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섀년 박사가 디지털 이론의 기초를 세우고 이후 나이퀴스트가 양자화 이론을 발표한 후 디지털 역사의 파도는 급격한 진화를 시대를 맞이했다. 이들이 만든 이론 하에 결국 대중들이 디지털 포맷에 담긴 음악을 듣게 되었을 때 거의 충격에 휩싸였고 한편으론 쾌재를 불렀다. 디지털 이론이 연구된 후 규격을 발표하고 1980년대 드디어 소니와 필립스가 기술 제휴를 통해 콤팩트디스크를 출시했을 때 교향곡 하나를 정지 없이 들을 수 있었다. 카세트 테잎처럼 뒤집어 끼울 필요가 없었으며 엘피처럼 뒤집어 다시 턴테이블에 얹을 필요가 없어졌다. 넉넉한 수록 시간 덕분에 테잎이나 엘피 시대엔 두 장이었던 것이 한 장으로 줄어드는 효과는 덤이었다.
그러나 16비트, 44.1kHz로 100dB 가까운 다이내믹레인지와 인간의 가장 한계인 20kHz까지 재생 가능한 시디는 한계도 명확했다. 인간은 더 높은 다이내믹레인지와 더 높은 대역의 광대역을 소화할 수 있는 기기들을 개발해내고 있었다. 이런 양자화된 디지털 음원을 가장 아날로그에 가까운 데이터로 변환 가능한 방법들이 전 세계 석학들과 오디오 엔지니어들에 의해 실험되었고 연구는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2001년 코드 일렉트로닉스가 개발해 내놓은 DAC 하나는 그러한 디지털 규격의 한계를 넘어서는 쾌거를 이룩했다. 바로 DAC64라는 작은 DAC였다. 커다란 몸체에 육중한 몸체, 여러 발의 상용 칩셋으로 무장한 DAC가 난무하던 시절 DAC64는 당시로선 매우 특이한 디자인에 왜소한 사이즈였지만 소리 하나만큼은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출정한 혁명군에 다름 아니었다. 탱크로 밀고 지나가도 훼손되지 않는 풀 알루미늄 절삭 몸체에 상판 중앙엔 마치 우주선 해치를 닮은 거울이 달려 있었다. 들여다보면 우주인이 손을 흔들면서 인사를 할 듯했지만 그 안으로는 멋진 불빛 아래에서 도시를 상공에서 바라본 듯한 회로 전경이 은은하게 드러났다.
DAC64를 개발한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롭 와츠는 디지털 전문 엔지니어로서 보간 필터에 집중했다. 일반적으로 IIR 필터와 FIR 필터로 불리는 이 필터 중에 롭 화츠는 FIR 필터의 탭 수에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당시 양자화된 디지털 포맷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FIR 필터의 탭이 256개 정도로 형편없이 적다는 것. 이 정도로는 인간의 시간차 인지능력인 4μs~5μs 까지 표현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CD 스펙으로는 시간차 정보 표현이 22μs로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롭 와츠는 진보적인 FIR 필터인 WTA 필터를 개발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Watts Transient Alignment’로서 DAC64에선 1,024탭으로 출발했을 뿐이지만 출시와 동시에 전 세계에 무려 10만대가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이후 새로운 모델을 출시할 때마다 필터 탭 길이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나갔다.
※ WTA 필터 탭 길이 역사
DAC 64 : 1024
DAC 64 MK2 : 1024
Qute HD : 10,240
QBD 76 : 14,832
QBD 76 HDSD : 18,432
2Qute : 26,368
Hugo : 26,000
Hugo 2 : 49,152
Hugo TT : 26,368
Hugo TT 2 : 98,304
Mojo : 38,912
Mojo 2 : 40,960
Qutest : 49,152
CHORD DAVE : 164,000
CHORD Blu MkII : 1,015,808
CHORD Hugo M Scaler : 1,015,808
손바닥만한 사이즈에 49,150 탭을 구현하다.
디지털이 아날로그와 비교해서 훌륭한 점은 비약적인 축약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손톱보다 작은 사이즈의 칩셋에 엄청난 양의 정보를 기록할 수 있고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WTA 탭 길이 또한 작은 칩셋에 구현 가능해졌다. 이젠 손톱만한 사이즈에 DAC64 시절의 수십배 WTA 탭을 연산 가능해졌다. 구형 자일링스 FPGA는 DAVE에서 6세대 이르렀고 그 사이즈 Hugo M Scaler에선 롭 와츠가 꿈꾸던 100만 탭이 실현되었다. 현 시점에서 Qutest를 살펴볼 때 휴대용 Hugo나 Mojo 시리즈를 제외하고 데스크톱 DAC로서 49,152 탭은 놀랍다. 최소 DAC64의 1024탭의 48배며 후속기인 QBD76의 최종 버전인 HDSD버전보다 두세 배 정도의 탭 길이를 구현한 것이다.
