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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쿤 사운드의 신세계로부터

바쿤 PRE-7610MK4 & SCA-7511M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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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코드 이펙트

1962년 영국과 프랑스는 당시 돈으로 무려 10억 달러를 투자해 새로운 여객기 개발의 닻을 올렸다. 이름은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로서 미국과 소련이 우주선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 영국과 프랑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여객기로 하늘을 지배할 거란 망상에 빠졌다. 그러나 치명적인 문제점들, 예를 들어 작은 몸체 때문에 수용 가능한 인원에 제한이 있었고 연료 소모는 천문학적인 비행 비용을 요구했다. 게다가 19670년대엔 세계적인 불황이 들이닥쳤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일 파동이라는 위기에 맞딱들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세계적 강국으로서 위상이라는 명목 아래 자존심을 궆히지 않고 콩코드를 운행해나간다. 결국 2천년 즈음 콩코드듣 폭발 사고를 내면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1976년 첫 취항 이후 2003년 마지막 비행까지 수많은 논란과 이슈를 나으며 운항했던 콩코드의 마지막은 처참했다. 개발부터 운항까지 천문학적인 비용과 비경제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투자한 돈과 시간이 아까워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행태. 이를 나중에 사람들은 콩코드 효과 또는 콩코드 오류라고 이름 지었다. 이른바 ‘매몰 비용의 오류’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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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엔드 오디오의 오류

하이엔드 오디오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크렐 같은 브랜드다. 어떤 비용적 제한 없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비용과 소재를 아낌없이 투자했던 크렐이다. 퓨어 클래스 A 증폭은 그 음질적인 측면에서 최고 수준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방법론이었지만 비용 대비 개발자와 사용자 모두 감내해야할 고통이 컸다. 설계 측면에서 비용은 한없이 늘어났고 사용자는 사용자대로 높은 발열과 감당하기 힘든 전기세 등에 신음해야했다. 결과적으로 수장 댄 다고스티노는 무리한 투자와 고집, 자존심 덕분에 회사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가장 이상적인 소리를 위해 인생을 바친 하이엔드 오디오의 레전드들은 분명히 인정해야할 업적을 쌓았다. 하지만 예술 작품이 아닌 전자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로서 그들은 음질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시켜야만 했다. 마치 본전 생각이 나서 노름판을 떠나지 못하는 도박꾼처럼 타협 없이 돌진하다가 선로를 이탈해버린 것. 현재까지 살아남은 메이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적절한 타협으로 버텨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을 단순히 오류로 평가 절하할 수 있을까? 여전히 그 당시 레전드 엔지니어들의 업적을 거울삼아 이후 역사를 써내려간 엔지니어들이 있다. 넬슨 패스처럼 여전히 당시 설계를 이어오는 구루도 있고 세타, 수모 등에서 일했던 엔지니어가 쉬트라는 메이커를 운영하면 현재도 호평을 얻고 있다. 누구보다 앞서나갔지만 일찍 쓰라린 실패를 떠안고 시대의 뒤안길로 잊혀져간 사람들에게 교훈을 얻은 것일까?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처럼 여전히 하이엔드 오디오에서도 뭔가 부질없어 보이는 값비싼 꿈을 꾸고 있는 엔지니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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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쿤 이펙트

