그십 파워앰프 ULTIMA에 처음 적용했던 기술을 이식했다고 한다. 바로 ‘듀얼 피드 포워드’ 에러 보정 회로다. 증폭 과정에서의 오류에 대해 보상을 통해 훨씬 더 명료하고 깨끗한 재생음을 선보였던 바로 그 회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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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박스조차도 너무나 멋지게 디자인한 코드 Anni 박스를 열어 실물을 보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다. 어서 설치하고 책상 위에서 음악을 즐기고 싶다. 어댑터를 연결하고 파워 버튼을 누르면 마치 작은 미니어처 자동차 같은 인상을 준다. 시동을 걸 듯 약간의 초기 소음이 있는데 내부에 쿨링 팬을 설치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처음 켰을 때 이후엔 소리를 잦아들고 근거리에서 사용할 경우에도 소음이 거슬리진 않는다. 이번 테스트는 DAC로 Qutest를 사용했고 오렌더 A1000에서 USB 출력을 받아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재생하면서 진행했다. 참고로 스피커는 바워스앤윌킨스의 705S3를 활용했으며 헤드폰은 젠하이저 HD600을 활용했다.

anne

안네 소피 폰 오터 – Baby plays around

평소 즐겨 듣기도 하고 리뷰에 모니터로 활용하곤 하는 705S3. 밸런스가 평탄하고 어디 한군에 모난 부분 없이 해상도 높은 소리를 내주는 모습. 상당히 깨끗한 앰프로서 볼륨을 12시 이상 높일 경우에나 약간의 화이트 노이즈가 날 정도 수준. 전반적으로 무게 중심은 약간 높은 편이나 얇게 흩날리는 소리는 아니며 최근 들어본 코드 플래그십 Ultima 혹근 BerTTi 등 비교적 최신 코드 앰프들과 궤를 함께하는 밸런스를 보여준다.

arne

아르네 돔네러스 –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책상 앞에서 듣는가면 볼륨을 아홉시 이상 올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충분한 게인을 확보하고 있다. 볼륨 노브를 돌릴 때의 약간 빡빡한 느낌도 안정감을 준다. 상당히 밝고 해상도 좋은 사운드로서 어떤 음악도 경쾌하고 미적지근한 느낌 없이 명료한 편이다. 특히 색소폰 같은 경우 날카롭고 파삭한 소릴 내는 중저가 하프사이즈 기기들에 비해 옹골차고 뚜렷해 심지가 곧게 들린다. 후방의 오르간이 전면의 색소폰과 선명하게 대비되어 분명한 래이어링을 형성한다.

art pepper

아트 페퍼 –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

엔트리 단계에 있는 모델이지만 코드의 DNA는 어디 가지 않는다. 곧고 절도 넘치는 사운드를 바탕으로 무엇보다 날렵한 스피드 감각이 뚜렷하게 살아 있다.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파아노 반주는 솔로 부분에서 각 악기와 선명하게 분리되어 밝고 깨끗하게 질주한다. 듣는 내내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시간축 반응 특성이 뛰어나다. 이러한 뛰어난 과도 응답 특성은 기본적으로 SMPS 설계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로 인해 다른 무엇보다 리듬감 하나는 상위 모델 부럽지 않게 재생된다.

gardiner

가디너 – 바흐 : Cum sancto spiritu

데스크톱 시스템에서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일까? 내친김에 대편성까지 도전해보았다. 예상 이상이다. 눈앞에 거대한 무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물론 무대 사이즈는 적당히 축소되어 있지만 작은 방이나 책상맡에서 즐기기엔 충분히 차고 넘친다. 혹시나 더 깊은 저역과 스케일 넘치는 다이내믹스를 얻고 싶다면 더 큰 사이즈의 앰프들은 많다. 하지만 이 사이즈에서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앰프를 찾기란 매우 힘들 것이다.

ANNI QUTEST

총평

니어필드 리스닝은 항상 즐겁다. 그리고 즐거움은 역설적이게도 나의 손가락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원을 켜고 작은 볼륨을 만지작거리며 DAC의 필터를 조정하는 그 작은 찰나에서도 음악은 수많은 형형 색깔로 나의 공간을 비춘다. 이미 Qutest의 우수한 가격 대비 성능은 알고 있었지만, 제짝인 Anni와 만나면 본래 이렇게 써야 했던 건가 싶을 정도로 시각과 청각 모두를 더욱더 만족시키는 오디오로 완성되었다. 만일 책상에서 고해상도 음원을 자유자재로 즐기며 아무런 방해 없이 음악의 세계로 항해하고 싶다면 Anni와 Qutest는 그 길의 초입으로 온전히 안내해줄 것이다. 내 손 하나에 음악의 우주가 열린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출력 : 10 W (8옴)
전 고조파 왜곡 : 0.02%
SN 비: -92 dB
잡음 : -110 dB
주파수 응답 : 5 Hz – 60 Khz (-3 dB)
크기 : 160mm (너비) x 42.50mm (높이) x 96.60mm (깊이)
무게 : 625 g

제조사 : Chord Electronics Ltd(UK)
공식 수입원 : ㈜ 웅진음향
공식 소비자 가격
Anni : 2,350,000원
Qutest : 2,100,000원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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