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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레코드 :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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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의 30분은 디지탈의 60분보다 짜릿하다

CD가 LP를 메인스트림 포맷의 왕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편의성이다. 무엇보다 수록시간이 길고 LP처럼 판을 뒤집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면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이 두 배 이상 길었고 원하는 곡을 리모컨을 사용해 바로 선택해 즐길 수 있었다. 하물며 음원 스트리밍은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해졌다.

이건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마치 게임을 하는 듯하다. 조금만 질리며 바로 스킵 버튼을 누르며 이마저 싱거우면 유튜브 뮤직 비디오로 즐긴다. 시대적 조류지만 영상 등 그 이외의 요소에 더 집중하면서 음악적 몰입도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모든 산업은 축소 지향적으로 그리고 편의성 우선으로 바뀌고 있다. 이젠 AI가 없는 미래는 상상할 수 없다.

CD의 출현과 음원 스트리밍이 잠식한 시대에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가 싶던 LP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쉽고 간편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 분야에서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LP는 감상하기 가장 불편한 포맷이기 때문이다. 한 번 들을라치면 비닐 커버를 빼고 속지에서 LP를 다시 또 뺀 후 턴테이블에 올려놓아야한다. 카트리지를 조심조심 LP 위에 올리고 긴장감 속에 볼륨을 올리고 나서야 한 숨 놓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과정 속에서 듣는 음악은 몰입감을 배가시킨다. CD나 음원을 사용해 앨범 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들어본 기억이 언제였던가? LP는 귀찮아서라도 한 쪽 면만큼은 끝까지 듣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잘 세팅된 턴테이블에서 질 좋은 LP로 음악을 들을 때에만 허락된다. 그러니 LP를 집중해서 듣고 싶다면 일단 세팅을 점검해보자.

턴테이블은 우선 굴곡이 없이 똑바로 수평을 유지해야한다. 그리고 흔들림 없이 단단한 전용 오디오랙이나 탁자 위에 설치해야한다. 턴테이블 세팅의 기본이다. 오버행도 중요해서 턴테이블 매뉴얼에서 톤암의 오버행 수치에 맞게 카트리지의 바늘과 턴테이블 스핀들 사이의 거리를 조정해야한다. 그 다음으로 카트리지가 LP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음질이 심하게 안 좋아지거나 좌/우 밸런스가 한쪽으로 쏠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안티스케이팅을 조정해야한다.

때론 톤암의 높이 조정(VTA)도 필요하다. 높이 조정이 자유롭지 않은 턴테이블도 있는데 이 경우 그 높이에 맞는 카트리지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카트리지를 옆에서 보았을 때 LP와 수평이 되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 카트리지를 전면에서 봤을 때 좌/우 수평(Azimuth)이 어긋나있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엔 헤드셀에서 조정해 주어야한다. 침압이야 말해 무엇하랴. 이런 것들이 모두 정확히 조정되었을 때 당신을 그때서야 LP의 한 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요즘 출시되는 일부 턴테이블은 이런 기능이 생략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아쉬울 때가 많다. 더 제대로 듣고 싶다면 턴테이블을 업그레이드해야할 수밖에. 만일 그럴 생각이 없다면 LP는 그저 기념품 정도로 전락할 수도 있다. 괜찮다. 그럴 경우라고해도 LP는 마치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 한 점을 소유한 듯한 즐거움을 주니까. 게다가 맘만 먹으면 배경음악이 되어줄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LP는 음질이 좋아야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건 화가가 아니라 음악인들이니까 말이다. 바로 그 때 축소 지향과 편의성이라는 시대적 조류를 역행한, 이 크고 무겁고 귀찮은 물건은 비로소 더 가치 있는 무엇인가가 된다. 아날로그의 30분은 디지털의 60분보다 짜릿해진다.

[레코스케]의 별책 부록 [오래된 레코드 00 : 무인도편]에 기고한 글입니다.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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