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하이파이 오디오 자체는 기계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기능에 충실하며 효율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전 기기와 다르다. 다름 아닌 대중 예술, 음악을 재생하는 데 사용하는 기기며 따라서 음악의 감동을 가정에서 재현하는 데 그 역량이 집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 저가 엔트리급 제품에선 이런 음악성이라는 것이 무의미해지기도 하지만 전통이 있는 브랜드라면 어느 가격대에서든 자사의 음질적 표정과 고집이 드러난다. 그리고 여러 하이파이 메이커들이 자사의 기기의 능력을 드러내기 좋은 음원을 발굴해 컴필레이션으로 만들곤 한다.
하이파이 오디오 브랜드가 만든 컴필레이션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꽤 있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에서도 꽤 다루었지만 버메스터나 달리, 하만 등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자사의 브랜드나 제품 마케팅을 위한 도구로 소비되거나 소환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하이파이 오디오 전반에 대해 음질 테스트용으로 사용해도 될만큼 선곡이 뛰어난 경우도 있다. 특히 마란츠도 대표적인데 이미 과거부터 꾸준히 컴필레이션을 제작해 프로모션 용도로 사용하거나 판매해 왔다.
최근 내가 손에 넣은 것도 마란츠가 만든 것이다. 컴필레이션 이름은 ‘Explorations In Sound’, 우리나라 말로 하면 ‘소리의 탐험’ 즈음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우선 선곡은 두 명이 전담해서 만들었다. SACD 두 장으로 만들었는데 첫 번 째 디스크는 마란츠의 사운드 마스터인 요시노리 오가타가 맡았다. 실제로 개발 단계에서 그가 마란츠 기기를 테스트할 때 사용하는 곡들이라고 한다. 두 번 째 디스크의 선곡은 기타리스트이면서 밴드 리더인 데이브 롱스트레치 그리고 VMP의 대표 카메론 섀퍼가 공동 선곡했다. VMP는 엘피 마니아들에겐 익숙한 엘피 레이블 ‘Vinyl Me, Please’다.
더불어 마스터링도 눈에 띈다. 우선 스튜디오는 스털링 사운드로 그래미상을 받은 뮤지션들의 앨범을 셀 수 없이 많이 제작한 곳이다. 이 컴필레이션은 바로 이 곳에서 마스터링했고 엔지니어링은 라이언 스미스가 맡아 진행했다. 재발매 엘피의 마스터링 관련 크레딧을 유심히 봐온 사람이라면 익숙할만한 엔지니어로서 아날로그 엘피 커팅 부문에선 현재 전 세계적으로 손 꼽히는 인물이다.
전체적으로 선곡은 무척 마음에 든다. 첫 번째 디스크는 주로 재즈와 약간의 클래시컬 음악들이 주를 이루며 두 번째 디스크는 일렉트로닉 등 무척 진보적인 음악들이 돋보인다. SACD는 두 장, 엘피는 45RPM으로 제작해 무려 네 장에 담았고 180g 중량반이다. 혹시나 했는데 프레싱 공장이 오디오파일에겐 익숙한 아날로그 프로덕션을 제작하는 QRP다. 음질도 보장할만하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품절된 듯. 국내에서 33 1/3RPM으로 제작해 두 장으로 만들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