바쿤을 처음 마주하면 마치 수십 년 전 만들어낸 빈티지 오디오 같은 디자인은 처음 보면 실소를 머금게 만든다. 게다가 한 손으로 들어도 너끈히 들리는 이 무게는 ‘무거운 앰프가 좋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초심자들에겐 뭔가 신뢰도를 깎아먹기 일쑤다. 실제로 출력도 낮아서 요즘 들어 갈수록 능률이 낮아지고 제어가 힘든 베이스 우퍼를 감당할 수 있을지 미심쩍은 게 사실이다.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바쿤의 설계 철학이 사실은 그저 제작자의 자존심 때문에 합리적인 판단에서 벗어난 무모한 고집의 다른 말 아닐런지 의심스럽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최근 DAC와 포노앰프에 이어 세 번째로는 바쿤의 분리형 앰프를 테스트했다. 프리앰프는 PRE-7610MK4. 파워앰프는 SCA-7511MK4로 모두 가장 최신 버전이다. 바쿤은 새로운 모델명 변경을 통해 신제품 발매를 하지 않고 대신 MK2, MK3 등으로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우선 두 기기를 RCA 케이블로 연결하고 소스기기를 연결했다. DAC는 평소 듣는 MSB Analog DAC 그리고 스피커는 리바이벌 오디오 Atalante 3 스피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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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으로 제품이 끝없이 들락거리는 청음 공간이지만 바쿤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개성 넘치는 소리를 들려준다. 예를 들어 니어 이스트 쿼텟의 ‘갈까부다’를 들어보면 우선 손성제의 색소폰 사운드가 공간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느낌이다. 대체로 소리를 시각적 이미지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이런 색감은 금빛을 넘어 약간 붉은 느낌까지 준다. 마치 오렌지 빛깔 볼륨 노브처럼 따스하고 짙은 색감을 가진다. 매우 복잡한 배음 구조를 갖는 색소폰이지만 날카롭거나 메마르지 않고 촉촉하며 온도감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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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도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락포트 스피커를 사용하지만 오래된 녹음들을 들을 땐 거슬리는 부분들이 있다. 당시 녹음의 거친 부분들이 그대로 표현되고 오히려 광대역에 넓고 입체적인 음장 표현 능력이 과거 녹음들과 잘 안 어울리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리바이벌오디오와 바쿤 조합에선 과거 데카, 필립스 녹음들도 자연스럽게 소화되다. 예를 들어 데이빗 오이스트라흐와 레브 오보린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어보면 과거 엘피로 듣던 이 녹음의 잔잔하고 소박하며 진한 잔향이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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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 응답 특성 측면에서 바쿤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다이내믹스, 해상도 등 마치 총천연의 내추럴 사운드 그 자체다. 완벽히 평탄하고 선형적인 모니터 사운드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이 작은 분리형 앰프가 드라이빙하는 스피커 사운드는 그 이전에 비해 비약적인 사운드 업그레이드를 보여준다. 질척이거나 지연 현상 없이 민첩한 반응 속도를 보여준다. 깊은 저역 쪽은 약간 축소되어 들리지만 감도가 아주 낮은 스피커 아니라면 문제없다. 마크 레니건이 다시 부른 밥 딜런의 ‘Man in the long black coat’에선 포효하는 마크의 거친 목소리가 가감 없이 그르렁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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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편성 교향곡을 들어보면서 악기들의 다층적인 분해력 및 분리도 등을 살펴보았다. 무대는 예상보다 깊게 형성되어 커다란 편성의 음악에서도 왜소하거나 기가 죽은 소리가 아니다. 되레 풍부한 잔향과 특유의 정갈하고 고즈넉한 배경 위에서 악기들은 하나하나 더 세밀하게 분리되어 들렸다. 디테일이 스케일이라는 말처럼 세부적으로 분리된 악기들은 총체적인 코히어런스의 상승을 견인한다. 바닥을 짓이기는 초저역의 쾌감보단 전체적인 악기의 디테일,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그 배경의 조용한 사이 공간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커다란 산수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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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7610MK4 후면

※ 비하인드 스토리

최근 테스트해본 바쿤 프리앰프와 파워앰프는 기존 바쿤 앰프들의 성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투명도, 선형성 등 여러 부분에서 개선이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 청감상 느꼈던 것들로 테스트 이전에 이 제품들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테스트했지만 이후 기술 자료들이 이를 다시 한 번 방증했다. 일단 사트리 IC를 사용한 독보적인 바쿤 증폭 회로를 사용한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파워앰프의 경우 HIBIKI-IC를 채널당 한 개씩 더 추가해 정보량과 리얼리티를 증가시켰다는 게 바쿤의 설명이다. 더불어 입출력용 임피던스 조정회로인 HBFBC를 네 개나 탑재한 것도 사운드 개선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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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7511MK4