그 사이 이 연산을 실시간으로 해낼 수 있는 칩셋 자체의 발전도 한 몫 했다. 바로 Airtix-7 FPGA 프로세서가 그 주인공이다. 일단 후면을 보면 평소 자주 쓸만한 입/출련 단자만 마련해놓았다. USB, 동축 BNC 두 조 그리고 광 입력을 마련해놓고 출력은 아날로그 RCA 출력 한 조만 마련한 모습이다. USB 입력에선 PCM의 경우 최대 32/768까지. DSD의 경우 DSD512까지 네이티브로 대응한다. 이 외에 동축에서 PCM 32/384, DSD128(DoP)까지 대응하면 광 입력에선 PCM 24/96, DSD64(DoP)가 한계다. 참고로 코드 일렉트로닉스는 MQA 디코딩은 지원하지 않는다. 아마도 손실 포맷으로서 MQA는 음질적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편 추가로 총 네 가지 필터를 마련해놓고 있다. 예를 들어 ‘Incisive Neutral’처럼 모든 대역에 걸쳐 선형적인 주파수 특성을 보이는 필터가 있는가하면 따뜻한 온도감을 가진 ‘Warm’필터. 그리고 20kHz 이상 주파수 대역에서 잡음을 제거해주는 ‘Incisive Neutral HF roll-off’는 높은 해상도의 PCM 음원 재생에 적합하다. 마지막으로 ‘Warm HF roll-off’ 는 고해상도 음원에 약간의 온도감을 부여해주는 필터다. 시스템 구성이나 취향에 맞게 선택해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풀 알루미늄 섀시, 컬러풀 인터페이스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기기들은 스마트폰으로 치자면 마치 애플의 그것을 닮았다. 어떤 부분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완벽 주의적 디자인과 기구 설계를 보인다. 어디를 봐도 나사 하나가 보이지 않는데 상단의 코드 명패에만 나사가 두 개 박혀 있어 아주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긴다. 알고 보니 조립과 분해를 위한 나사는 모두 하단에 안보이게 숨겨놓았다. 박스 디자인조차 두 개 블록으로 깔끔하게 나누어 한 블록엔 기기 본체 그리고 남은 블록엔 어댑터와 케이블 등 액세서리를 담아놓았다.
기기 조작 관련 유저 인터페이스도 독특하다. 예를 들어 필터 같은 경우 총 네 가지 중 선택할 때 좌측 전면 모서리에 사탕처럼 박혀 있는 버튼을 누르면 색상이 변하면서 해당 필터 세팅 상태를 보여준다. 입력 선택도 마찬가지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색상이 바뀌면서 입력 선택 상황을 알려준다. 상단의 둥근 창도 그냥 예쁘라고 설치해놓은 것만은 아니다. 입력된 음원의 샘플링 레이트에 따라 총 열 한 가지 색상의 빛이 내부를 비추며 해상도를 알려준다.
청음
테스트를 위해 일단 출력 전압을 세팅했다. 총 세 개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Qutest는 2V RMS에 맞추었다. 중간 값임에도 내가 사용하는 MSB Analog DAC보다 더 큰 볼륨을 보여주었다. 한편 코드 일렉트로닉스 SPM1400E 파워앰프, 서그덴 A21 시그니처 및 락포트 Atria, 리바이벌오디오 Atalante3, 케프 LS50Meta 등을 사용했다. 네트워크 플레이는 룬 코어로 웨이버사 Wcore 및 Wstreamer 등을 활용해 ROON으로 재생했음을 밝힌다.
가장 먼저 감지되는 특성은 포커싱이다. 보컬이든 피아노든 음상이 매우 정교하게 맺힌다. 작고 또렷한 음상이 눈앞에 마치 자로 잰 듯 그려진다. 예를 들어 제임스 테일러의 ‘Stretch of the highway’에서 보컬은 정 중앙에 명징하게 총알처럼 박혀 한치의 미동도 없다. 전체적인 밸런스는 풀 사이즈 MSB Analog와 대비해도 가볍거나 날리는 면이 없이 평탄한 편이다. 간간히 들리는 관악 파트 또는 후방 여성 코러스 파트 등에서 보여지듯 중, 고역은 활달하고 고역도 활짝 열려 있어 답답한 구석이 전혀 없이 화창하다.
