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하면 떠오르는 영화 <바스키아>. 낙서화가인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의 짧은 일대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감독은 전업미술가인 쥴리언 슈나벨(Julian Schnabel), 바스키아의 멘토였던 앤디 워홀(Andy Warhol) 역은 스페이스 록(Space Rock)의 대부인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가 맡았다.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대여한 비디오테입으로 본 <바스키아>는 몰입도 200%의 수작이었다.
필자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렸다. 로봇, 항공모함, 탱크를 주로 그렸는데 학급친구가 내 만화를 사겠다고 주문을 넣었다. 생애 최초로 그림 알바를 시작한 것이다. 도화지와 연필이면 충분했다.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면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신기하다고 다른 반 애들까지 찾아왔다. 어렴풋이 나라는 인간의 존재감을 인식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중학교에 가자 미술선생이 방과 후 미술반 활동을 권하더라. 어렵사리 부모의 허락을 받고 뎃생(Dessin)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미술반에서 내가 1등이 아니더라. 근현이라는 친구가 나보다 두 발짝씩 앞서가는 결과물을 척척 쏟아냈다. 종철이라는 친구도 만만치 않았다. 중학교 대표로 미술대회에 나가면 나를 포함한 3명이 번갈아 상을 받았다. 뎃생은 근현이가, 붓질은 종철이가 내 실력을 추월했다.
하필이면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이 미술선생이었다. 내 그림은 대부분 만점을 받았다. 2년 가까이 미술반 활동을 하다 진학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미대진학을 반대하는 집안 분위기 때문에 나는 붓을 내려놓았다. 이후 근현이랑 종철이가 나란히 S대 미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피카소(Picasso)가 아닌 브라크(Braque)의 운명을 장착한 나라는 사람. 게다가 만화가를 꿈꿨기에 포기가 빨랐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넓지만 전업만화가는 흔치 않던 1980년대였다.
힙한 기운을 뿜어내는 레코드의 주인공은 트럼페터 블루 미첼(Blue Mitchell)이다. 재즈펑크(Jazz Funk)의 진수를 보여주는 음반 ((Graffiti Blues))는 모든 곡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수록곡 전체가 마음에 쏙 들지만 굳이 고르라면 ‘Asso-Kam’을 꼽고 싶다.
블루 미첼은 음반사진을 촬영하면서 20대에 요절한 바스키아를 떠올렸을까. 잊혀진 화가의 꿈을 상기시켜준 의미심장한 레코드다. 재즈 록과 재즈펑크의 기운이 만개했던 1974년에 등장한 블루 미첼의 숨겨진 역작이다.
블루 미첼의 또 다른 음반을 꼽으라면 ((Blue’s Moods))를 추천한다. 재즈의 명가 리버사이드(Riverside) 레코드사에서 발표한 그의 1960년 발표작이다. 블루미첼의 연주는 리 모건(Lee Morgan)의 활화산 같은 열기와 쳇 베이커(Chet Baker)의 물안개 같은 나른함의 중간지대에 위치한다. 재즈 트럼펫의 계보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블루 미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