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므라빈스키의 쇼스타코비치 5번
이 앨범은 에브게니 므라빈스키(Yevgeny Mravinsky)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을 이끌고 1973년 일본 도쿄 NHK 홀에서 가진 실황 녹음(Altus 레이블)이다. 이 음반은 단순한 연주 기록을 넘어, 20세기 음악사에서 가장 긴밀했던 ‘작곡가와 해석자’의 관계가 도달한 정점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강요된 환희’와 그 이면의 비명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위험했던 시기에 탄생했다. 1936년 오페라 <무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스탈린의 분노를 사며 ‘인민의 적’으로 몰렸던 그는, 생존을 위해 “당국의 비판에 대한 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조적 답변”이라는 부제를 달고 이 곡을 발표했다.
겉으로는 고전적인 4악장 구조와 승리하는 듯한 결말을 취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숙청의 공포에 떠는 민중의 슬픔과 ‘강요된 환희’에 대한 냉소적 저항이 담겨 있다. 므라빈스키는 바로 이 곡의 초연(1937년)을 맡았던 인물로, 작곡가의 숨은 의도를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는 전령사였다.

서늘한 절제미와 압도적인 카리스마
이 1973년 도쿄 실황은 므라빈스키의 수많은 5번 녹음 중에서도 가장 날카롭고 긴장감이 넘치는 연주로 손꼽힌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은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므라빈스키 특유의 엄격한 조련은 현악기의 서늘한 질감과 금관악기의 포효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1악장의 비극적인 행진곡과 3악장(Largo)의 깊은 애도는 청중을 압도한다. 특히 압권은 4악장 피날레다. 므라빈스키는 엄청난 속도로 강제된 환희에 대해 도발하는 듯하다. 무겁고 기계적인 타격음은 승리의 축제가 아니라, 총구 앞에서 억지로 웃어야만 하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소름 끼치도록 재현한다.

일본 투어의 정수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이 가장 절정의 기량을 뽐내던 시절의 해외 공연 실황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우선 Altus 레이블에서 발매된 이 앨범은 NHK가 당시 보유했던 최상의 녹음 테이프를 바탕으로 한다. 음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오비(Obi)에 표기된 것처럼 DSD 마스터링을 거쳐, 당시 NHK 홀의 공간감과 오케스트라의 다이내믹 레인지를 최대한 복원해냈다. 최근 구입한 CD는 ‘HQCD(High Quality CD)’ 규격으로 제작되어 일반 CD보다 더 좋은 음질을 들을 수 있었다.
각 악기군의 분리도가 뛰어나며, 특히 저역대의 팀파니 타격감이 매우 단단하게 들린다. 더불어 관객의 숨소리와 무대의 공기감까지 담겨 있어, 스튜디오 녹음에서는 느낄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상 내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