이런 포커싱 및 눈앞에 악기의 위치가 그려지는 이미징 표현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바로 WTA 프로세싱으로 인한 디지털 도메인에서의 초정밀 시간차 단축에서 온다고 밖에 추측할 수 없다. 실제로 음악의 과도 응답 특성 등 전체적인 트렌지언트 성능에도 발군의 스피드를 자랑한다. 스틸리 댄의 ‘Two against nature’를 재생하면 마치 물밀 듯 빠르게 밀려오는 타악 세션에 이어 번개같은 리듬 섹션, 키보드 등이 긴박하게 연주를 이어간다. 번개 같은 어택과 순발력 넘치는 엔벨로프 특성이 음악 감상을 더욱 텐션 넘치게 만든다.
명료한 이미징 위에 번개처럼 빠른 응답 특성은 모든 음악을 입체적 홀로그래픽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마치 정밀한 시력 측정 후 안경을 새로 맞추고 난 후 처음 세상에 나갔을 때의 그 어질어질한 느낌인 그대로 음악에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알파 레코딩에서 발매한 바흐 ‘Plucked/Unplucked’ 앨범 중 ‘Aparte’를 들어보면 합시코드와 피아노는 완전히 구분되어 서로 다른 음정은 물론 유사한 대역에서도 마스킹 없이 독자적인 음색, 위치 구분이 확실하다.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후반부에서도 딜레이로 흐릿해지는 부근 없이 맑은 시야를 확보해준다.
내가 레퍼런스로 사용하고 있는 MSB Analog DAC가 소리 입자를 매우 곱고 유연하게 펼쳐놓으면서 깊은 심도를 확보한다면 코드 Qutest는 좀 더 앞으로 나와 적극적으로 노래한다. 각 악기들이 좀 더 돌출되어 있어 어느 위치에서 듣든 악기들이 적극적으로 호소하며 호쾌하게 무대를 그린다. 예를 들어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함께 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어보면 피아노의 기음이 더 강조되어 있고 피아노가 더 전면으로 나와 무대 위에서 활기차게 움직인다. 약음과 강의의 낙폭이 상당히 깊어 때때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쾌감을 극대화한다. MSB가 고급스러운 느낌의 자연 미인이라면 Qutest는 약간 더 예쁘게 치장한 성형미인 같은 인상이지만 그것이 부자연스럽지 않다.
총평
코드 일렉트로닉스가 걸어온 길은 앰프 뿐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도 독보적이다. 그리고 그 목표, 설계 및 음향적인 철학 측면에서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다름 아닌 시간축 응답 특성 및 트랜지언트 성능의 진보를 통한 생생한 음악적 코히어런스의 증대다. 이를 위해 최초 1,024개 WTA 필터 탭을 구현한 DAC64의 기술은 20여년이 지나 48배 필터 탭으로 드라마틱하게 진화하면서도 가격은 오히려 저렴해졌고 음질적 상승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코드 일렉트로닉스 제품이 하나라도 시스템에 투입하면 흐릿했던 시야가 맑아지며 시청 공간의 조명 조도가 밝아진 듯 모든 악기들의 형체가 명료해진다. 카메라로 비유하자면 조리값을 낮추어 사물의 핀 포인트 포커싱을 잡아낸 느낌이다. 음악은 시간 예술이다. 얼마나 정확히 그 순간을 잡아내 우리 눈 앞에 펼쳐놓으며 음악적 감흥을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Qutest는 찰나의 순간을 정밀하게 관찰, 명확히 부여잡은 후 징그러울 정도의 해상도로 분해, 분석해낸다. 디지털 소스 기기의 우주 망원경 같은 느낌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칩셋 : 코드 일렉트로닉스 특주 Xilinx Artix 7 (XC7A15T) FPGA
WTA 탭 길이 : 49,152
펄스 어레이 : 10 엘리먼트 펄스 어레이 설계
주파수 응답 : 20Hz – 20kHz +/- 0.2dB
출력단 : Class A
THD : <0.0001% 1kHz 3v RMS 300Ω
THD+N(3v RMS) : 117dB at 1kHz 300ohms ‘A’ weighted (reference 2.5v)
다이내믹 레인지 : 124dB
잡음 변조 : 측정 가능한 잡음 변조 없음(2.6 uV ‘A’ weighted)
채널 분리도 : 138dB at 1kHz 300Ω
무게 : 770g
크기 : 4.5cm (H) 16cm (W) 8.8cm (D)
박스 포함 : 1500g
제조사 : 코드 일렉트로닉스 (UK)
공식 수입원 : 웅진음향 (www.wjsound.com)
공식 소비자 가격 : 2,55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