SCA-7511MK4 파워앰프는 전압 및 전류 입력을 각 한 조씩 마련해 사트리-링크를 통한 음질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한편 BTL 모드 지원하고 있는데 이는 SCA-7511MK4를 한 대 더 구입해 브리지 모드로 세팅 가능하다는 의미다. 스테레오 앰프 한 대의 양 쪽 채널 증폭단이 한 쪽 채널만 담당해 증폭하기 때문에 스피커 드라이빙 능력이 한층 개선될 여지가 있다. 출력이 스테레오시 15와트에서 20와트로 단 5와트 증가하지만 BTL 모드의 강점은 단지 출력 증강 이상일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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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7511MK4 후면

흥미로운 것은 바쿤의 SCA-7511MK4의 경우 게인 노브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를 활용하면 인티앰프로 활용할 수 있다. 프리앰프 없이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입력단이 적어지는 문제가 있긴 하다. 그러나 PRE-7610MK4를 결합했을 때 훨씬 더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참고로 프리앰프는 입력단에 일반 RCA를 통한 전압 입력 세 조 그리고 BNC 사트리 링크를 통한 전류 입력 두 조 등 총 다섯 조의 풍부한 입력단을 갖추고 있다. 더불어 출력의 경우 RCA 한 조, BNC 한 조 등 두 조를 장착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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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7610MK4 내부

프리앰프의 존재 이유는 볼륨과 함께 다양한 입/출력 지원이지만 파워앰프가 충분히 증폭하기 수월하도록 그 전에 증폭 및 임피던스 매칭을 해주는 것이다. 이런 전제 하에 PRE-7610MK4는 HIBIKI-IC 등을 통해 더 순도 높고 선형성이 뛰어난 사운드를 내줄 수 있는 프리앰프다. 다양한 입력 소스가 필요하지 않다면 파워앰프 SCA-7511MK4 하나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지만 편의성은 물론 음질적으로 프리앰프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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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결론적으로 바쿤 이펙트는 여타 하이엔드 메이커가 겪어왔던 콩코드 효과를 피해갔다. 우선 외관 디자인만으로 좁은 음폭과 해상도의 빈티지 같은 소리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케이스만 알루미늄을 활용해 모노코크 방식으로 꾸미면 얼마든지 하이엔드 제품으로 홍보해 수천만 원에 판매해도 이상할 것 없을 만큼 매력 만점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한편 SCA-7511MK4 파워앰프를 인티앰프로 사용하다가 단계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어 SCA-7511MK4만 일단 사용하다가 프리앰프를 추가해서 업그레이드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파워앰프 한 대를 더 추가해 BTL 모드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세상엔 더 멋진 디자인에 더 무겁고 뽐내기 좋은 앰프는 많다. 하지만 이 가격대에서 이런 성능과 매력적인 음색을 가진 앰프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대량 생산 라인에서 매력 없이 뽑혀 나온 공산품이 아닌 수공 명품이란 걸 감안할 때 본작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 가격대에 이런 사운드를 내주는 분리형 앰프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리뷰 이후 나는 바쿤이 펼쳐내는 음악의 신세계로부터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PRE-7610MK4

SATRI-IC : UL 사양
출력 : SATRI-LINK(BNC) ×1 시스템/전압 출력(RCA) ×1
입력 : 전압 입력(RCA) ×3 /SATRI-LINK(BNC) ×2
이득 제어 : 볼륨 (일반)
크기 : 78mm(높이) × 235mm(너비) × 295mm(깊이)
무게 : 2.9kg
전원 : 100V, 120V, 220V, 240V/50,60Hz

SCA-7511MK4

출력
스테레오 15W+15W(8Ω/10% distortion), 모노 20W
헤드폰: 200mW(표준 플러그) ×1
입력 : 전압 입력 (RCA) ×1, 전류 입력 (SATRI-LINK / BNC) ×1
입력 임피던스 : 100KΩ
임피던스 : 스테레오 4Ω-8Ω, 모노럴 8Ω, 헤드폰 출력: 4-600Ω
노이즈 레벨 : VR 최대 50μV(A 곡선), VR 최소 1μV(A 곡선)
크기 : 78mm(높이) x 235mm(너비) x 295mm(깊이)
무게 : 2.9Kg

제조사 : 바쿤 프로덕츠 (일본)
공식 수입원 : 바쿤 매니아 (https://cafe.naver.com/bakoonmania)
공식 소비자 가격
PRE-7610MK4 – 4,050,000원
SCA-7511MK4 – 4,050,000원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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