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과거에 잊혀졌던 노래들의 가사가 새롭게 다가오는 경우가 잦아진다. 최백호, 김민기, 이정선, 조동진 그리고 송창식의 노래가 그렇다. 그 중 송창식의 노래는 어렸을 때 그저 재미있는 가사를 그저 시원하게 불어제치던 사람에서 지금은 문학적 해학을 자유롭게 녹여낸 가수 중 가수로 여겨진다.
특히 최인호가 가사를 쓰고 송창식이 노래한 ‘고래사냥’은 말할 것도 없고 ‘밤눈’이나 ‘꽃 새 눈물’이 대표적이다. 청춘의 억압된 욕망과 시대적인 우울을 ‘고래사냥’으로 통쾌하게 노래했던 당시 나는 그 뜻을 잘 몰랐다. 하지만 지금 말로가 노래하는 이 송창식의 노래는 더없이 편안하면서도 가사에 눈이 간다. 재즈의 옷을 입은 송창식의 노래는 더 자유롭게 훨훨 날아올랐다.
때론 재즈로 때론 보사노바나 아카펠라 풍 사운드로 송창식의 노래엔 새로운 색채가 입혀졌다. 말로의 가요에 대한 재즈적 해석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다. <벚꽃 지다>부터 거의 모든 말로의 음악은 가요와 재즈의 융합이 빚어낸 부산물들이다. 아예 <동백 아가씨>처럼 전통 가요들을 재즈로 부른 앨범들도 있었다. 이번 앨범은 <말로 싱즈 배호>처럼 특정 가수의 노래를 앨범 하나의 주제로 담은 앨범.
그 주인공이 송창식인 것은 가사와 음악 모든 것에 있어서 적절하지만 그만큼 많은 노력을 요구했다. 말로가 직접 편곡하고 노래하는 등 팔색조의 능력을 모두 담은 본작이 완성되기까지 1년 이상이 걸렸으며 그 결과물은 아름답다. ‘고래사냥’의 선동에 이끌려 동해로 가던 그 시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로의 <송창식 송북>은 우리만의 방식으로 노래하는 재즈의 시원으로 데려가고 있다.
이전에 CD도 구입했지만 이번에 나온 LP가 더 마음에 든다. 기본적으로 뛰어난 연주와 노래로 녹음 품질이 좋다. 그래미 어워드 수상 엔지니어인 사운드미러 황병준 대표가 마스터링을 맡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 더불어 LP는 체코에서 24/96 고해상도 음원을 사용해 제작했는데 오히려 CD보다 더 부드럽고 풍부한 여음 등 LP라는 포맷이 음악의 맛을 더 잘 살려주는 느낌이다. 게다가 게이트폴드 커버 등 두 장에 5만 원대라는 가격도 그리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