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시작된 개천절. 낮엔 유튜브 촬영이 있었다. 분주히 촬영을 준비하고 조명을 켜고 슛~. 녹화와 녹음이 시작되었다. 하나는 올리기만 하면 차이가 있네, 없네 옥신각신하는 LAN 케이블. 또 하나는 에어 어쿠스틱스에서 심기일전해 만든 포노앰프다. 제품의 설계를 찾아보면 어느 정도 해당 모델에 대한 내용을 알 수는 있고 나름 분석해서 이야기를 해준다. 예전처럼 글로 이야기를 하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지만 유튜브가 대세라고 하니 최대한 요약해 빠르게 이야기하고 끝낸다. 아쉽다. 나는 여전히 글로 표현하는 게 전달하는 사람이나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촬영하랴, 녹음하랴, 편집하랴 비용과 시간도 많이 든다.

촬영을 마치고 이제 진짜 현실 세계로 나선다. 연휴 전에 약속이 잡혔다. 평소 알고 지내는 분이 집에 초대했다. 유튜브로 보는 세계가 아닌 진짜 현실의 소리를 들으러 간다. 보쌈집에서 만나 소주 한 잔을 곁들여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 오랜만에 들른 지인 집은 몇 년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스피커는 그대로였지만 프리앰프, 파워앰프 그리고 턴테이블 등 모두 꽤 많이 변화했다. 예전에 보였던 마크 레빈슨 ML2 파워앰프가 빠진 건 못내 아쉬웠다. 탄노이 오토그라프를 그렇게나 강단 있게 울려주었던 파워앰프인데 말이다. 하긴, 세월 앞에 장사 없는 건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스피커는 탄노이 오토그라프다. 그 옛날 진짜 탄노이다. 통은 새로 짠 거지만 오리지널 유닛을 통해 듣는 소리는 기개가 넘친다. 풍요롭고 넉넉하며 때론 근엄한 권위마저 느껴진다. 요즘 탄노이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소리다. 그 뒤엔 여러 지원군들이 있었다. 나도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던 앰만사 앰프다. 프리앰프는 노이만 VW2 복각인데 여기에 더해 포노앰프도 앰만사 LCR 포노앰프다. 입력단이 풍부해 여러 턴테이블 운용하는 아날로그 마니아에겐 안성맞춤이다. 전체적으로 과거 마크 레빈슨 ML2 쓸 때에 비해 더 풍부한 잔향이 생겼고 온도감도 더 올라가 넓은 거실 공간이 음악적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스피커 등장. 어쿠스틱 리서치, AR 스피커가 바닥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마치 오토그라프가 놀고 있는 꼬마 아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간만에 아날로그 튜너도 KBS 93.1을 듣고 있으니 마치 고향으로 돌아간 듯 정겨운 느낌이 든다.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KBS 콩 앱으로 듣던 것과 너무 달라 놀랐다. 이 외에 나도 언제부턴가 들이고 싶어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릴덱도 들인 모습이다. 타스캄 릴덱인데 조금 손을 봐야한다고 해서 나중으로 미뤘다. 다음엔 꼭 들어봐야겠다.



이곳에서 나의 호기심을 가장 자극하는 건 역시 턴테이블이다. 디지털 장비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소스, 즉 음반이 대체로 아날로그 녹음 시대 LP들이니 턴테이블이 주력인 건 당연하다. 하지만 턴테이블이 무려 네 대나 된다. 예전엔 테크닉스와 토렌스 정도였는데 이후에 추가로 테크닉스와 가라드가 들어왔나보다. 테크닉스를 워낙 좋아하셔서인지 SP10 턴테이블에 다양한 톤암을 걸어서 쓰고 있다. 예전에 리뷰하면서 놀랐던 클라우디오 톤암을 여기서 볼 줄이야. 한편 내가 가장 가지고 싶은 건 가라드 301이다. SAEC 308SX 톤암에다가 오토폰 톤암을 붙여놓았다. 이건 내보내게 되면 찜한다고 미리 말해두었다 🙂

수많은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가끔은 숨 막힐 때도 있다. 종종 사람들은 신기술이 항상 인간에게 긍정적일 거라는 믿음을 가진다. 그러나 가끔은 오래된 기술로 빚은 것들이 발산하는 빛이 있다. 그래서 빈티지 오디오라는 장르가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거대 자본이 흡수한 일부 메이커들의 지나친 상업주의 노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같은 빈티지 오디오가 풍기는 순수한 에너지에 숨통이 트이곤 한다. 특히 디지털 포맷이 나오기 이전, 꼼수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의 녹음은 그 당시 아날로그 포맷으로 즐기는 게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