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면 브람스라지만 겨울에 듣는 브람스도 좋다. 무엇보다 완벽주의적 성격의 브람스가 모든 고전주의적 작곡 기법을 분해해 재조립한 듯한 1번은 나의 애청곡이라 계절은 상관이 없다. 슈만이 음악신보에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고귀한 정신을 이상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도록 선택된 자”라고 표현했을 정도니까. 베토벤 이후 고전주의 경향이 흐릿해지며 베토벤 이후의 새로운 영웅을 찾던 시대 브람스의 출현은 어떤 파도를 몰고 왔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바로 그 브람스 교향곡 중 1과 2번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가 연주했다. 무려 4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슈타츠카펠레의 내한 공연은 원래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봉을 맡기로 예고되었다. 하지만 80세가 넘은 고령의 다이엘 바렌보임은 건강상의 이유로 지휘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고 지휘봉을 잃은 슈타츠카펠레는 그의 대체자를 찾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급박한 상황에 의뢰할 사람으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크리스티안 틸레만 같은 지휘자가 또 있었을까?
롯데 콘서트 홀에서 열린 틸레만의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브람스 공연은 지휘자의 교체로 오히려 더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생소한 틸레만과 슈타츠카펠레. 음반 외엔 들어볼 기회가 없었기에. 게다가 이 오케스트라의 악장은 한국인 바이올리스트 이지윤이었다. 문화 예술 계통에서 요즘 곳곳에서 마주치는 한국인들의 존재감은 유독 특별했고 이번 공연에서도 그랬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1번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브람스가 21세 청년 시절 작곡을 시작했지만 베토벤을 넘어서야한다는 압박감과 스스로 완벽주의적 성격 탓인지 40세가 넘어서야 완성한 작품. 여전히 브람스 이전 고전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1번이 시작되자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뛰기 시작했다. 롯데 콘서트홀의 음향도 꽤 만족스러웠고.
틸레만은 브루크너 연주에서도 그랬지만 강렬한 템포 대비 위에 아주 가녀린 섬세함의 다이내믹스가 일품이다. 음색이나 전체 토널 밸런스도 인상적인데 무척 화려한 스타일의 빈 필보단 훨씬 더 무게 중심이 내려와 있어 장중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소리였다. 마치 건축물을 맨 바닥부터 겹겹이 쌓아올려 단단히 완성해내는 듯한 사운드와 연주. 단단하고 깊은, 때론 약간 어둡고 두터운 현악 파트의 존재감은 가장 매력적이었다. 스피커로 치면 윌슨의 대형기에 ATC 같은 스피커의 중역 질감을 곁들인 듯한 느낌이랄까?
이번달의 마지막 11월 30일에 예술의 전당에서 3번과 4번을 연주하며 국내 공연 피날레를 장식한다고 하는데 스케쥴 때문에 못가는 것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