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하이파이 오디오가 세계적인 오디오 메이커와 경쟁하기 시작한 때가 기억난다. 그저 한국의 오디오는 전 세계 오디오 시장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때 에이프릴 뮤직이 나타났다. 이 메이커를 주재하는 이광일 대표(사이몬)은 하이엔드 오디오를 추구했다. 이젠 전설이 되어버린 마크 레빈슨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맨리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거장들과 교류하는 거의 유일한 국내 오디오 제작자였다.
덕분에 Wegg 3 제품들을 수입하기도 했다. 마크 레빈슨과 윌리엄 이글스턴, 두 천재가 만들어냈던 Lunare 1을 기억한다면 이후 윌리엄 이글스턴의 Wegg 3 Stela 1을 기억할 것. 이 제품이 아마도 윌리엄 이글스턴의 은퇴작이었던 것 같다. 이전에 이미 그가 일구었던 이글스턴웍스는 다른 이의 손에 넘긴 채. 지금 들어도 윌리엄 이글스턴이 이끌었던 이글스턴웍스의 안드라 같은 초기 모델의 사운드는 당시 대단했다. 지금이야 허허롭게 이름만 남았고 완전히 다른 스피커 메이커가 되어버렸지만.
아무튼 사이몬은 세계적인 하이엔드 오디오 거장들과 교류하면서 우리나라를 하이엔드 오디오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진입시켰다. 그러나 매우 합리적인 가격대를 고수했다. 유사한 성능을 내는 해외 제품 대비 거의 절반 이하 가격대에 제품을 만들어 ‘모든 가정에 쓸 만한 오디오 한 대’를 보급하겠다는 취지였다. 에이프릴 뮤직 당시 이런 캐치프레이즈로 성공한 예가 다름 아닌 오라노트 시리즈였다. 오리지널 모델부터 프리미어 그리고 V2까지 성공가도를 달렸다. 이웃 일본의 스테레오사운드 그랑프리, 미국 스테레오파일에선 추천기기 A클래스에 오르기도 했다. 대단한 성과였다.
하지만 이후 사이몬은 에이프릴 뮤직에서 나와 다시 조그맣게 사이몬오디오랩을 만들었다. 몇 년간 지켜봐오면서 지난한 과정을 목도했다. 와중에 탄생시킨 i5는 놀라웠다. 오히려 에이프릴 뮤직 시절보다 더 농익은 사운드 튜닝이 클라이맥스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집에 오는 길에 진부책방에 들었다가 사이몬오디오 시청회와 마주쳤다. 이런 행사가 있다면 미리 알려올 것을…아무튼 이번엔 정말 은퇴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을 쏟아 부는 것 같은 설계와 디자인이었다.
스피커도 직접 만든 M84U, 그 앞으로 올인원 앰프 사이몬과 전천후 소스 머신 사이몬 f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 옆으론 D1 DAC인 듯. 여러 사람들로 붐볐고 전용 시청실이 아니라서 사운드의 디테일은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찰나의 스쳐 지나가는 소릿결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 음결에서 이젠 사이몬이 하이엔드 오디오에 바쳤던 모든 경험과 구력이 집결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디오를 자주 들여오고 내보내기를 반복하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내보내기 전에 가장 좋은 소리를 내주는 경험. 심지의 마지막을 불태워 버리는 듯한 체험. 아마도 사이몬은 자신의 이름을 이 앰프와 스피커에 투사해 마지막으로 불살라버리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